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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향기 봄바람 타고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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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매화 향기 봄바람 타고 솔솔~

◇여행코스

광양시 매화마을→옥룡사지→중흥사→백운상휴양림→섬진교→하동송림→쌍계사→악양 최참판 댁

해마다 봄만 되면 부르는 이 없어도 섬진강을 찾아간다. 맑은 강물에는 봄이 오는 소리가 녹아 있고 산비탈에는 매화가 활짝 피어 드디어 이 땅에 봄이 왔음을 신고한다. 전남 광양의 섬진마을을 둘러보고 옥룡면의 보리밭과 동백림도 만나본다. 섬진교를 건너 경남 하동 땅으로 들어가서는 쌍계사의 차밭이며 악양면의 최참판댁 장독대를 살펴본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천지간에는 봄이 무르익어간다. 이 여행길에 마음 속으로나마 김용택 시인과 동행해본다. 시집 ‘섬진강’이며 산문집 ‘섬진강을 따라가 보라’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등이 외로운 여정의 반가운 길동무가 되어준다.

하동군 화개면과 구례군 간전면 사이, 섬진강 물결 위에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영호남의 화합을 상징하는 남도대교다. 이 교량이 섬진강변 봄여행의 기점이다. 섬진강을 가운데 두고 강변을 따라 전라도쪽에는 861번 지방도가, 경상도쪽에는 19번 국도가 뻗어 있다. 혹자는 서정미 넘치는 섬진강 위에 놓인 다리치고는 너무 거창하다고 남도대교의 생김새를 비판도 한다.

어쨌거나 여기에서 광양시 다압면 땅부터 드라이브한다. 차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은 여간 간지러운 것이 아니다. 바람의 틈새를 잘 뒤져보면 매화 향이 숨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강변 산비탈 곳곳에는 매화가 활짝 피어 자주 차를 멈추게 한다. 아직 봄을 시샘하는 추위를 피해 망울 속에 몸을 숨긴 꽃이 많건만 매화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3월 초순만 되면 이렇듯 제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다압면 도사리의 매화마을이 가까워질수록 향기의 농도는 짙어만 간다.

가지마다 하얗게 꽃을 피운 나무들 사이로 들어간다. 가지가 상하지 않게, 꽃봉오리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걷는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나무 밑에 보리를 심어놓기도 했다. 이는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거름 냄새도 가끔씩 매화 향기에 섞여 코 끝을 자극한다. 이리저리 돌면서 사진을 찍다가 편편한 자리를 골라 앉은 다음 섬진강 물줄기와 맞은편의 하동 땅 산비탈에 눈길을 주기도 하고 매화를 소재로 한 시편들도 감상한다.

김시천 시인의 ‘늙은 매화나무 아래서’가 여기에 잘 어울리는 시다. ‘늙은 매화나무 아래서 백발 노옹 한 말씀 하신다/ 내가 평생 거름 져 날라 살렸더니 저도 나를 먹여살리네요/ 그 말씀 꽃보다 향기롭고 열매보다 실하구나/ 늙은 매화나무 아직 정정한 꽃 피는 봄날’

‘봄꽃을 보니’란 시도 두고두고 가슴을 울린다. ‘봄꽃을 보니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풀고 봄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었다 지고 싶습니다’

[여행]매화 향기 봄바람 타고 솔솔~

바지의 흙을 털어낸 뒤 이번에는 청매실 농원으로 들어선다. 매실 명인 홍쌍리 여사가 시아버지의 뒤를 이어 청춘을 다 바쳐가며 일궈낸 청매실 농원. 홍여사의 숱한 고생 덕에 이제 와서는 광양의 명소가 되었으며 봄꽃 그리운 여행자들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인다. 사람 붐비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쩌랴. 매화가 사무치도록 그리워 밤을 새워 달려온 이들인데 한 며칠 북새통을 이룬다고 해서 누구를 탓하랴. 그래도 조금 더 한적하게 매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이른 새벽, 섬진강 물안개가 걷히기 전에 농원(061-772-4066)을 방문할 일이다. 섬진마을에서는 3월 12일부터 20일까지 제9회 광양매화문화축제가 열린다(문의 광양시청 문화홍보담당관실 797-3363).

광양시에는 매화꽃과 광양제철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백운산(1218m) 남쪽 양지바른 터에 자리한 옥룡면에 가서 무당벌레가 천방지축으로 노니는 파릇파릇한 보리밭과 옥룡사지의 동백림, 중흥사지의 생강나무꽃, 백운산휴양림의 숲길도 걸어봐야 제대로 된 여행이다.

옥룡면 추산리의 옥룡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35년간 옥룡사에 머물면서 수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고 입적했다. 여러 차례 화재로 폐찰되었다가 1960년대 이후 다시 대웅전이 들어서면서 절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옥룡사지 주변 2만여평의 숲에는 7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심은 것이라고 한다. 옥룡사지와 동백림은 사적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광양에 매화가 피는 시기에는 섬진강 동편, 하동읍에서 악양면과 화개면에 이르는 산비탈에도 골고루 매화가 피어난다. 드라마 ‘토지’의 촬영 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에 들어서면 봄볕을 가득 머금어 가까이 다가갈수록 향기가 진해지는 매화가 여행객들의 방문을 반긴다. 기와집이며 초가, 장독대 모두 최근에 지은 것들이지만 매화가 있어 생명력을 지닌 건축물로 다가온다. 문화유산 답사에 취미가 있는 여행자들은 고소산성에 올라 평사리 너른 들판과 섬진강 물줄기를 감상하기도 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들어가는 화개천변에도 차밭 주위로 매화가 많이 핀다. 날로 초록빛을 더해가는 차밭과 흰 매화의 조화가 돋보인다. 광양처럼 무리지어 피면 더없이 보기에 좋을 터이나 띄엄띄엄 모습이 보이니 다소 아쉽다. 예까지 와서 발길을 돌릴 수 없어 쌍계사로 들어가 벚꽃 대신 동백꽃을 감상하고 차시배지 기념탑도 살펴본다. 칠불사까지 가려다가 다음을 기약하고 차 맛을 보고자 산골제다(055-883-2511)라는 곳을 찾아간다. 주인 김종관씨는 5대째 차를 재배한다는 유명 인사다. 그는 녹차를 소재로 냉면, 국수, 수제비 등의 식품도 개발했고 녹차마을이라는 체인도 운영한다. 쌍계사 입구 다리를 지나서 150m 정도 칠불사 방면으로 올라간 다음 쌍계한의원 맞은편에서 좌측 마을길로 접어들면 제다로 갈 수 있다.

잔이 빌 틈도 없이 녹차가 계속 잔에 채워진다. 그는 연신 화개녹차의 우수성과 우리 음식 개발의 이면을 털어놓는다. 지리산의 정기 가득한 녹차로 배를 불리니 새 봄이 이제 내 몸 속에 확연히 스며들었음을 감지하게 된다.

[여행]매화 향기 봄바람 타고 솔솔~

◇여행메모

광양시(지역번호061)

숙박-섬진마을의 민박을 이용한다.
오세균(772-3044), 조상현(772-0003), 조용병(772-3823), 황인규(772-3749), 김충길(772-3937), 박경조(772-0146), 박계수씨(772-1898) 민박 등.
맛집-대중식당(광양읍 칠성리, 762-5670)은 3대째 광양숯불구이의 맛을 잇고 있는 식당이다. 한국식당(광양읍 읍내리, 762-9292)도 40여년 전부터 광양숯불구이를 맛보여주고 있다.

하동군(지역번호055)

숙박-쌍계사 입구 위쪽의 수류화개(882-7706)라는 펜션형 한옥이 돋보인다.
맛집-강남식당(화개면 탑리, 883-2147)은 섬진강에서 잡히는 재첨과 참게를 이용해 만든 재첨국, 참게탕, 참게장 등으로 유명하다.

글-사진 유연태(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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