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킬러 - 전문 살인청부업자의 보편적 고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관객 입장에서는 편안하게 즐기는 상업영화로 접근해도 무방하다. 무고한 주변 인물들까지 살해하는 냉혹함과 매번 돌발적 난관에 부딪히는 주인공의 모습은 꽤 생경한 재미로 다가온다. 패스벤더의 스크린 복귀도 관람의 포인트다.

제목 더 킬러(The Killer)

제작연도 2023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18분

장르 스릴러

감독 데이비드 핀처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틸다 스윈튼, 소피 샬롯, 알리스 하워드, 찰스 파넬

개봉 2023년 10월 25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이름이 하나의 상표처럼 인식되고 신뢰받는 것은 가장 큰 성취일 것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이나 정서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작가’로서의 자격을 논할 여지가 생긴다.

현대 할리우드 감독 중 데이비드 핀처는 대표적 인물이다. 1990년대 영화계의 중요한 경향 중 하나였던 CF,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의 영화계 진출 봇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때 대형 감독들의 등용문으로 인정받았던 <에이리언> 시리즈의 3편(1992)으로 데뷔식을 치른 그는 두 번째 작품 <세븐>(1995)으로 범죄 스릴러의 판도를 바꾸며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다진다. 이후 <파이트 클럽>(1999), <조디악>(2007),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 <나를 찾아줘>(2014) 등의 수작들을 내놓으며 현대 할리우드 영화의 든든한 기둥으로서 흔들림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더 킬러>는 그의 12번째 장편영화다. 핀처의 영화들을 전반적으로 만만한 영화라고는 볼 수 없지만, 작품 의도와 소재에 따라 균형과 무게감이 편차를 보이기도 한다. 넷플릭스의 지원으로 연출한 전작 <맹크>(2020)는 실존 인물인 각본가 허먼 J. 맹키위츠 인생 역정의 일면을 흑백으로 찍어낸 진중한 작품이었다.

적절한 균형과 무게감의 액션 스릴러

이번 작품은 의외로 적절한 균형과 무게감으로 완성됐다. 관객 입장에서는 편안하게 즐기는 상업영화로 접근해도 무방하다.

<더 킬러>는 프랑스 작가 알렉시스 놀렌트가 각본을 쓰고 뤽 자카몽이 그림을 그린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과 비디오 게임 각본 등 문학적 영역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알렉시스 놀렌트는 그래픽 노블에 있어서는 마츠(Matz)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더 킬러>는 그의 대표작이다.

앞선 2012년에는 그의 다른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 <불릿 투 더 헤드>가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으로 만들어져 국내에도 공개됐고, 봉준호 감독이 각색해 연출한 <설국열차>의 원작이었던 그래픽 노블의 이전 이야기를 그린 프리퀄을 2019년 집필하기도 했다.

원작의 이색적이고 냉소적인 분위기에 매료된 데이비드 핀처는 2007년부터 영화화를 욕심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파라마운트 픽쳐스가 배급할 계획으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며 결국 넷플릭스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국내에는 10월 25일(미국보다 이틀 빠르다) 극장 개봉을 선행한 후 11월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소극적 개봉은 당연히 공식적으로 개봉작을 대상으로 하는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겨냥한 포석이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4년 만의 복귀작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수많은 가명을 쓰지만 정작 진짜 이름은 드러나지조차 않은 암살자가 주인공이자 핵심이다. 그리고 이전의 유사한 작품들과는 다른 지점에 초점을 맞춰 인물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초반 대상을 저격하기 위해 기다리는 장면은 감각적인 영상과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내세워 전개된다. 마치 한편의 영상시나 심리드라마처럼 섬세하게 그려지는데 빈틈없어 보이지만 무료함을 떨쳐내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전문적이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허세로까지 보인다.

이후 본격적인 도주와 추적이 전개되며 영화는 기존 범죄 스릴러물의 익숙한 형태와 분위기로 복원된다. 그 와중에도 나름의 차별성을 놓지 않는다.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다는 철칙하에 무고한 주변 인물들까지 살해하는 냉혹함과 그런 철두철미한 가운데도 매번 돌발적 난관에 부딪히는 주인공의 모습이 꽤 생경한 재미로 다가온다. 이를 설득력 있게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스크린 복귀도 관람 포인트다.

그는 연기 활동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2018년, 과거 여자친구를 폭행해 접근금지명령 처분을 받았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실상 활동을 접었다. 2017년 배우인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이미 결혼한 상태였기에 사건은 더 크게 논란이 됐다. 변함없이 매력적인 연기를 펼친 <더 킬러>가 이후 그의 활동에 어떤 이정표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코믹스 또는 그래픽 노블

hipcomic.com

hipcomic.com


<더 킬러>와 마찬가지로 지난 10월 18일 개봉한 재즈를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의 크레딧에는 이시즈카 신이치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원작이라 명시돼 있다. 하지만 2013년 처음 연재를 시작했을 때부터 단행본 출판에 이르기까지 원작과 관련된 별도의 정보 어디에도 그래픽 노블이란 표현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자리엔 ‘만화(漫畵)’ 또는 ‘코믹스(Comics)’라는 표현이 대신하고 있다.

코믹스와 그래픽 노블,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동을 포함한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인 형태의 만화책을 코믹스, 그보다 글자가 많고 좀더 예술적인 작화들로 채워 주로 성인층을 겨냥한 것을 그래픽 노블로 구분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이 같은 정의는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한 만화책의 형태와 출판사의 고급화 전략이 맞물려 유도된 개념이다.

그래픽 노블이란 말은 1978년 유명 만화가 윌 아이스너가 <신과의 계약>(A Contract with God·사진)이란 작품을 내놓으며 처음 사용했다. 자기 작품이 이전까지 아이들의 전유물로 치부되던 ‘만화책’의 편견을 넘어서길 바라는 마음에서 의도한 것이었다.

이후 만화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고, 문학의 영역까지 발돋움했다. 그래픽 노블 사상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Maus: A Survivor’s Tale·1991)나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닉 드르나소의 <사브리나>(Sabrina·2018) 등이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어느덧 만화책이나 코믹스라는 표현보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표현이 좀더 고급스럽고 한 단계 높은 영역의 창작물인 것처럼 오해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는 둘을 구분하는 명백한 기준이나 원칙은 없다. 부르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시네프리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