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아들’ 권창훈, 프랑스에서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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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훈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돈보다도 오랫동안 꿈꿨던 유럽 진출이 더 중요했다. 3~4년 후면 국방의 의무도 해야 한다. 내가 주어진 시간 동안 큰 무대에서 모든 걸 걸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빵집 아들’ 권창훈(23)이 ‘빵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국내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 미드필드로 활약했던 권창훈은 지난달 18일 프랑스 리그앙(1부리그) 디종FCO로 이적했다. 계약기간 3년 6개월, 이적료 120만 유로(약 15억원)다.

권창훈의 에이전트인 장민석 월스포츠 팀장은 “사실 지난여름 알 자지라(아랍에미리트)가 이적료 300만 달러(약 35억원), 연봉 200만 달러(약 23억원) 등 총 500만 달러에 창훈이 영입을 제안해왔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권창훈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돈보다도 오랫동안 꿈꿨던 유럽 진출이 더 중요했다. 3~4년 후면 국방의 의무도 해야 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큰 무대에서 모든 걸 걸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축구팬들은 ‘돈’ 대신 ‘도전’을 택한 권창훈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수원 유스팀인 매탄고 출신 권창훈은 2013년 프로에 데뷔해 4년간 109경기에서 22골·9도움을 기록했다. 팀의 간판 미드필더로 축구협회(FA)컵 우승(2016년)과 K리그 두 차례 준우승(2014년, 2015년)의 주역이었다.

권창훈은 2015년에는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에게 발탁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 출전해 2경기에서 3골을 기록했다. 지난해 리우올림픽에서는 2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한국축구 차세대 미드필더 권창훈은 프랑스에서 성공을 꿈꾸고 있다.

2016년 8월 4일 브라질 사우바도르 폰치 노바 아레나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축구 조별리그 C조 1차전 한국과 피지와의 경기에서 권창훈이 공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2016년 8월 4일 브라질 사우바도르 폰치 노바 아레나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축구 조별리그 C조 1차전 한국과 피지와의 경기에서 권창훈이 공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고종수의 천재성+박지성의 성실함

권창훈의 별명은 ‘빵훈이’다. 아버지 권상영씨(58)가 서울 강남구에서 30년째 빵집을 하고 있어서다.

2009년 수원 매탄고 스카우트였던 조재민씨는 “당시 중학교 랭킹 1위 선수가 창훈이었다. 창훈이는 바둑의 이창호 9단처럼 상대보다 두 수를 먼저 봤다”면서 “창훈이를 영입하기 위해 빵집을 찾아갔는데, 아버지 일을 돕고 있었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선수라는 생각이 들어 석 달간 거의 매일 빵집에 찾아갔다”고 전했다.

권창훈은 키 1m74㎝, 몸무게 69㎏으로 축구선수치고는 체구가 작은 편이다. 그러나 그는 매탄고에 진학한 뒤 ‘왼발의 마법사’ 고종수 당시 매탄고 코치로부터 왼발 기술을 전수받았다.

김호 전 수원 감독은 고종수가 신인 시절 “디에고 마라도나는 눈이 1000개 달린 것처럼 시야가 넓다. 강력한 중거리슛을 날리려면 왼 발목 힘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해줬다. 고 코치는 권창훈에게도 같은 말을 해줬다. 고종수가 그랬던 것처럼 권창훈은 침대에 밴드를 걸고 왼 발목을 잡아당기는 튜빙 훈련을 반복했다. 상대 수비가 그의 왼발을 집중 마크하자 이번엔 오른발 훈련도 병행했다.

축구전문가들은 권창훈을 두고 “고종수의 천재성과 박지성의 성실성을 겸비했다”고 평가한다. 권창훈은 박지성처럼 축구밖에 몰라 동료들 사이에선 ‘애늙은이’라 불린다. 리우올림픽 당시 팀원들끼리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말하는 게임을 했는데, 동료들은 “권창훈-여자”를 뽑을 정도다. 권창훈은 “고종수 코치님이 왼발 사용법을 가르쳐주셨다. 박지성 형처럼 축구는 내 인생의 전부다”라고 말했다.

권창훈이 축구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서다. 아버지 권상영씨는 “창훈이가 어릴 때는 내가 꼭 안고 잤다. 2008년 자다가 내가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껴 응급실에 실려갔다. 심근경색이었는데,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말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권창훈이 “아빠, 앞으로는 제가 지켜드릴게요”라고 약속했다. 권창훈은 “아빠가 일을 그만두고 편히 쉬셔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난 축구를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빵집 아들’ 권창훈, 프랑스에서 새로운 도전

‘프랑스 빵훈이’ 꿈꾼다

1998년 창단한 디종은 빅클럽이 아니다. 1부리그에 속한 게 2011~12시즌과 2016~17시즌 두 번뿐이다. 현재 5승9무10패로 20개 팀 중 17위다. 프랑스 리그앙은 18~20위가 하부리그로 강등되는데, 디종은 강등을 막기 위해 구단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이적료까지 지급하면서 즉시전력감인 권창훈을 영입했다. 돈보다 유럽행을 원했던 권창훈도 구단 이름보다는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선택했다.

디종의 올리비엘 크로아렉 단장은 서정원 수원 감독이 1998년부터 2년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뛸 당시 구단 직원이었다. 크로아렉 단장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서정원은 선수 시절 아주 빠른 공격수였다. 권창훈은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고 아주 훌륭한 왼발을 갖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동안 많은 한국 선수들이 프랑스리그에 도전했지만 성공한 경우는 AS모나코에서 뛴 박주영 정도다. 박주영은 2008년부터 세 시즌 동안 25골을 터트렸고, 잉글랜드 아스널로 이적했다.

크로아렉 단장은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많은 선수들은 강한 피지컬을 갖고 있다. 창훈이가 극복하고 적응해야 한다”며 “많은 한국 선수들이 잉글랜드·독일 프로축구에서 활약하고 있고, 창훈이 역시 프랑스에서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창훈이의 재능을 믿고 있으며, 그가 치열한 강등권 싸움에 많은 도움을 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창훈은 “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하겠다. 디종을 발판으로 다른 팀에 간다는 마음보다 디종과 운명을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뛰겠다”고 말했다. 그는 “수원은 유스 시절부터 7년간 몸담았다. 수원 팬들은 홈에서든 원정에서든 가장 큰 목소리로 응원해줬다. 그 생각을 하면서 어딜 가든 기죽지 않고 뛰겠다”고 덧붙였다.

디종 구단은 권창훈이 팀에 적응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디종 코치진과 선수들은 권창훈과 첫 만남에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권창훈을 환영하기 위해 미리 한국어를 연습했다. 환영회에서 팀 동료들은 권창훈과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춤을 췄다.

크로아렉 단장은 “창훈이는 한국프로축구 2016시즌 종료 후 5주 정도 쉬었다. 코치진이 권창훈을 무리하게 출전시키기보다는 몸상태를 충분히 끌어올리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창훈은 8일 FC메스와의 프랑스 리그1 24라운드 18명 출전명단에 처음으로 포함됐지만 결장했다. 중앙과 측면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권창훈은 이젠 본격적으로 메디 아베이드, 플로랑 발몽, 요앙 가스티앙 등 팀원들과 경쟁을 펼쳐야 한다.

월드컵에서 11골을 터트린 ‘독일 축구의 전설’ 위르겐 클린스만은 ‘보트낭 빵집 아들’로 불렸다. 슈투트가르트 보트낭의 빵집 주인 아들이었던 클린스만은 아버지로부터 제빵기술을 배웠고, 가족은 여전히 빵집을 하고 있다.

권창훈의 아버지 권상영씨는 30년째 빵집을 하고 있다. 개인 브랜드로 빵집을 하다가 2008년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바꿨다. 공교롭게도 프랜차이즈 명칭에 프랑스 파리가 들어 있다. 아버지 권씨는 “빵훈이가 빵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 수원 클럽하우스에 종종 빵을 보냈는데, 디종에도 아들이 좋아하는 피자야채빵을 돌려야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권창훈은 “꼭 잘해서 ‘프랑스 빵훈이’라고 불리겠다”고 다짐했다. ‘빵집 아들’ 권창훈은 프랑스에서 ‘빵! 빵! 빵!’ 골 소식을 전할 날을 꿈꾸고 있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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