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플라스틱 끊기, 정부·기업이 나서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회사 동료나 지인, 가족과 모임을 하며 올해를 되돌아보는 사람이 많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2년 넘도록 지속해왔기에, 모임에 대한 규제가 풀린 지금은 직접 마주하는 가족, 친구들과의 교류가 더 반갑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린피스는 2020년 1월, 오스트리아 코카콜라 공장 앞에서 플라스틱 생산의 책임을 묻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는 2020년 1월, 오스트리아 코카콜라 공장 앞에서 플라스틱 생산의 책임을 묻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 그린피스 제공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연말 파티 여유롭고 따뜻한 연말 모임에서 음식이 빠질 수 없다. 인원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거나 배달을 시키고 마실거리 등을 준비한다. 기쁜 마음으로 가득 담은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면 플라스틱을 쓰지 않은 물건이 별로 없다. 일회용 용기부터 포장재로 둘러싸인 각종 식재료까지 모든 게 플라스틱이다.

모임이 끝나고 쓰레기를 정리하다 보면 산더미처럼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와 마주한다. 지구에 크게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도 든다. 불편한 마음을 털어내고자 열심히 분리배출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 플라스틱이 과연 제대로 재활용될지 의문이 든다.

그린워싱에 감춰진 플라스틱 생산 정보 플라스틱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사용된다. 왜 유독 내 눈앞에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까?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컵, 비닐, 포장재 등 불필요하고 대체 가능한 일회용 플라스틱이 우리나라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의 4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일상에서 편의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식품 포장재다. 제조 단계에서부터 플라스틱에 포장되거나 담겨 판매되고 있어 구매자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플라스틱 오염의 주범으로서 불필요한 플라스틱 식품 포장재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 기업들은 플라스틱 감축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일부 기업은 플라스틱의 무게를 줄이거나 라벨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플라스틱을 줄이고 있다고 홍보한다. 어떤 기업은 명절 동안에 햄 제품의 뚜껑을 없애고 판매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한다. 기업들의 이런 노력으로 감축되는 양은 전체 플라스틱 생산량의 5% 내외에 불과하다.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플라스틱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것처럼 홍보해 시민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 같은 그린워싱(Greenwashing) 때문에 정작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꼭꼭 숨겨져 있다.

식음료 포장재, 여전히 압도적인 오염원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어떤 기업이 얼마만큼의 일회용 플라스틱을 생산·판매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3년째 플라스틱 사용량 조사를 하고 있다. 2022년 8월 22일부터 28일까지 7일간 진행한 올해 조사에는 3506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이전 조사(2020년 260가구·2021년 841가구)와 비교해 참여 인원이 크게 늘었다. 매년 더 많은 시민이 이 조사에 참여한다는 건 그만큼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린피스의 2022년 플라스틱 사용량 조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수거한 플라스틱 폐기물 /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의 2022년 플라스틱 사용량 조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수거한 플라스틱 폐기물 / 그린피스 제공

해가 갈수록 높은 관심을 보이는 시민과 달리, 기업들의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올해 조사에서 식음료 포장재가 전체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총 14만5205개)의 73.2%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과거 조사에서도 식품 포장재 비율은 2020년 71.5%, 2021년 78%로 동일한 결과를 나타냈다.

식품 포장재 중에서는 ‘음료 및 유제품류’가 51.3%(5만4537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서 ‘과자·간식류’가 16.0%(1만6968개), ‘가정 간편식류’가 8.8%(9395개) 순이었다. 식품 포장재의 종류로는 비닐류가 33.1%(3만5177개)로 가장 많았다. 페트가 16.8%(1만7897개), PP(폴리프로필렌)이 15.4%(1만6414개)로 뒤를 이었다. 모두 우리한테 친숙한 플라스틱 폐기물이다.

어떤 업체가 더 많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6829개에 달하는 조사대상 업체를 분석한 결과, 상위 10개 모두 식음료 업체로 나타났다. 이들 10개 업체의 제품은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의 22.7%를 차지했다. 롯데칠성음료, CJ제일제당, 농심, 롯데제과, 오뚜기, 동원F&B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세 차례 조사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 순위 10위권에 올랐다. 플라스틱 오염에 책임이 큰 기업들이 그 해결에는 얼마나 무책임한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정한 기업이 플라스틱 오염 문제의 상당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글로벌 플라스틱 조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2018년부터 글로벌 기업(브랜드)을 대상으로 플라스틱 사용량을 조사하고 있는 ‘플라스틱으로부터의 해방(Break Free From Plastic·BFFP)’의 올해 조사 결과를 보면, 코카콜라가 5년 연속으로 플라스틱 오염 유발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펩시코(PepsiCo), 네슬레(Nestle), 유니레버(Unilever)가 플라스틱 오염 유발 상위 기업에 올랐다. 이 같은 국내외 플라스틱 사용량 조사는 주요 기업들이 ‘오염 유발자’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중단할 의지와 노력이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플라스틱 생산 기업이 결자해지 나서야 이제 기업은 플라스틱 사용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소극적이고 일회적인 노력이 아니라 중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목표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얼마만큼의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더불어 한 번 쓰고 버리는 선형 경제 모델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선순환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 재사용 및 리필 시스템을 마련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린피스는 2021년 11월 25일 롯데칠성음료 본사 앞에서 플라스틱 감축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는 2021년 11월 25일 롯데칠성음료 본사 앞에서 플라스틱 감축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 그린피스 제공

재활용은 플라스틱 문제의 올바른 해결 방안이 아니다. 재사용과 리필 기반 시스템을 근본 해결책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방안에 함께하는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그린업, 푸른컵 등 재사용 용기와 관련된 스타트업 기업이 늘고 있다. 글로벌 식음료 기업인 네슬레와 유니레버는 재활용으로는 문제를 더 이상 해결할 수 없고, 제품 디자인부터 플라스틱 생애주기를 고려한 선순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도 했다. 기업이 진정한 플라스틱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도 이런 움직임에 빠르게 동참해야 한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이미 우리의 삶과 건강까지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최근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사람의 혈액과 모유 속에서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야생동물의 배설물에서도, 내리는 비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다.

‘플라스틱 시대’ 끝낼 국제 플라스틱 협약 플라스틱의 생산 주체인 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환경부 홈페이지만 살펴봐서는 정부가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 같다. 조금만 더 들여다봐도 큰 구멍들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일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법적 정의도, 별도의 규제도 없다.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한다고 호언장담을 하다가 규제 시행 직전에 1년의 계도 기간을 주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 전국 시행이 지난 6월부터였으나, 돌연 12월로 미뤘다. 대상 지역은 세종시와 제주도로 대폭 축소했다. 시범운영을 통해 적응기간을 주겠다는 게 그 이유였지만, 정부의 갈팡질팡하는 행정은 되레 시민과 업계를 혼란스럽게 했다.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판매하는 기업에 대한 규제강화는 더욱 찾기 힘들다.

유럽연합(EU)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지침에 따라 2021년 7월부터 면봉, 음식 용기, 음료 컵, 플라스틱 비닐 등 10개 품목의 판매를 금지했다. 앞서 같은 해 1월에는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 포장재 폐기물에 대한 플라스틱세를 도입했다. 한국 정부도 좀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바코드를 찍어 일주일간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조사하는 ‘2022 플콕조사’ 모습 / 그린피스 제공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바코드를 찍어 일주일간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조사하는 ‘2022 플콕조사’ 모습 / 그린피스 제공

뿐만 아니라 이미 전 세계적 문제가 된 플라스틱 오염은 몇몇 국가가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지났다. 넘쳐나는 탄소배출량을 규제하기 위해 전 세계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것처럼 플라스틱 문제와 관련해서도 역시 동일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지난 3월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5.2)에서 2024년 말까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마련하자는 의제를 채택했다.

협약의 논의를 위한 첫 정부간협상위원회(INC) 회의가 지난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세계 3위인 우리나라도 이 회의에 참석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전 세계가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날 매우 중요한 기회다. 앞으로 열릴 협상위원회에서도 한국 정부 대표단이 국내 플라스틱의 생산 및 소비를 줄일 수 있도록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린피스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논의에 참석하는 주요 시민단체 중 하나로서, 각국 정부에 ▲플라스틱 생산량과 사용량의 즉각적인 절감 ▲재사용과 리필 기반의 시스템 전환 ▲오염 유발 기업에 대한 적절한 책임 부과 ▲플라스틱 생산량 및 사용량 정보의 투명한 공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정의로운 전환 등을 요구하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은 더는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문제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체결한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우리 정부는 협약의 마지막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를 열겠다고 나선 만큼 국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강력한 협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선도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 플라스틱 오염 유발 기업들도 협약에 따라 부과될 법적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물론, 실질적인 플라스틱 감축과 재사용, 리필 시스템 도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

할 말 있습니다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