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리는 지금 광화문으로 간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관심 끄는 고교생들의 촛불집회… ‘불순한 세력’ 개입 말아야

[사회]우리는 지금 광화문으로 간다

지난 5월 7일 광화문 네거리에는 오후 6시가 넘어가면서 고교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위해 모인 학생들이었다. 처음 1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된 행사는 2시간 남짓 진행되는 동안 그보다는 조금 숫자가 불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많게 잡아야 400여 명선. 교육부가 우려한 바와 같이 대규모 촛불시위라고 하기에는 쑥스러운 수준이었다.

사실 교육부에서는 이날의 집회를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경찰에 집회를 주도하는 세력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는가 하면 일선 고교에는 학생들이 집회에 참여하지 말도록 지도할 것을 당부하는 공문을 내리기도 했다. 집회 당일에도 일선 고교 교사들과 장학사들로 구성된 대책반을 현장에 보내는 등 그야말로 집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정작 ‘흥분’한 쪽은 교육부

잔뜩 긴장한 교육부와 달리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당당했고 심지어 발랄하기까지 했다. 몇몇 학생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전경들에게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며 기념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수원의 한 고교1학년 학생은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뀌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못하는 아이들이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면서 상대평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경기도의 한 외국어고등학교의 학생은 “내신성적 잘 받으려 예체능 실기과목까지 과외받는 친구도 있다”며 내신성적 강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학생들은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 “획일화된 교육제도와 대학입시에 대해 반대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서 나온 고교생들의 주장을 몇 줄로 요약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사회]우리는 지금 광화문으로 간다

교육부 권효근 장학관은 “적어도 교육부 대입제도안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는, 엄청난 일이 터진 것처럼 알려진 것과는 달리 누가 주최하는지 실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주장하는 내용도 전혀 통일되지 않아 대응이 어려웠다”면서 “실체와 주장이 명확해야 대화든 타협이든 가능할 것 아닌가”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서울 모 고교 교사는 “애초부터 이번 촛불집회는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익숙한 학생들이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잠시 들뜬 양상을 보인 것이 전부”라며 “열정이 있는 만큼 오히려 때로는 맹목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위험해 보일 수 있지만 맹목적 열정이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가라앉는 것이 순리”라며 교육부와 언론의 과잉대응을 지적했다.

월드컵 거리응원으로 사전 경험

반면 고교생들의 일련의 촛불집회 움직임을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다.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수 고동현 박사는 “지금의 10대는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이라는 방식을 통해 공동체의식과 함께 광장을 경험한 세대”라며 “당시의 경험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쳐줬다”고 전했다.

고교생들의 잇단 촛불집회가 한때의 소나기와 같은 함성에 그치는 것이든 아니면 본격적인 문화현상의 시발점이든 교육계 안팎에서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것이 있다. 이들을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의 개입이다.

5월 7일 촛불집회는 사실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이라는 단체가 입시경쟁에 희생당한 학생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촛불추모제를 기획하면서 비롯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단체가 내신제도 등 대입제도안에 반대하는 아이들을 선동하거나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보내기도 했다.

[사회]우리는 지금 광화문으로 간다

그런가 하면 두발자유화를 주장한 5월 14일 촛불집회는 주도권을 둘러싸고 행사 직전 주최측이 두 쪽으로 나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태의 전모는 이랬다. 애초 이 집회를 주도한 쪽은 청소년 온라인모임 ‘아이두넷’이었다. 그런데 5월 7일 대입안 반대집회를 ‘결과적으로’ 주도한 모양이 돼버린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역시 같은 날 오후 7시 광화문에서 두발자유화 집회를 열겠다고 나선 것. 게다가 이 과정에서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에 비회원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대의원인 이계덕씨(19·성공회대 1년)가 아이두넷 대표 이준행씨(20·성공회대 2년)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5월 1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두 단체의 감정싸움은 극에 달했다.

행사 주도권 싸움 볼썽사나워

이씨는 진정서에서 “아이두넷을 독단적으로 운영하는 이준행씨에 대해 비판글을 자주 올렸다는 이유로 이씨가 나를 음해하고 있다”면서 “집회도 같이 하기로 해놓고서는 느닷없이 별도의 집회를 발표하고 나섰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준행씨는 “이씨에 대한 글은 내가 아니라 우리 회원들이 자유롭게 띄운 것”이라며 “14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열리는 아이두넷 회원들의 집회도 3월부터 신고된 합법적인 집회로 오후 7시부터 열리는 이씨측의 야간 불법집회와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로서는 고교생들의 집회에 대해 기본적으로 청소년들의 사회참여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 “다만 이를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개입될 수 있어 이 부분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비인격적인 두발 규제

학생 두발자유화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청소년 포털사이트 아이두넷 등이 주도하고 있는 두발제한 철폐 움직임이 거세지자 교육부에서는 학생생활규정 개정 등에 학생들의 참여를 권고하는 등 학생들을 달래기 위해 나섰지만 억눌려 왔던 학생들의 분노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5월 14일 두발자유화 촛불집회는 물론 17일에는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가 오후 1시부터 명동 아바타거리에서 두발자유화 캠페인을 벌인다.

구논회 의원(열린우리당)이 지난해 전국 165개 학교의 생활규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두발자유화를 허용하는 학교는 단 1개교(0.7%)밖에 되지 않았다. 신발이나 가방까지 규제하는 학교는 각각 70%와 37.4%를 차지할 정도였다.

특히 학생들의 불만은 대부분의 학교가 앞머리 3㎝, 5㎝, 7㎝ 등 규정이 있음에도 실제 단속은 이보다 훨씬 철저하거나 교사의 마음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ㄴ중학교의 한 교사는 “아직까지 많은 학교에서 최소한의 규정도 무시하며 교사의 주관적인 잣대에 따라 학생들의 머리 모양을 규제하고 있다”면서 “심지어 지난해 부산의 한 인문계 고교에서는 한 교사가 방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폭행과 가위질을 해 문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한편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두발자유화 등을 주장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기 높아지자 5월 9일 청소년 및 학생대표와 만나 오찬을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아이두넷의 이준행씨는 “두발규제가 강제 이발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5년 전부터 문제삼았는데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인격적이고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는 만큼 교육당국의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두발 문제는 학교별로 학생·학부모의 의견을 들어 학생생활 규정을 마련한 뒤 다뤄야 한다는 게 교육부 정책”이라며 “학교가 많다보니 학교별로 좋은 학습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욕심에 비인격적인 일부 행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