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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법외노조화는 법 테두리 안 조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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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아닌 시행령에 의한 ‘노조 아님’ 통보 위헌 논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에게 10월 24일은 분노와 두려움과 결의와 다짐과 위로가 교차한 날이었다.

고용노동부가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의 규약이 현행 교원노조법 2조를 어겼다는 이유로 노동조합법 시행령 9조 2항을 근거로 ‘노조 아님’ 통보를 내린 것이다. 

이 조치로 전교조는 14년 만에 법외노조화되면서 노조 전임자를 둘 수 없게 됐고, 각 시·도교육청과의 단체교섭도 무효가 됐다.

이날 정부과천청사 내 노동부 브리핑실에서 직접 설명에 나선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현행법을 지켜야 한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방 장관은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논의하더라도 현행법을 지키면서 진행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10월 24일 전교조 조합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집행정지 및 취소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전교조에 대해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 서성일 기자

10월 24일 전교조 조합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집행정지 및 취소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전교조에 대해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 서성일 기자

서 장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방침”이라며 “전교조 조합원들도 선생님이기 때문에 (…) 교육을 위해서라도 현행법을 준수해주기를 촉구했다”고 말했다.

‘악법도 법이다’ 수준의 인식이다. 오랫동안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로 잘못 알려져 왔다. 하지만 학자들의 연구 결과 1930년대 제국주의 일본의 한 법철학자의 책에서 나온 말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형식적 법치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악법도 법이다’를 내세우고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악법은 법이 아니라는 입장을 냈다. 당시 헌재는 교육부에 중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악법도 법이다’ 부분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준법을 이야기하려면 정당한 법과 법 집행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노동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통보가 위헌논란으로 번진 결정적 이유는 통보의 법적 근거를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에 따르면 노조가 현행법에 어긋난 규약을 갖고 있을 경우 노동부는 해당 노조에 규약 시정명령을 해야 한다. 이 노조가 30일 이내에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동부는 ‘법에 의한 노조 아님’을 통보해야 한다.

전교조, 헌재에 헌법소원 제출
이 시행령에 따라 노동부는 지난 9월 23일 전교조에 해고자를 포함시키는 규약을 개정하고, 해직자가 전교조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조치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 전교조는 노동부의 요구를 총투표에 부쳤고, 투표 결과 68.59%의 조합원들이 시정명령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막상 노동부 스스로도 이 시행령의 정당성에 확신은 없었다. 올해 2월 이재갑 당시 노동부 차관은 보수단체 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이 법률에 근거하고 있지 않으며, 이것만을 근거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볼 경우 ‘과잉금지원칙 위반’으로 위헌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전교조는 10월 2일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과 교원노조법 2조(해고자 배제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강영구 전교조 자문변호사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해야 할 경우 헌법에 따라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며 “법률이 아닌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에 따른 법외노조화 조치는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강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1987년 이전 노조법에는 노조 해산 조항이 있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항쟁 이후 그해 11월에 노조 해산 규정이 없어졌기 때문에 시행령만을 가지고 ‘노조 아님’ 통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측은 노조 해산과 법외노조화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은 노조 해산 규정이 없어진 이후인 1988년 4월 15일에 신설된 것이다.

[사회]전교조 법외노조화는 법 테두리 안 조치인가

강 변호사는 “노조 해산과 법외노조화가 내용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반박하며 노동부의 조치는 헌법이 금지하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어긴 것으로 보고 있다. 6만여명에 달하는 전교조 조합원 중 9명의 해직자를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34명의 조합원 중 2명이 무자격자라는 이유로 노조를 해산시킬 수 없다는 1971년 대법원 판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헌법학자인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전교조가 제출한 헌법소원이 정당하다고 보고 있다. 오 교수는 교원노조를 다른 노조와 다르게 취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입장이다. 1960년 5·16 쿠데타로 인해 교원의 노동3권이 제한됐지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교원노조를 다른 노조와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오 교수의 견해다.

그는 “공권력은 노조의 자주권이 심하게 훼손됐을 때 개입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공권력이 교원의 자주적 단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근거규정이 시행령이냐 법률이냐에 상관없이 과도한 공권력의 개입이므로 노동부의 통보는 위헌”이라고 말했다.

또한 오 교수는 “노동부는 노조법에 따라 할 수 없이 법외노조화를 통보했다곤 하지만, 헌법에 입각한 해석을 했다면 강제적인 통보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노동부의 조치가 정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재교 변호사(세종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단 한 명이라도 현행법 상 자격이 없는 조합원이 가입돼 있다면 법 위반이다. 법 위반 사실이 있느냐 여부가 핵심이지 위반 정도의 크고 작음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기 때문에 과잉금지원칙 위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
전교조를 제외한 여타 산별노조들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해고자도 조합원으로 둘 수 있다. 전교조는 교원노조만 해고자를 배제하도록 한 교원노조법 2조는 헌법 11조 평등권을 침해한 조항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교원노조법과 전교조 규약이 상충된 지 오래됐다”며 “전교조가 법을 고치는 노력을 하더라도 현재 법은 준수하면서 갔어야 하는데 법과 규약이 맞지 않는 것을 방치만 하다가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도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의 법률적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그는 “법률의 위임 없이 시행령만으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한다면 해당 시행령은 무효가 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법원에서 따져봐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전교조는 법정 투쟁과 더불어 현장 투쟁을 병행할 방침이다. 법외노조 통보가 나온 직후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긴급 서신을 발표했고, 전교조 각 지역지부는 고용노동부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긴급 서신에서 김 위원장은 “전교조에 대한 탄압과 ‘노조 아님’ 통보는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통령 아님 통보’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며 강도 높은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전교조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최고 수위의 투쟁은 연가투쟁이다. 연가투쟁은 일시에 다수의 조합원들이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방식의 투쟁으로, 2004년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반대투쟁 때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전교조가 9년 만에 대정부 강경투쟁을 할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당장 10월 27일부터 법외노조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매주 촛불집회와 농성을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연가투쟁 등은 아직 확정된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는 어떤 경우에도 학생들의 학습권과 학교의 정상운영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전교조가 연가투쟁이나 전임자 복귀명령 거부 등에 나설 경우 대화보다는 징계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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