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보수·진보 망라한 ‘정치박람회’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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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대한민국 정책컨벤션’ 11월에… 시민도 참여 자유롭게 의견 개진

스웨덴의 알메달렌 정치박람회(Almedalen Politics Week)는 정치인들의 록 페스티벌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매년 7월 첫째주 스웨덴 동남부 고틀란드 섬의 해변 휴양도시인 비스비시에서 열리는 이 정치박람회는 올해로 44회째를 맞고 있다. 1968년 당시 총리로 내정된 팔메 장관이 화물차 짐칸에 올라가 격식 없이 진행한 연설이 시초가 됐다.

의석을 가진 정당이면 의석 수에 관계없이 동일한 발언 기회를 갖는 것이 특징으로, 정치인들도 이 기간만큼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복장으로 곳곳을 방문한다. 1990년대에 이르러 정당 외에도 언론·학계·시민단체를 포함해 정치와 정부 정책에 관심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서 참가인원은 더욱 늘었다. 지난해에는 1476개의 공식 행사를 진행하는 인원만 1만4000명이 넘었고, 연인원 수십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행사를 치렀다.

스웨덴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장에서 정책 세미나를 열고 있는 모습. | 고틀란드주정부 홈페이지

스웨덴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장에서 정책 세미나를 열고 있는 모습. | 고틀란드주정부 홈페이지

대선국면 앞두고 정책대결 활성화 기대
한국에서도 11월에 알메달렌과 같은 정치박람회가 열린다. ‘2012 대한민국 정책컨벤션’이란 이름으로 첫 테이프를 끊는 이 박람회는 국회 도서관과 의정관, 의원동산 일대에서 진행된다.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소, 민주통합당의 민주정책연구원 등 정당 소속 정책연구소를 비롯, 희망제작소, 자유경제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경제개혁연구소 등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각 진영의 주요 민간 싱크탱크들이 참여한다. ‘우리가 만드는 대한민국… 각자 그리고 서로’라는 슬로건에 맞게 이번 박람회에선 각각의 참가단체들이 나름의 정책적 기량을 선보이는 한편, 진영을 떠나 공동으로 정책적인 차원의 지식생태계를 구축할 계획을 갖추고 있다.

행사를 여는 시기를 대선을 한 달 남짓 앞둔 11월 6·7일로 잡은 것은 본격적인 대선국면에서 각 후보 사이에 네거티브 전략 대신 정책경쟁이 더욱 활성화되길 기대한 주최측의 기대가 담겨 있다. 각 정당은 물론 보수·진보 각 진영의 민간 싱크탱크들이 기껏 만들어낸 정책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묻혀버리는 현실은 정책경쟁보다는 인물 위주의 구도로 진행되는 정치상황과 관계가 깊다. 이만의 조직위원장은 “정책컨벤션을 통해 국민들이 바라는 정책이 무엇인지 도출해내 종합보고서를 작성하여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각 후보 대선캠프에도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당의 정책연구소도 참여하지만 다양한 성향을 띤 민간 싱크탱크들이 주축이 되는 행사여서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열리는 정치행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참가기관·단체 부스 마련 정책 홍보
정책이 일반 시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와 정책을 딱딱하게 느끼는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시민참여 행사도 열린다. 정책 콘서트, 명사 초청 강연 등은 물론 정책제안마당이나 메인 토론회에도 정책에 관심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 참가기관·단체가 마련한 부스에서는 특색 있는 정책 내용을 홍보하도록 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민들이 직접 접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형용 집행위원장은 “이념 대결이 지나쳐 정책에 집중하기 힘든 정치현실은 민간 정책기관들이 정책적 역량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시민들에게 외면받는 악순환을 낳는다”면서 “이번 박람회가 정책 관계자에게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축제의 장이 되도록 진행방향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성향의 단체들 위주로 진행되지 않다 보니 이번 박람회를 준비하는 데에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집행위원회는 밝혔다. 지난해 9월부터 거버넌스21클럽이 새누리당·민주당 양당과 함께 진행해온 토론회에서 올해 행사의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11월에 열린 토론회에서 정책컨벤션 개최가 공식적으로 제안됐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간 싱크탱크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사업이 진행됐다. 올해 1월 주요 싱크탱크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져 정례적인 회의를 거치면서 14개 싱크탱크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알메달렌을 모델로 한 만큼 시민사회단체·대학 연구소 등 정책 제안에 참여할 의사를 갖춘 기관에 참가 기회가 열려 있다.

사전 토론회가 진행되면서 이념에 따른 진영을 중심으로 정책활동을 전개해온 싱크탱크와 시민단체들이 협소한 정책공간 안에서 안주했다는 반성이 여러 차례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들과 동떨어진 정책, 다른 입장에서 제기하는 합리적 비판에 귀를 닫은 나머지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정책들이 검증도 없이 양산되었다는 것이다. 보수성향의 이재교 공정언론시민연대 대표는 “진보와 보수의 사전적 의미에만 얽매인 나머지 현실에서는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는데도 서로를 외면하는 분위기가 이어져 왔다”면서 생산성 있는 정책경쟁을 위해선 반대진영과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진보성향의 손혁재 경기시민사회포럼 대표도 “최근 보수정권을 거치며 진보성향의 단체들도 상대 진영에 대한 비판에만 몰두한 측면이 있는데 시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진보진영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모든 진영을 아우르는 정책박람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각 진영의 단체와 연구원·활동가들이 다른 진영과 함께 토론하기를 꺼리는 태도였다. 그러나 사전 준비과정에서 여러 번의 토론회를 거치며 시민들이 진정 원하는 생활정책의 차원에서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구분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했다. 보수와 진보 간의 차이는 분명히 인정하면서 서로 정책경쟁을 통해 취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발전시키는 것이 척박한 한국의 정책환경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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