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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여당 ‘종북 프레임’ 민주당 또 낚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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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기’서 NLL 논란까지 새누리당 종북 틀짓기 교묘하게 변화

민주 “당할 수만 없다” 정면대응… 당 안팎서 “무리수” 우려 많아

“민주당이 북한과 전쟁을 한다고 해도 ‘종북 전쟁’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민주당이 뭘 해도 ‘종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수층에 30%는 될 것이다.”

7월 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열람·공개를 요청하는 요구안이 통과됐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회의록 공개를 당론으로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 이와 같이 말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새누리당이 덧씌우려 하는 종북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종북 프레임은 민주당에는 족쇄다. 이 관계자는 “대화록을 공개한다고 해도 ‘민주당=종북’으로 믿고 있는 이들 30%의 보수층은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념적 중간지대에 있는 50%의 국민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고, 민주당은 종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줘야 했다”고 말했다.

6월 23일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사건’ 진상규명 촉구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6월 23일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사건’ 진상규명 촉구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보수층 30% 민주당 뭘 해도 종북 몰 것”
야당에 덧씌워진 종북 프레임은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이 조금씩 달라졌다. ‘레드 콤플렉스’가 국민적 정서로 남아 있던 1990년대까지는 간첩·용공 논리가 동원됐다. 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말,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이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월북한 오익제씨의 편지를 조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편지는 북이 김대중 후보에게 호의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햇볕정책을 공격하는 ‘퍼주기’가 종북 프레임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종북 프레임의 근거가 시기마다 다르게 동원된 셈이다. 10년을 이어오던 ‘퍼주기’ 논란은 지난해 18대 대선을 앞두고 ‘NLL(북방한계선) 포기’로 포장을 바꾸었다. 지난해 10월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고 논란은 지난달 재점화했다,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정원이 공개한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을 열람하면서다.

새누리당이 ‘퍼주기’에서 ‘NLL 포기’로 종북 프레임의 내용을 바꾼 것은 전략적이었다는 분석이다. 한상익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누리당이 지속적으로 종북 프레임과 연결했던 ‘퍼주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 시간이 5년이 흘렀기 때문에 더 이상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연구위원은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대북지원을 확대할 상황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새누리당 입장으로서는 ‘퍼주기’로 종북 프레임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면서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종북’ 딱지를 계속 붙이기 위해서 ‘NLL 포기’ 논란을 만들고 이를 악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종북 프레임을 이어가기 위해 10년 동안 써왔던 ‘퍼주기’가 아닌 다른 소재를 동원해야 했고, 그 새로운 소재가 ‘NLL 포기’였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안보의식 변화도 새누리당의 ‘새로운 소재 선택’과 궤를 같이한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에 따르면 국민들의 안보의식은 이념적이 아니고 상충적으로 변하고 있다. ‘진보=반미=친북’, ‘보수=친미=반북’이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났다는 분석이다. 정 부소장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는 보수적 입장으로 쏠리지만, 남북관계에서는 탈냉전적 사고인 햇볕정책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 지난 10년간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도 경험했지만, 연평도·천안함 사건 등 남북간 충돌도 함께 겪으면서 유권자들이 복합적인 안보의식을 갖게 됐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유권자들 사이에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햇볕정책을 ‘퍼주기’로 공격하기보다는 ‘안보의식’을 자극하는 ‘NLL 포기’ 논란을 내세우는 것이 더 절실했다고 볼 수 있다. ‘NLL 포기 발언’ 논란은 이러한 변화에 맞는 새로운 종북 프레임이었던 셈이다.

여당, 유권자 복합적 안보의식 잘 활용
새누리당에는 종북 공세가 절실했던 더 큰 이유도 있었다. 국정원의 댓글 사건에서 번져나간 대선개입 의혹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마저 뒤흔들 수 있는 폭발성을 잠재하고 있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판도라의 상자를 까면서 정국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논란으로 급반전됐다. 정부·여당 입장에선 국면전환에 성공한 셈이다.

‘NLL 포기 발언’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선택한 후, 새누리당의 종북 맹공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새누리당의 전략적 접근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6월 29일 최경환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칠거지악’을 저질렀다고 공격했다. ‘칠거지악’의 주요 내용은 ‘NLL 상납’ ‘북핵 두둔’ ‘굴종적 태도’ 등이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대비하며 “최근 남북당국회담 추진 중 북한이 국내 1급 관료에 해당하는 수석대표를 보내면서 왜 차관이 나오느냐고 격을 문제 삼은 이유를 알게 됐다”며 “굴욕적인 ‘갑을 남북관계’를 만든 장본인은 민주당”이라고 말했다.

6월 20일 국회 정보위원장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정보원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했다고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취지의 발언을 직접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 김영민 기자

6월 20일 국회 정보위원장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정보원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했다고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취지의 발언을 직접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 김영민 기자

새누리당의 종북 프레임 공격에 맞서는 민주당의 선택은 정면대응이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열람에 합의한 것은) ‘마이너스 정치’인 것은 맞다”면서 “하지만 공개를 반대하면 새누리당이나 보수진영에서 ‘떳떳하지 못한 점이 있어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NLL 포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만큼 이를 해체하고 가겠다는 결단인 셈이다. 공개에 반대한 의원들까지 공개를 당론으로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심정적으로 이해한다는 분위기다. 대화록 공개를 반대한 추미애 의원은 “새누리당이 자꾸 우기니까 이번 참에 논란을 끝장내버리자, 실컷 봐라, 뭐가 있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한다”고 말했다. 김승남 의원도 반대표를 던졌지만, 민주당을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불만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싸움을 건 쪽은 국정원이고 여당이다, 그것을 명백하게 가려야지 민주당이 찬성했다고 민주당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맞불놓기 장기적으로 득보다 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민주당에도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에 뼈아픈 것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회의록 공개와 함께 종북 프레임에 갇혀 희석됐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어차피 전문이나 녹취를 다 공개한다고 하더라도 그야말로 그때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서야 새누리당이 승복을 하겠냐”며 “토씨 하나, 뉘앙스 하나 가지고 또 물고 늘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루한 공방이 될 텐데, 그렇게 되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게 될 수 있다. 이미 새누리당 프레임에 말려든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결국 종북 프레임은 해체되지 못한 채, 진영논리로만 빠질 것이라는 우려다. 프레임 이론은 논쟁과 대립의 규모가 큰 갈등 이슈의 경우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대중의 이슈 피로도가 높아진다고 말한다. 특정 이슈가 종결 시점에 가까워지고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그 갈등 이슈를 다룰 경우 그 중요성과 상관없이 수용자들의 냉소적 태도가 증가된다는 설명이다.

대화록 공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안철수 의원 측의 금태섭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이게 적대적 공생관계의 폐해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비판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 기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도층에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함께 비판하는 양비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국민들이 NLL 문제가 정치적 쟁점화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피로하게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차적인 책임 소재는 정부·여당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민주당 또한 지지율이 함께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정치불신이 다시 강화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고 국정조사까지 앞두고 있는 새누리당으로선 반기면 반겼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종북 프레임이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음에도 민주당이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근 여론조사는 이러한 점을 방증한다. 7월 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발표에 따르면 대화록 공개 여파로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떨어진 반면 민주당의 지지도는 상승했다.

6월 24~28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정당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새누리당이 전주 대비 5.2%포인트 하락한 43.4%, 민주당이 전주 대비 3.8%포인트 상승한 25.3%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로 미루어 볼 때, 과거처럼 종북 프레임이 대중들에게 소구력을 갖지 않음에도 민주당이 무리를 해가며 원칙을 저버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남북간 신뢰 협력을 이어가고 있던 민주당의 정체성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추미애 의원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 북한 핵실험이 있고 난 직후 한·미·중 회담을 열자고 우리 쪽에서 제안했을 때 중국이 거절하면서 한 말이 한국은 비밀을 지킬 줄 모른다며 대화 참여를 거부했었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비록 야당이지만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국내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어 아쉽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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