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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사업 전락한 해외자원개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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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5년 간 43조 쏟아 붓고 지금까지 손실만 4000억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 핵심 과제로 진행했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총체적인 부실로 드러났다. 공기업들은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정책에 따라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무려 43조원이나 쏟아부었지만 해당 사업들이 부실로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드러난 손실 추정액만 4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4대강 사업이 감사원 감사에서 사기와 담합, 부실, 혈세 낭비 등 총체적 부실공사로 판명난 데 이어 이명박 정부의 대표 사업들이 줄줄이 부실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22조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보다 거의 2배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입돼 부실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실은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어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와 함께 부실 책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서문규 사장이 10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이마를 만지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한국석유공사 서문규 사장이 10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이마를 만지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해외자원개발 사업으로 43조원이 투입됐다. 

지난 1977년부터 우리나라가 추진한 해외자원개발 총투자금액 57조원 중 75%가 이명박 정부 때 집중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얼마나 해외자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했는데도 불구하고 성과는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다. 오히려 사업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현재까지 4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밋빛 국정과제 에너지 공기업이 ‘총대’
석유공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총 255건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벌였다. 해외 기업을 인수하고, 광구 지분을 매입하는 데 16조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 사업이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돼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대표적인 사업이 유전개발업체인 캐나다 하베스트사의 인수였다. 석유공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해외자원개발을 강조했던 지난 2009년 12월 하베스트사 지분 100%를 3조7921억원을 주고 인수했다.

석유공사는 지분 100% 인수라는 투자위험이 큰 거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검토나 실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석유공사의 하베스트사 자산 실사 기간은 11일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이 사업으로 8202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투자원금 전액을 날릴 수 있다고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국회 산업위 이현재 의원(새누리당)은 “캐나다 하베스트 광구는 지난 1986년 캐나다의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캐나다가 1달러에 팔아치운 정유회사였다”며 “석유공사는 사실상 ‘깡통기업’을 인수하면서도 기초적인 정보 확인조차 안 했다”고 비판했다.

석유공사의 투자금액 회수율은 노무현 정부 때 82%에서 지난해에는 36%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석유공사는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한 225개 사업 중 34개 사업에 대해 매각 등 자산조정 사업으로 분류했다. 해외에서 직원들의 비리도 발견됐다.

가스공사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0건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5조9000억원을 투자했다. 가스공사는 천연가스 광구인 캐나다의 혼 리버와 웨스트컷뱅크 지분을 9500여억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이들 광구는 지난 5월 수익성이 없다는 최종 판단이 내려지면서 시추가 중단됐다. 지금까지 2개 광구에 대한 투자로 1998억원이 손실처리됐다. 가스공사는 이들 2개 사업을 포함해 3개 사업에 대해 투자계획을 축소하는 등 조정사업으로 선정했다.

[정치]깡통사업 전락한 해외자원개발 사업

국회 산업위 김동철 의원(민주당)은 “2개 광구는 가스공사의 자문회사인 캐나다의 스코티아워터러스사가 용역보고서를 통해 수익성이 없다고 보고했던 광구였다”며 “석유공사는 수익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투자를 감행했다”고 질타했다. 호주의 GLNG 광구도 경제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를 증액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졌다.

감사원은 가스공사가 공동지분을 갖고 있는 호주 A사의 순현재가치가 가스공사 예상치보다 훨씬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1조4622억원을 추가로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국회 산업위 전정희 의원(민주당)은 “가스공사가 해외자원개발 투자 결정 시 경제성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가스공사는 외부 용역기관의 예측보다 보수적으로 적용해 투자를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업 담당부서에서 제각각 산정한 기준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고 꼬집었다.

광물자원공사도 6개 해외사업에 대해 자산을 매각하는 등 정리대상 사업으로 분류했다. 광물자원공사는 이 중 3개 사업은 정리하고 3개 사업은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사업은 호주와 페루에 있는 니켈·아연·구리 채광 사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광물자원공사가 1조2560억원을 투입한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채광사업에 대해 수익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3개 사업을 정리할 경우 투자 대비 6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총손실 얼마인지조차 알 수 없어”
정부는 뒤늦게 ‘에너지 공기업 재무구조 TF’를 만들어 구조조정에 돌입했지만 막대한 부실자산으로 인해 아직까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회 산업위 이진복 의원(새누리당)은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무리하게 대형화로 추진해 양적 성장은 이뤘지만 질적 성장은 미흡했다”며 “더욱 큰 문제는 해외자원개발 사업 중 매각 대상이 몇 개나 되는지, 총손실규모가 얼마인지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에너지 공기업들이 독단적으로 해외사업에 투자를 해도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공기업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이사회는 해당 공기업 사장과 이사, 그리고 일부 사외이사 등 10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해외 에너지 사업에 대한 확장을 독려했고,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공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해외자원개발에 투자할 때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국민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 산업위 추미애 의원(민주당)은 “반복되는 해외투자 손실로 인한 국민 혈세의 지출을 막기 위해서 공기업이 해외에 3000억원 규모 이상 투자 시 국회 해당 상임위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 운영법’의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리한 해외자원개발 사업 투자로 인해 에너지 공기업들은 경영상태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 강기정 의원(민주당)에 따르면 3개 에너지 공기업의 부채비율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 5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했다. 석유공사는 2008년 대비 168%, 가스공사는 385%, 광물자원공사는 17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강 의원은 “감사원이 22조원의 혈세가 들어간 4대강 사업을 전면적으로 감사해서 총체적인 부실사업이라는 것을 밝혀냈다”며 “4대강 사업보다 투자규모가 더 큰 해외자원개발 사업도 감사원이 종합적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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