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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에너지 대안을 모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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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에너지대안포럼 공동기획

지난해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대재앙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탈핵 움직임이 일어나는 반면, ‘한국형 원전 수출’의 기회로 보는 한국 정부와 원자력산업계의 판단은 옳은 것인가. <주간경향>과 에너지대안포럼은 3회에 걸쳐 ‘후쿠시마 1주년’을 맞아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3월 11일은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당사국 일본은 물론이고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많은 국가들에서 ‘탈핵’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원자력에너지에 의존하면 할수록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수급체계를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대표적인 원전 수출국인 프랑스도 원자력발전, 특히 지은 지 오래된 원전의 폐기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지난 2월 9일 동부 프랑스 페센하임의 원자력발전소를 방문한 사르코지 대통령(가운데)이 원전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대표적인 원전 수출국인 프랑스도 원자력발전, 특히 지은 지 오래된 원전의 폐기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지난 2월 9일 동부 프랑스 페센하임의 원자력발전소를 방문한 사르코지 대통령(가운데)이 원전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변화의 움직임은 우리나라에서도 싹트고 있다. 시민환경단체들이 모여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을 결성했는가 하면, 각계 인사 116명으로 구성된 ‘에너지대안포럼’은 국가 에너지 비전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나섰다. 탈핵교수모임, 탈핵법률가모임, 탈핵의사모임, ‘동아시아 탈원전 자연에너지 네트워크’ 등 지식인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지난 2월에는 전국 45개 지자체장들이 모여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도시선언’을 발표했다. 전·현직 의원 33명으로 구성된 ‘탈핵-에너지 전환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은 원자력 확대정책 폐기를 19대 총선 공약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도 2014년까지 에너지 절감과 재생에너지 생산을 통해 원전 1기를 없애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1년 탈원전 결정한 국가들의 공통점
하지만 정부는 미동도 하지 않는 눈치다. 일본 원전업체들의 몰락을 기회로 삼아 오히려 원전 건설과 수출에 박차를 가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정부가 원전 건설업계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원전 마피아’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자력 확대정책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는 원자력에너지의 위험을 우려하면서도 이를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기사에는 “부족한 전력으로 어떻게 살자는 것이냐”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원전을 줄이면 전기가 모자라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원전은 필요악’이라는 미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대안 시나리오’다. 탈원전을 결정한 국가들에서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원전을 줄이더라도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전을 확대하는 것보다 오히려 득이 더 많다는 확신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대안 시나리오는 이와 같은 확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도구다. 독일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생태연구소(Okoinstitut)를 중심으로 대안 시나리오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안 시나리오들이 작년 독일 정부의 탈원전 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일본에서도 대안 시나리오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도 202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이 25.2%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를 작년 6월 발표한 ‘대기와 지구를 구하기 위한 시민동맹(CASA)’이 대표적이다.

모든 에너지 시나리오에는 줄거리가 있다. 여기에서 소개할 에너지대안포럼의 ‘2030 에너지 대안 시나리오’의 줄거리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강력한 전력 수요관리를 펴면서 원전 수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것이다. 이때 원자력과 재생가능에너지 등 발전원 구성은 어떻게 변하는지, 온실가스 감축과 일자리 창출에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다. 시나리오대로 정책을 펼 경우 현 정부의 정책과 비교했을 때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도 분석하게 된다. 이런 원칙에 따라 검토한 대안 시나리오는 총 5개다.

분석 결과 원전 발전량 비중을 2030년까지 59%로 높이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온실가스 감축, 누적 비용, 일자리 창출 등 모든 측면에서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고용효과는 대안 시나리오 5개와 비교했을 때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력 수요관리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원전 의존도를 빠른 속도로 줄일수록 환경, 고용, 비용 측면에서 이점이 많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효과는 1인당 전력소비량을 2030년까지 OECD 소속 유럽 국가 평균수준으로 낮추면서 신규 원전은 물론 건설 중인 원전 5기의 건설도 중단할 때 가장 높았다. 이 경우 2030년까지 투자해야 할 비용도 현 정부의 ‘원전 올인 정책’에 비해 현격하게 적은 수준이었다. 대안 시나리오를 채택하게 되면 2030년께 원전 수는 최소 12기로 줄고 재생가능에너지는 최대 31%까지 늘어나게 된다. 시나리오마다 차이는 있지만 원전을 모두 폐쇄하게 되는 시기는 일러야 40년 후인 2052년께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시나리오는 지도를 펼쳐놓고 나침반을 이용해 가야 할 길을 그리는 작업과 같다. 도상에서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찾아냈다 한들 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차기 정부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은 두려움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 활성화도 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결국 국민의 선택이자 정치적 의지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원전 위주의 에너지 다소비 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수요관리와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의 지속가능한 사회로 갈 것인가. 그 선택의 열쇠가 차기 정부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다.

에너지 다소비 사회, 미래일 수 없다
대안 시나리오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고 요금체계를 전압별로, 탄력적 방식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국민이 낸 전기요금으로 산업계의 요금을 깎아주는 일을 중단하고 계절별, 시간대별 요금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도 국가의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전동기, 인버터, 조명, 펌프, 변압기 등 고효율기기 보급을 확대하는 한편, 시민들의 소규모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설치를 지원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비전은 에너지 다소비 사회를 조장하는 원자력 중심의 전력정책과는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원전 추가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수명이 다한 원전은 가동 시한을 연장하지 않는 원자력 출구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원자력 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안전하고 합리적인 사회적 통제를 위한 필수요건이다. 원전 운전비용과 함께 핵연료주기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안병옥<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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