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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작가 박현욱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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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일처제만 정답이랄 수는 없죠” … “그러나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남자”

[문화]‘아내가 결혼했다’ 작가 박현욱 인터뷰

수많은 TV 드라마와 영화, 소설의 단골소재는 ‘불륜’이다. 유부남이 처녀를 사랑하고 유부남과 유부녀가 열애를 하고 그로 인해 갈등이 빚어진다. 곶감 빼먹듯 수시로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도 마찬가지. 사랑에 빠진 연인이 알고 보니 이복남매라는 식이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 반복되는데도 이런 소재의 작품이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것은 왜일까.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내용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종류의 드라마나 영화의 밑바탕에 깔린 것이 조선시대 ‘일부다처제’의 흔적이라는 점은 여성 입장에서는 씁쓸할 수밖에 없다.

반면 요즘 시중에서 회자되고 있는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문이당)는 역발상에서 출발한다. ‘일부다처’가 아닌 ‘일처다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화자(話者)는 ‘인아’라는 이름의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이자 남편이다. 그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인아는 그와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너만 사랑할 순 없다”고 통보한다. 이는 곧 너하고만 섹스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도 원할 때는 언제든지 잘 수 있다는 얘기다. 예쁘거나 쭉쭉빵빵한 외모는 아니지만 만날수록 점수가 올라가는 매력적인 그녀는 축구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그와 닮았다. 응원하는 팀이 레알마드리드인 그와 달리 FC 바르셀로나라는 점만 다를 뿐. 그는 인아를 독점하고 싶어 결혼을 밀어붙이지만 결혼 후 인아는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혼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너도 좋고 다른 남자도 좋으니 그 남자와도 결혼해 두 집 살림을 하겠다는 얘기다.

소설은 사랑하기 때문에 급기야 아내의 이중결혼생활까지 감수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역동적인 축구이야기와 절묘하게 결합시켜 속도감 있게 전개한다. 3월 10일 초판 발행한 이 소설은 4월 말 현재 7만 부나 팔려나갔다. 물론 이 소설을 ‘맛있게’ 읽는 독자의 상당수는 여성이다.

‘두 집 살림’ 아내와 순정파 남편

문득 작가가 궁금해졌다. 그는 왜 이런 발칙한 소설을 구상하게 됐을까. 이 소설의 작가 박현욱씨(38)는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을 그리려다가 이야기가 확장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동시에 좋아할 수 있잖아요. 그런 커플의 이야기를 담으려다보니 아무래도 결혼문제까지 봉착하게 되더라고요. 이 이야기는 우리 결혼제도의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해요. 사랑하지 않으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사랑해서 두 사람과 결혼하는 게 잘못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거든요.”

[문화]‘아내가 결혼했다’ 작가 박현욱 인터뷰

그는 “일부일처제인 현 결혼제도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을 하는 게 결국 ‘행복’해지기 위한 일인데 이것이 오히려 굴레가 돼 불행하다면 다시 고민해볼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일처제가 인간 본성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안가족 형태가 종종 나타나는 것이겠죠. 하지만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학자마다 결혼제도와 관련해 연구하고 예측하는 방향도 다 다르니까요. 다만 일부일처제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사랑의 정의도 그는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헌신적 사랑만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는 것.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본질적으로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연한 궁금증. 정작 그는 어떤 사랑을 할까. 아쉽게도 그는 현재 “애인이 없다”고 한다. 결혼 여부? 싱글이다. 그럼 애인이 있다면 그녀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해도 용인할 수 있을까? 한 발 더 나아가 결혼한 상태라고 해도? 하지만 돌아온 말은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남자”였다.

“저도 38년 하고도 7개월을 대한민국에서 산걸요. 그동안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고 가치체계화한 게 쉽게 무너지겠어요?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결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죠.(웃음)”

이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킨 건 해박한 축구지식이다. 소설에는 2002 월드컵을 본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 이상 들어봤음직한 축구스타들의 에피소드, 각종 경기 기록, 축구관련 전문용어가 주인공의 연애담, 결혼담 사이사이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박현욱씨는 “축구 에피소드를 서브(하위)플롯으로 활용한 것은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일처다부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판타지잖아요. 반면 축구 에피소드는 논픽션이죠. 있을 것 같지 않은 소설 이야기에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축구이야기를 삽입했어요. 주인공의 심리나 상황 전개에도 아주 유용하거든요.”

축구로 남성들 불만 누그러뜨려

[문화]‘아내가 결혼했다’ 작가 박현욱 인터뷰

결과적으로 다채로운 축구 에피소드를 가미한 것은 남성독자들의 ‘화’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낳았다. 남성 독자라면 성과 사랑에 지독히 자유분방한 한 여자에게 시종일관 질질 끌려 다니는 남자주인공이 곱게 보일 리 없는데, 박진감 넘치는 축구 이야기가 이를 상쇄하기 때문이다. 박현욱씨는 소설을 쓰기 위해 축구관련 서적 20권을 탐독하고 축구사이트 4곳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고 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87학번인 그는 대학 졸업 후 일반기업체와 출판사에 잠시 다녔다. 백수생활도 했다. 문단에 본격적으로 등단한 것은 2001년 장편소설 ‘동정 없는 세상’으로 제6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으면서다. 이제 막 수능시험을 치른 피 끓는 십대의 주인공이 성적 호기심과 판타지, 그리고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동정’ 떼는 일에 골몰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현직교사들이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할 만큼 교육적이면서도 재미있게 읽히는 성장소설이다. 2003년에는 장편소설 ‘새는’을 출간했다. 1980년대 고등학생들의 아련한 청춘사(靑春史)를 담았다.
박현욱씨는 자기 이름으로 씌어진 소설이 있다는 게 거짓말 같다고 말한다.

“소설을 쓰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소설을 쓸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죠. 제가 처음 소설을 끄적거릴 무렵은 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되는 일도 없던 시기였어요. 그러다보니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니 뭔가 쓰게 되더라고요. 팔자가 꼬여 가장 못할 것 같은 글쓰기가 생업이 된 셈이에요. 한편으로는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여전히 들어요.(웃음)”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 있는 글솜씨를 보여주는 베스트셀러 작가치고는 지나친 겸손이다. 그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독자가 어디 기자 한 명뿐이랴.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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