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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 너만의 장점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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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화된 영역의 새 결제 모델로, 신용카드 보완 수단으로 자리잡아야

“카드수수료가 사실 어마어마하죠. 옛날 같지 않고 이젠 20원 봉투 값도 카드로 구매하는 시대니까요. 어떤 날은 맥이 빠져요. 처음엔 몇천 원짜리 사면서 카드 쓰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젠 현금 거의 못만져요. 거슬러 줄 돈도 없는 상태죠.”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4월 18일 서울 신한엘타워 디지털캠퍼스에서 열린 제로페이 간편결제 활성화 간담회에서 사회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4월 18일 서울 신한엘타워 디지털캠퍼스에서 열린 제로페이 간편결제 활성화 간담회에서 사회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8일 만난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 점장의 말이다. 그는 요즘 제로페이 홍보에 열심이다. 현금 결제가 줄고 그 빈자리를 신용카드가 치고 올라오는데 제로페이를 쓰면 수수료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편의점은 신용카드 매출이 전체의 90% 가깝게 차지하는데 한 달 일해 번 돈 중 카드수수료가 며칠치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현금 없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17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식·음료와 주류·담배를 제외한 여타 품목에서 신용카드 이용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5만원 이하면 서명할 필요도 없이 긁으면 바로 결제가 되는 편리성 때문이다.

신용카드 사용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제로페이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최대 40%의 소득공제 혜택이 있다고 하지만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지난해 9월에 발간된 ‘2018 조세특례 심층평가’의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응답자 중 50.9%가 결제의 편리성을 꼽았고, 41%는 마일리지 혜택을 들었다. 소득공제 혜택을 이유로 든 사람은 31.2%에 불과했다. 제로페이가 정착하려면 소비자들이 신용카드에서 제로페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익숙한 소비패턴 바꾸기 쉽지 않아

국회 입법조사처의 기준하 입법조사관은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에서 신용카드의 경우 결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소비자의 선호도도 높은 상황에서 제로페이 사용을 유도할 유인이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세법상 신용카드 가맹점 가입이 사실상 의무화되어 있는 등 제도적 지원이 견고하고, 가맹점이 많을수록 이용자 혜택이 증가하는 네트워크 효과에서 절대적 우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 조사관은 제로페이가 “신용카드와 대등한 결제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 소비금액에 대한 소득공제의 단계적 축소, 가맹점 의무가입이나 의무수납제 완화 등 제도적인 지원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정부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저희 것(제로페이) 잘되자고 다른 혜택을 줄이는 것은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서로 상생해야지 저쪽을 죽여서 제로페이를 살린다는 생각을 정부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신용카드에서만 가능했던 신용 기능을 제로페이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이미 케이뱅크는 50만원의 여신 기능을 간편결제에 포함시켰다. 은행 계좌에 돈이 없어도 50만원까지는 간편결제가 가능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나머지 은행도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며 “금융위원회도 은행이 아닌 네이버페이와 페이코, 카카오페이 등 전자금융사업자들이 소액의 마이너스 통장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방안에 대해 신용카드 업계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여신을 제공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돈을 갚지 않아 생기는) 대손이 발생한다”며 “이런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은행과 카드사는 대손충당금을 쌓도록 하는 등 여러 규제를 받는데 제로페이 결제사들이 그런 규모가 될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월 50만원의 휴대폰 소액결제를 허용하는 통신3사의 경우 소액결제로 일어난 부실채권이 1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로페이만의 특화된 서비스를 발굴해 소비자의 제로페이 결제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조합원들이 4월 3일 서울 중구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제로페이 강제 할당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초 자치구 공무원들에게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을 할당하고 특별교부금 300억원을 제로페이 실적과 연결해 25개 자치구에 차등지급하기로 해 논란이 일었다. / 연합뉴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조합원들이 4월 3일 서울 중구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제로페이 강제 할당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초 자치구 공무원들에게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을 할당하고 특별교부금 300억원을 제로페이 실적과 연결해 25개 자치구에 차등지급하기로 해 논란이 일었다. / 연합뉴스

서봉교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는 “사물인터넷과 블록체인 등을 활용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지만 기존의 신용카드 시스템으로는 이를 활용하기 어렵다”며 “제로페이는 새로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산업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단순한 결제수단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중국경제 전문가인 그는 “중국의 경우 모바일로 결제하면 매장 앞에서 카드를 결제하기 위해 줄을 서 있을 필요도 없고 내가 본 물건을 결제부터 배송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다”며 “제로페이도 이런 방식으로 변형된 결제 모델을 만들어 그 편리함과 새로움을 소비자들이 체감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제 편의성 높이고, 소비자 혜택 늘려야

현재 제로페이는 오프라인 결제만 가능하다. 정부는 제로페이로 온라인 결제가 가능하도록 G마켓, 11번가 등 온라인 쇼핑몰과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제로페이 사업 참여자들이 제각각 온라인에서 간편결제를 하고 있어 수수료 체계를 정비하는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에서는 우대가맹점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도 오프라인보다 1% 이상 수수료율이 높다. 온라인 결제의 경우 중간에 ‘PG(Payment Gateway·결제대행)’사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PG사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고객의 신용카드나 현금 결제를 대신 받아주고 온라인 쇼핑몰에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정산해주는 업체를 말한다. 정부 관계자는 “온라인 결제의 경우 수수료 체계가 오프라인과 달라 해결할 문제들이 많다”며 “플랫폼 사업자의 수수료와 결제수수료를 구분하는 것도 아직은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쇼핑 시장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제로페이로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온라인 진출이 불가피하다. 서 교수는 향후 온라인 결제가 가능해지면 자산운용 기능을 통합한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제로페이 결제계좌의 돈을 펀드와 주식 투자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거기서 얻는 수익에 면세혜택을 주는 식으로 자산운용 플랫폼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전문가와 업계는 제로페이가 신용카드를 대체한다기보다 보완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한 간편결제 업체 관계자는 “현금이 주로 담당하던 소액결제 자리를 제로페이가 차지하고, 수십만 원 이상의 고가품 구매를 위해 할부가 필요할 때는 신용카드를 쓰게 될 것”이라면서 “현금거래가 많은 전통시장이나 길거리 마켓을 중심으로 제로페이가 현금을 대체하고, 그래야 그 가치를 더 인정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로페이가 편의성과 활용도를 높이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소비자시민모임의 금융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허유경 변호사는 “현재는 고령자와 같이 스마트폰 사용이 쉽지 않은 분들한테는 간편결제의 장벽이 너무 높다”며 “결제 편의성과 소득공제 이외의 소비자에 대한 혜택, 온라인 결제 확대 등과 같은 점을 보완해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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