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돈의 논리 ‘고탄소 프로젝트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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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케이팝 팬들의 기후행동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의 활동가들이 지난 7월 18일 BTS의 <버터(Butter)> 앨범 사진으로 유명한 강원도 맹방해변에서 신규 석탄발전소 가동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날 삼척블루파워는 시운전용 연료로 사용될 유연탄의 육상운송을 시작했다. / 케이팝포플래닛 제공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의 기후행동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의 활동가들이 지난 7월 18일 BTS의 <버터(Butter)> 앨범 사진으로 유명한 강원도 맹방해변에서 신규 석탄발전소 가동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날 삼척블루파워는 시운전용 연료로 사용될 유연탄의 육상운송을 시작했다. / 케이팝포플래닛 제공

“대기 중에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1t 증가할 때마다 기후가 받는 악영향은 더 커진다. 화석연료 배출가스가 1t씩 늘어날 때마다 지구온난화가 가중되고, 기후변화로 인해 어린 원고들은 지금, 그리고 미래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주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지 않고 화석연료 활동을 승인했다.”

지난 8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기후소송 재판에서 몬태나주 법원의 캐시 시엘리 판사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판결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2020년 당시 만 5~18세였던 원고 16명이 주정부가 석탄 및 천연가스 생산 같은 프로젝트를 허용해 기후위기를 심화시켰다며 주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이었다. 이날 판사는 주 환경규제당국이 새로운 에너지 프로젝트를 평가할 때 온실가스 배출의 영향을 무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이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주 헌법을 위반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온실가스가 1t 추가 배출될 때마다 원고들이 돌이킬 수 없는 기후 피해를 입을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산화탄소 1t이 배출될 경우 발생할 미래의 모든 사회적 피해의 현재가치를 사회적 탄소비용(Social Cost of Carbon·SCC)이라고 한다. 1t의 이산화탄소를 줄였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이익의 현재가치를 뜻하기도 한다. 몬태나주의 기후소송에서 SCC의 구체적 수치가 언급되진 않았지만, 정부가 민간의 화석연료 투자 사업을 승인할 때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사회적 피해를 인허가 결정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점이 눈에 띈다. 기후위기 시대, 탄소 배출의 사회적 비용을 경제 활동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기업의 시설투자, 연구개발 투자는 물론 정부와 지자체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마찬가지다. 판결문도 이런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탄소가격이 투자를 결정한다

탄소에 가격을 매기면 탄소 배출로 인한 피해를 경제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배출에 따른 비용을 투자의 경제성 평가에 반영하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사업은 경제성이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배출 저감시설에 투자할 경우 기존에는 경제성이 없었지만, 감축에 따른 이익이 반영되면서 경제성이 개선될 수 있다. 자연히 기업과 정부의 탈탄소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가령 ‘푸르게’라는 기업에 A와 B 투자안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A는 온실가스 저감 설비를 갖춘 공장을 새로 짓는 투자안이다. B는 기존의 고탄소 설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생산 능력만 확충하는 투자안이다. A에 투자할 경우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의 현재가치는 10억원이고, 투자비는 7억원이라고 하자 B의 경우 미래 현금유입의 현재가치가 10억원, 투자비가 5억원이라고 가정하자. A 투자안으로 들어설 시설은 배출 저감시설이 있어 연간 배출량이 5000t이다. B 투자안의 배출량은 1만t이다. 이 회사의 투자위원회는 A 투자안이 환경에는 좋지만, 기업 이익의 측면에선 B가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탈탄소 능력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과거엔 굴뚝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에 아무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았지만 이젠 쓰레기를 버릴 때 종량제 봉투를 사듯, 온실가스를 버릴 권리를 배출권 시장에서 사야 한다. 배출권 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의 가격이 1t당 5만원이라고 하자. 이 회사는 B 투자안으로 들어선 시설에서 나오는 연간 1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사야 한다. 그 비용은 5억원이다. A 투자안이었을 경우 연간 배출권 구매비용은 2억5000만원이다.

기후위기 시대 돈의 논리 ‘고탄소 프로젝트의 종말’

이 상황에서 다시 A와 B의 경제성을 평가해보자.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의 현재가치는 배출권 구매비용을 빼서, A가 7억5000만원, B는 5억원이 된다. 편익과 비용의 비율은 A가 1.42에서 1.07로, B는 2.0에서 1.0으로 바뀐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기존에 선호됐던 투자안이 무시되고, 저탄소 투자가 더 선호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 기업이 A에 투자해 1t당 처리 비용을 3만원으로 낮출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면 A의 경제성(B/C)은 1.21로 더 커지게 된다. 저탄소 기술이 있다면 경제성은 더 커지기 때문에 이 분야의 연구개발 투자를 늘릴 유인이 생긴다.

배출비용이 1t당 5만원을 넘을 경우 B 투자안으로 들어선 시설은 ‘좌초자산’(이미 투자됐지만 수명이 다하기 전에 더 이상 수익을 못 내는 자산)이 된다. 탄소배출량과 배출권 가격에 따라 기업의 자산가치가 요동칠 수 있는데 이는 기업과 투자자 입장에서 중대한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관련 정보는 투자의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과 기회의 요인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라는 ‘기후공시’가 2025년 도입을 앞두고 있다. 지난 6월 26일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밝힌 기후공시의 공개 사항 중 하나가 기업이 인식하는 탄소가격이다. 기업별로 ‘내부 탄소가격’(Internal Carbon Price)을 정해 시설투자나 연구개발 투자를 결정할 때 반영하라는 것이다. 내부 탄소가격은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경제적 비용을 내부화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탄소 배출에 부여한 가치를 뜻한다. EU 집행위가 제시한 유럽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도 기후변화 영역에서 내부 탄소가격을 설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탄소공개프로젝트(CDP)와 같은 글로벌 이니셔티브에서도 관련 정보 제공을 요구 중이다.

내부 탄소가격 도입하는 기업 늘어나

내부 탄소가격을 반영하려는 기업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CDP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가격을 도입한 기업의 수는 2019년에서 22% 증가한 853개 기업이고, 1159개 기업이 2년 내 도입을 계획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내부 탄소가격이나 공공투자에서의 사회적 탄소비용이 투자의 가부를 가르는 중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에너지·기후변화 정책을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인 넥스트그룹의 한정현 선임연구원은 “탄소가격을 정확하게 반영해야 투자 프로젝트의 비용과 이익이 제대로 산정된다. 기후공시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의 환경변화로 고탄소 사업을 배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부 탄소가격을 자체 산정해 심사하면 자연스레 고탄소 투자안은 배제되고 저탄소로 사업구조가 전환된다”고 설명했다. 이옥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파트너(ESG·기후)는 “기존에는 사업성(경제성)이 없어 투자하기 어려웠던 탄소 감축 투자건이 내부 탄소가격을 고려해 경제성을 재평가할 경우 투자 가능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내부 탄소가격의 목적 자체가 탄소 배출이라는 외부효과를 내재화하기 위한 수단인 만큼 내부 탄소가격을 투자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탄소 감축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지윤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기후변화 대응을 내부적 경영 의사결정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이다. 탄소비용을 경제성장률, 금리, 유가, 환율과 같은 변수들과 동일선상에서 다루는 과정에서 탄소 다배출 프로젝트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탄소 감축 규제를 강하게 받아왔던 석유화학 업종 내 글로벌 선도기업은 이미 내부 탄소가격을 활용하고 있다. 석유기업 BP는 2억5000만달러 이상의 투자 안건에 내부 탄소가격을 기준으로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평가한다. 내부 탄소가격은 2025년 50달러에서 시작해 2030년 100달러, 2040년 200달러, 2050년 250달러로 설정했다. Shell도 2030년 1t당 25~200달러, 2050년 125~200달러를 목표로 정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파리협약의 목표를 달성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종합 고려해 가격을 설정했다.

배출권 시장의 가격 수준에 맞춰 내부 탄소가격을 정하는 기업도 있다. 노르웨이의 석유기업 에퀴노어는 노르웨이 탄소세와 유럽연합의 배출권거래시장(EU-ETS)의 가격에 기반해 2022년 58달러, 2030년 100달러 수준으로 정했다. 옥시덴탈처럼 국제에너지기구 등 외부기관의 탄소가격 전망(2025년 63달러·2030년 100달러 등)에 기반해 내부 탄소가격을 정하기도 한다. 화학기업 Solvay는 1t당 100유로의 내부 탄소가격을 설정해 탄소 감축을 위한 투자 의사결정에 활용 중이다.

기업 내부적으로 탄소 배출에 대한 부담금(내부 탄소세로도 불림)을 매기는 사례도 있다. 모범 사례로 마이크로소프트를 들 수 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쓴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2023·다산북스)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12년부터 ‘지구에 유익한 것은 비즈니스에도 유익하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회사 내에 탄소부담금제도를 도입했다. 데이터센터, 사무실, 실험실 등 회사 내 모든 부서에서 배출하는 탄소에 대해 일정한 금액의 ‘세금’을 강제적으로 부과한 것이다. 2020년부터는 모든 공급망으로 확장해 1t당 5달러를 부과하고 있다. 효과는 컸다. 750만t의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부담금 수입으로 100억㎾h에 달하는 재생에너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회사 전체적으로 매년 1000만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를 봤다. 최근 파나소닉도 2025년부터 1t당 143달러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포스코가 건설하는 삼척블루파워(삼척석탄화력발전소)의 1호기 석탄저장고가 앞에 보인다. / 삼척블루파워 제공

포스코가 건설하는 삼척블루파워(삼척석탄화력발전소)의 1호기 석탄저장고가 앞에 보인다. / 삼척블루파워 제공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들이 내부 탄소가격을 활용하거나 도입을 준비 중이다. KT&G의 경우 2021년 신규 투자의 경제성 분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잠재적 탄소비용 부담을 고려한 의사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내부 탄소가격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이 높고 대부분의 감축 활동이 이뤄지는 제조공장에서 투자 회수기간을 검토할 때 사용하고 있다. 내부 탄소가격제 적용 범위는 올해 인도네시아 등 3개 해외공장까지 확대한다.

가격은 1t당 5만원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현재 배출권 가격의 6배가 넘고 누적 최고가인 4만800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배출권보다 높은 내부 가격을 설정할 경우 그만큼 탄소 감축에 선제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회사는 국내 배출권 거래시장이나 국제 탄소규제를 고려해 추가 인상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T&G 관계자는 “현재 보이지 않는 미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투자 결정 시 내부 탄소가격을 고려하기로 했다”면서 “미래 비용은 단순히 회사의 온실가스 배출권 구매비용뿐만 아니라 기후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내부 탄소가격은 배출권 거래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LG전자도 내부 탄소비용을 책정해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 활동과 관련한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위험 요소를 발굴하는 데 활용 중이다. CJ제일제당은 탄소규제 강화에 따른 경영 리스크를 완화하고 실질적인 탄소저감 이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내부 탄소가격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태양광 설비 도입 등 저탄소 기술 투자, 기존 설비감축 투자 등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석유화학 업종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선두에 있다. 이 회사는 2025년 71달러, 2030년 120달러, 2040년 200달러를 설정해 올해 하반기부터 시설투자 안건을 검토할 때 활용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이나 KT&G의 경우 탄소가격이 100유로에 육박하는 EU-ETS의 가격보다는 낮지만, 국내 배출권 가격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게 설정돼 있다. 한정현 선임연구원은 “시장이 완벽하게 효율적이라면 잠재적 가격이든 묵시적 가격이든 내부 탄소세든 기업의 내부 탄소가격과 사회적 탄소비용, 배출권 가격은 모두 같아야 한다”면서 “국내 배출권 시장이 정상화돼 명확한 가격신호를 주는 게 가장 좋지만, 시장 정상화를 기다리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과 정치적 난관이 있어서 시장 정상화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기업 자체적으로 내부 탄소가격을 만들고, 정부는 예타 조사를 할 때 사회적 탄소비용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그 차이를 줄이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다”고 설명했다.

돈의 논리가 탈탄소 이끈다

기업이 서둘러 내부 탄소가격을 도입하는 이유는 글로벌 경쟁사와 보폭을 맞추려는 목적도 있지만,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가 크게 작용한다. 특히 글로벌 투자기관들의 연합체인 ‘기후행동100+(Climate Action 100+)’와 같은 글로벌 투자사들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GDP의 6배에 달하는 1경3000조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나 네덜란드 최대 연기금 운용사인 APG와 같은 대형 투자기관들이 모두 ‘기후행동100+’에 속해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이혜림 ESG 담당 프로젝트 매니저는 지난 8월 25일 넥스트그룹이 주최한 사회적 탄소가격 토론회에서 “우리는 가장 큰 압박이 투자자 진영에서 오고 있다고 느낀다. 일례로 기후행동100+의 경우 넷제로 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탄소 감축의 가장 큰 동기는 금융 부문에서 오고 있다. 기후공시 규제도 국내에 도입될 텐데, 이를 선제적으로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탄소 감축 로드맵을 이행하는 방안의 하나로 도입했다”고 말했다.

기업이 투자 안건을 심사할 때 내부 탄소가격을 기준으로 활용한다면, 은행은 기업에 투자하거나 대출을 해줄 때 기업의 내부 탄소가격을 활용할 수 있다. 한 선임연구원은 “뉴욕의 경우 ESG 관련 기준이 부동산 가치 평가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증권사부터 시작해 은행도 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할 때 탄소비용을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지윤 전문위원은 “미국 증권거래소의 기후공시, ISSB가 추진하는 글로벌 ESG 공시는 기업들로 하여금 기후변화 시나리오 분석을 요구한다. 즉 기후변화의 물리적 위험과 전환의 위험에 따라 기업이 처한 재무적 피해를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분석해 공표하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탄소비용을 기업이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어차피 반영해야 한다면 미리미리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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