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왜 유류세 내리면서 대중교통비 올리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정부의 유류세 인하 연장 발표를 앞둔 지난 8월 15일 서울 시내 주유소의 모습 / 연합뉴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연장 발표를 앞둔 지난 8월 15일 서울 시내 주유소의 모습 / 연합뉴스

불평등과 기후위기라는 두 가지 시대적 문제는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좀처럼 개선되지 않을까.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이것 역시 이유가 있다. 이 문제들을 악화시키는 제도와 정책이 촘촘하게 짜여 있고, 심지어 새로운 정책조차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가 현행 유류 세금체계와 대중교통 체계라면 후자가 유류세 인하와 버스·지하철 요금 인상이다. 과연 유류세를 이토록 오랜 기간 전폭적으로 내리고, 대중교통 요금을 이리 속절없이 올려야 할까. 이 질문을 진지하게 다뤄보고자 한다.

우리 정부는 2021년 11월 12일부터 현재까지 유류세를 인하하고 있다. 2020년 초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급감으로 국제유가의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 37달러를 기록한 기현상마저 보였지만, 2021년부터 수요 회복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맞물리면서 유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2021년 11월엔 국제유가가 1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유류세를 20% 인하하기 시작했고,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자 2022년 5월 1일엔 유류세 인하 폭을 30%까지 확대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같은 해 7월 1일엔 당시 법정 최대한도인 37%까지 인하 폭을 넓혔다. 올해 휘발유에 대해서만 유류세 인하율을 25%로 축소했으나, 가격 불안 정도가 큰 경유에 대해선 37%의 인하율을 유지 중이다.

문제는 유류세 인하가 별 문제 제기 없이 계속 연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2021년 11월엔 6개월간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인하하기로 했으나, 계속 연장된 결과 올해 8월 말까지로 종료될 예정이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그러나 8월 16일 “국민 부담 완화와 국제유가 오름세를 감안해 10월 말까지 현재의 탄력세율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10월엔 어떤 선택을 할까. 내년 4월 총선과 현 정부의 기조 등을 감안하면 다시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선택을 하기 전에 따져봐야 할 요소가 많다.

장점은 없고, 단점은 큰데 이대로 계속?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한 전례는 세 번이었다. 2000년에 2개월간 유류세를 인하했고, 국제유가가 1배럴당 140달러까지 치솟은 2008년에 10개월간 유류세를 10% 인하했다. 2018년에도 10개월간 유류세를 인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21년 11월부터 시작된 이번 인하는 기간도 인하 폭도 역대급이다.

그렇다면 유류세의 효과는 어떨까. 대표적 고물가 대책이니 물가가 내려가는 효과는 확실할까. 그렇지가 않다는 게 문제다. 장희선(전북대), 최봉석(국민대) 교수가 지난 3월 ‘에너지경제연구’에 기고한 ‘유류세 인하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이란 논문을 보면 휘발유의 경우 유류세 인하분의 26~49%가 판매 가격에 반영됐고, 경유의 경우엔 유류세를 20% 인하했을 땐 인하분의 12~27%가 판매가에 반영됐고, 오히려 30% 인하했을 때 판매 가격이 올랐다. 당시 경유 가격이 1배럴당 150달러로 급등하던 이례적인 시기였고, 경유의 수요자 중의 상당수가 화물차라서 가격에 따라 수요량이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유류세 인하의 장점이 물가 부담의 완화라면 단점은 탄소 배출량 증대와 불평등의 악화다. 기후위기로 인해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함에도, 한국 정부는 물가가 오를 때마다 유류세를 인하하며 유류 소비를 부추겼다. 유류세 인하의 혜택은 주로 고소득층이 누린다. 고소득층일수록 유류 소비량이 많기 때문이다.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인하한 2018년의 자료를 분석한 국회예산정책처의 ‘에너지세제 현황과 쟁점별 효과 분석’(이영숙·박정환·김재혁, 2019년 발간) 자료를 보면 최저 소득계층인 1분위의 세 부담 변동은 1만5000원에 불과했으나, 최고 소득계층인 10분위의 세 부담 변동은 15만8000원이었다. 유류세 인하로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훨씬 큰 혜택을 누린다는 실증 자료인 셈이다.

서울역 인근을 지나는 버스들 / 연합뉴스

서울역 인근을 지나는 버스들 / 연합뉴스

결국 유류세 인하는 장점인 물가 부담의 완화 효과도 별로 없고, 단점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악수(惡手)라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별 문제 제기 없이 유지되고 있고, 여러 연구기관이 내년에도 석유 수요가 꾸준하거나 약간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어 연말과 내년까지도 유류세 인하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타이밍에 꼭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 과연 이대로 유류세를 인하하는 게 최선일까. 또한 유류세는 이대로 둬야 할까.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세금

유류세 자체의 문제부터 다뤄보자. 일단 유류세는 편의적인 표현이다. 유류 제품에 부과되는 세금을 세목으로 나열하면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 주행세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휘발유와 경유에 각각의 세율이 부과되고, 유류에 부과되는 교육세와 주행세는 교통·에너지·환경세의 일정 비율로 부과된다. 이렇게 거둔 세금은 어떻게 사용될까. 우리의 조세 구조에선 어떤 세금은 그냥 정부의 ‘일반 지갑’(일반회계)에 들어가지만, 특정한 세금은 처음부터 용처가 정해져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후자다. 교통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지갑인 ‘교통시설특별회계’에 68%가 배분되고, 환경개선특별회계란 지갑에 23%,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2%, 기후대응기금에 7%가 자동으로 분배된다. 이 배분 비율도 계속 변화해왔다. 처음 이 세목이 만들어진 1994년부터 2000년까진 세수입 전액이 교통시설특별회계로 들어갔으나, 이 비율이 점차 줄어 68%에 이르렀다. 기후대응기금엔 2022년부터 배분되기 시작했다. 석유에 거둔 세금으로 과거엔 주로 도로, 철도, 공항, 항만 등 교통시설을 확충하는 데 사용했다. 이중 도로 건설에 사용되는 비중이 가장 컸다.

이처럼 불과 20여 년 전까진 유류세 대부분이 도로를 만드는 데 사용됐지만, 기후 재난이 현실화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석유 소비에 거둔 세금의 70%가량을 여전히 석유를 더 쓰도록 도로를 만드는 데 쓴다는 건 기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꿀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1994년 도입 당시엔 2003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용될 계획이었으나, 7차례 일몰을 연장해 2024년 말까지 유지될 전망이다. 정치 일정상 올해는 쉽지 않지만, 내년 총선 뒤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완전히 재설계해 과세와 용처, 양쪽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성격을 분명히 하거나, 아예 탄소세로 대체할 수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를 개혁하기 위해서라도 총선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유류세 체계 내의 문제가 상존하는 데다 물가가 오를 때마다 유류세 인하를 남발하는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 유류세 인하로 세수입이 얼마나 감소하는지는 정확히 추산한 자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가 2022년 9월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에 따르면 2021년 11월부터 2022년 연말까지 유류세 인하로 총 8조8000억원의 세수입 감소가 예상된다. 당시의 세율 인하폭을 감안하면 유류세 인하로 한 해 10조원 이상의 세수입이 감소된다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장희선·최봉석의 논문에선 “유류세를 원칙대로 징수하고 이 재원을 보조금 형태로 지원이 필요한 대상에게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고 제안했는데, 포기한 세수입 10조원이면 어떤 정책이 가능할까.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24)왜 유류세 내리면서 대중교통비 올리나

윤석열 정부의 K패스를 기대하며

독일은 2023년 5월부터 49유로(약 7만원)로 한 달간 지역 철도, 지하철, 버스, 트램 등 전국의 모든 근거리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도이칠란드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정책은 2022년 6월부터 8월까지 9유로로 전국의 근거리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9유로 티켓’의 후속판이다. ‘9유로 티켓’ 자체가 3개월간 유류세를 인하하는 대신에 그 재원으로 실시한 이벤트성 정책이었고, 독일 시민들의 열정적인 지지로 ‘49유로 티켓’으로 제도화된 것이다. 독일 정부는 ‘9유로 티켓’으로 3개월간 2조원을 넘게 썼고, ‘49유로 티켓’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연간 2조원 이상을 책정했다. 한국의 유류세 인하로 포기한 세수입 10조원이면 ‘49유로 티켓’보다 더 나은 교통권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단 의미다.

한국은 거꾸로다. 전국에서 대중교통 요금이 오르고 있다. 서울에선 8월 12일부터 버스 요금이 1회당 300~700원 올랐고, 지하철 기본요금도 10월 7일부터 150원 오른다. 수도권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대중교통 요금도 최근 올랐거나 오를 예정이다. 주로 유류비 증가로 인한 비용을 반영한다는 취지다. 특히 광역지자체가 아닌 대부분의 지역에서 대중교통인 버스의 수송 분담률이 낮기 때문에 서비스 품질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버스회사에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버스 배차 간격과 노선 등의 서비스 만족도가 낮아 수송 분담률이 7.5% 수준에서 바뀌지 않고 있다.

한국에도 전향적인 대중교통 정책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에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K패스라는 지하철과 버스 통합 정기권을 내년 하반기부터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월 6만5000원으로 서울 내 대중교통을 무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를 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의당은 올해 초부터 ‘대중교통 3만원 프리패스’를 중점 정책으로 홈페이지에서 첫 번째로 내걸고 있다.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9월 14일 청년들에게 월 3만원으로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청년패스’를 판매하자고 주장했다. 이런 논의를 종합해 윤석열 정부가 여야와 전국 지자체를 아우르는 통 큰 ‘협의체’를 만들어 전향적인 K패스 정책을 내놨으면 한다. 어떤 돈으로 하냐고? 유류세 인하만 안 해도 돈은 충분하다.

<윤형중 LAB2050 대표>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