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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빅뱅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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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대선후보가 없는 범여권. 고건 이어 정운찬도 낙마하자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각 그룹의 세포분열 속 DJ·盧가 깃발을 들었다. 줄서는 인사들. 더욱 복잡해진 범여권 개편방정식. 누가, 어떻게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낼 것인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4월 26일 의원총회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박민규 기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4월 26일 의원총회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박민규 기자>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탈당그룹인 통합신당모임(통신모)과 민생정치모임(민생모) 그리고 민주당 등 범여권이 재편을 위한 핵분열과 융합을 거듭하고 있다. 각 정당과 정파들 내에서조차단일한 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분화과정을 겪고 있다. 특히 범여권 각 세력들의 세포분열은 뚜렷한 대선후보가 없는 상황과 맞물려 더욱 유동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고건 전 총리에 이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범여권의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범여권 ‘빅뱅’의 한가운데에 김대중, 노무현 두 전·현직 대통령이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잡고 있어, 범여권 재편 방정식은 더욱 복잡해진 형국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국정수행 지지율이 30%대에 달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범여권뿐만 아니라 정국 전체를 쥐락펴락 하고 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역대 대통령 모두 집권 마지막 해인 5년차가 되면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렸지만, 노 대통령은 레임덕은 커녕 ‘라이브(Live)덕’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으로서는 부동산 값의 안정이 강력히 정책을 추진토록 하는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맞춰 참여정부평가포럼이 4월 27일 출범함으로써 노 대통령은 집권 후에도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아들인 김홍업씨를 이번 재보선에서 당선시킴으로써 건재를 과시한 김 전 대통령은 그의 마지막 소임으로 범여권통합 성사를 위해 훈수를 두고 있다.

‘뉴스메이커’가 취재·분석한 범여권의 분열과 통합 시나리오에 따르면 ① 정세균 의장의 제3지대 통합 ② 정동영 그룹 ③ 김근태-천정배 개혁블록 ④ 손학규 그룹 ⑤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의정연구센터(의정연)-참여정부평가포럼의 친노연합 ⑥ 통합신당모임(통신모)의 신당 창당 ⑦ 민주당-열린우리당·국민중심당 탈당파 연합 등 여러 세력이 당분간 군웅할거 시대를 거친 후 대통합의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2003년 4월 152명의 의원을 당선시켜 의회권력을 장악한 열린우리당의 현재 상태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버티는 식물정당과 같다. 지금도 108명의 의원을 보유한 원내 제2당이지만 공중분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중론이다. 열린우리당의 해체 시기는 5·18(5월 18일)에서 6·10(6월 10일) 사이가 유력하다. 정세균 의장의 임기가 6월 14일로 끝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4일 전당대회를 통해 출범한 정 의장 등 현 지도부가 범여권 대통합의 전권을 위임받은 기간은 4개월. 6월 14일이 지나면 지도부의 권한은 자동적으로 중앙위원회로 넘어간다.

열린우리당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은 시한부 당의장직을 맡고 있는 정세균 의장이다. 정 의장은 정운찬 전 총장, 손학규 전 지사 등 유력 주자를 중심으로 한 후보 중심의 제3지대 통합을 주창해왔다. 즉 열린우리당을 적당한 시점에 해체하고 후보가 밖에서 깃발을 들고 있으면,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제정파들이 그곳으로 모이자는 발상이다.

노 대통령 ‘라이브 덕’위력 과시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4월 26일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홍업 의원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박민규 기자>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4월 26일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홍업 의원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박민규 기자>

하지만 정 전 총장의 낙마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때문에 정 의장은 후보 중심 통합과 정당간의 협력을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재빨리 수정했다. 이와 관련, 정 의장은 “정운찬 전 총장의 정치 불참선언으로 후보 중심 통합의 한 축이 무너졌으나, 다른 잠재적 후보군을 중심으로 노력하겠다”며 “이와 더불어 정파간 협력을 도모하는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아무런 대안 없이 뿔뿔이 흩어지는 당 해체보다는 프로그램에 따른 질서 있는 당 해체 후 통합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정 의장을 돕고 있는 그룹은 계파적 색채가 없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중진의원들이다. 특히 ‘소통과화합의광장모임’(광장모임) 출신인 김덕규, 유인태, 원혜영, 이용희 의원 등이 정 의장에게 범여권 재편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 의장의 제3지대 통합론은 108인 108색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조직적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점과 민주당과 통신모 등 다른 정파들을 끌어들여야만 성공할 수 있어 험한 길이 될 전망이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3~4개 그룹으로 쪼개질 것으로 예상된다.

열린우리당 유력 대선 후보인 정동영(DY)·김근태(GT) 두 전 의장도 ‘침몰하는 열린우리당호’에서 언제쯤 뛰어내릴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 시기는 5월을 넘기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들이 탈당한다 해도 뜻을 같이 해줄 세력이 없다는 점과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노무현 정부의 각료를 했던 이력이 마음에 걸린다.

정동영 전 의장은 ‘5월 분기점론’을 펼치며, 당적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정 전 의장은 “‘뉴스메이커’와 한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당을 강화시키지 못하면 당을 해체하고 통합신당으로 가야 하는데, 당 고수파(친노세력) 때문에 안 된다”며 “현 상황을 타개하고 분화의 과정을 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당 내에서 후보경선이 이루어졌을 때 참여할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탈당을 시사했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을 따르는 세력들이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단적인 예로 DY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동영계로 분류되던 김한길, 이강래, 전병헌 의원 등은 열린우리당 탈당을 결행한 바 있다. 현재 그를 추종하는 의원들은 박명광, 박영선 등 당적 이탈이 불가능한 비례대표 의원들과 정청래, 채수찬, 최성 의원 정도다. 정 전 의장은 손학규 전 지사와 연대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김근태 전 의장도 열린우리당에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 김 전 의장은 민생모(천정배계),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과 연대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의장도 세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다. 한때 김근태계로 불리며 30명 이상을 차지했던 민평련은 현재 활동을 제대로 하는 의원이 10여 명에 불과하다. 특히 민평련 의원들 중에서도 정치활동을 접은 정운찬 전 총장을 대안으로 생각했거나, 손학규 전 지사 쪽과 교류하는 의원들이 있는 등 민평련도 분화의 과정을 걷고 있다. 김근태 전 의장 측은 민평련 내 지지그룹과 함께 천정배 의원 측과 개혁블록을 구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우원식, 이인영, 노영민, 유승희, 최규성 의원 등이 김 전 의장과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트너인 천정배 의원 측에서는 김근태 전 의장에게 당장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 최재천 의원(민생모)은 “민평련 의원들의 탈당 없이는 민평련과 연대에 관해서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이 민생모의 생각”이라며 “민평련뿐만 아니라 정책과 비전을 공유하는 모든 세력과 낮은 단계의 연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생모 측은 창당보다는 진보개혁세력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종자’역할에 더 치중하고 있다. 민생모는 최근 통합을 선언한 ‘창조한국 미래구상’과 ‘통합과 번영을 위한 국민운동’이 김근태, 천정배, 문국현 등 개혁진영의 후보자들을 아우르는 후보자간 연석회의를 주선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실제로 민평련, 민생모, ‘창조한국 미래구상’, ‘통합과 번영을 위한 국민운동’이 4자회동을 갖고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시민사회 진영에서는 문국현 사장이 정치권 진출에 대한 입장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근태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만을 참여시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범여권의 한 전략가는 “진보사회 진영에서는 범여권의 모든 후보를 참여시켜 판을 키우려 하고 있다”며 “4자 연대가 생각보단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군웅할거 거쳐 대통합의 길 걸을 듯

열린우리당 김부겸, 임종석, 정봉주, 신학용, 의원 등 10여 명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지지하거나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부겸 의원은 당 지도부의 묵인 아래 손 전 지사의 범여권 조직구축을 돕는 등 가장 적극적이다. 손 전 지사와 연대는 정세균 의장이 주창했던 후보 중심의 제3지대 통합론과 일맥상통한다. 익명을 요구한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범여권에서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등 의미 있는 행동을 한 유일한 후보”라며 “열린우리당의 해체는 손 전 지사가 얼마나 많은 의원을 땡기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는 4월 30일 지지모임인 ‘선진평화포럼’을 발족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세규합에 나섰다.

열린우리당에 잔류할 것으로 보이는 그룹은 참정연과 의정연 등 친노그룹이다. 최근 해체를 선언한 참정연은 강기정, 김형주, 박찬석, 백원우, 유시민, 이광철 의원 등이 속해 있으며, 의정연구센터는 김종률, 김태년, 이광재, 이화영, 조정식, 최재성 의원 등이 있다. 친노그룹은 최근 출범한 참여정부평가포럼(대표·이병완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참정포럼이 친노진영의 모든 세력을 흡수하는 기간조직으로 발전할 것이며, 결국에는 영남개혁세력을 대표하는 영남개혁당으로 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참정연 대표를 지낸 김형주 의원은 “최근 해체된 참정연이 참평포럼과 같이 할 가능성은 없다. 당장 당을 만들기 위한 계획이나 로드맵은 없다”고 부인했다.

23명의 열린우리당 탈당파로 구성된 통합신당모임도 독자 신당창당 과정에서 분열을 가속화하고 있다. 통신모는 5월 7일 창당대회를 열고 ‘중도개혁 통합신당’을 창당할 예정이지만, 일부 의원들의 반발로 내홍에 휩싸여 있다. 당장 교섭단체(20명)의 지위 붕괴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있다. 김한길, 조일현 의원 등 다수파는 우선 독자 신당 창당을 주장하는 반면 이강래 의원 등 소수파는 창당보다는 범여권 통합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수파들은 이강래, 노웅래, 전병헌, 이종걸, 제종길, 우윤근 의원 등이다. 노웅래 의원은 “나를 포함한 소수파 그룹은 가능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2차 탈당까지 기다려보자는 유연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범여권의 또 다른 축인 민주당의 사정도 복잡하다. 박상천 대표는 민주당 중심의 통합론을 주장하고 있으며, 김효석, 이낙연, 채일병 의원 등은 통합론자들이다. 통합론자들의 뒤에는 동교동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보선 후 민주당은 이인제, 유선호 의원의 영입을 사실상 확정한 데 이어, 탈당파들을 추가로 끌어들여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범여권이 목표하는 대로 ‘분열을 통한 융합, 혼돈 속에서 질서 창조’가 가능할 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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