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의 시대, 중국 견제 혜택 최대화 전략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인터뷰

세계가 갈라지고 쪼개지고 있다.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균열은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7월 29일 ‘반도체과학법’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520억달러의 보조금을 주지만, 혜택을 받는 기업은 최소 10년간 중국에서 28㎚ 이하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도록 했다. 지난 8월 16일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2차전지에 중국산 부품과 핵심원료가 포함될 경우 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지난 6월 21일 국립외교원 주최의 한 강연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경제안보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유튜브 캡처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지난 6월 21일 국립외교원 주최의 한 강연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경제안보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유튜브 캡처

첨단산업 확보가 국익과 안보에 결정적 요소가 되고 있다. 한국도 경제와 안보가 한몸이 된 ‘경제안보’의 시대에 맞는 전략을 만들고 실행할 때다. 지난 8월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으로 일한 김양희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현 상황을 ‘보호주의의 진영화’로 진단하고, 미국이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에서 중국을 견제하면서 한국이 얻게 될 기회 요인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제조업 강국의 지위 등 한국의 핵심이익을 해치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를 미중에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지난 10월 5일 화상으로 진행한 김양희 교수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현 상황을 신냉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신냉전이라는 말은 지금의 상황을 읽어내는 데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 냉전 시기의 지정학적 갈등 구도와 지금을 비교하면 두가지 점에서 다르다. 먼저 냉전 시대에는 동서 양 진영의 경제 교류라는 게 없었다. 지금은 신냉전을 얘기하기에는 양 진영의 상호 의존성이 고도화돼 있어 칼로 무 베듯이 가를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갈등 구조를 만든 것은 가치와 이념이 아니다.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 자국 이기주의이고 그것을 좀더 잘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호주의를 동원하고 그것이 ‘미국 진영’ 대 ‘중국 진영’으로 확대된 것이다.”

-안보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시대라고 봤다.

“국내에서 조금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기술의 형질 전환’이다. (군사 분야로 전용될 수 있는) 반도체와 바이오 등 첨단기술의 안보적 맥락이 점점 강해지면서 경제와 안보를 떼어낼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기술의 안보화 현상이 가속되면서 공급망은 효율성에서 회복력 중시로 이동했다. 이는 신뢰할 수 있는 동맹과 우방을 포함하는 ‘신뢰가치사슬(Trusted Value Chain)’ 구축 움직임의 모습을 띤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중국과의 전면적인 디커플링이 아니라 첨단 품목의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선별적 디커플링이 될 것이다. 그래서 보호주의 진영화는 과거 냉전과 달리 경직적이지 않고, 전선이 공간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상당히 유동적이다.”

-언제까지 이런 흐름이 지속되리라 보나.

“장기적 구조 변화의 초입이라 상당 기간 이어지리라고 본다. 러시아의 힘은 이미 많이 빠진 상태라 전쟁이 어떤 형태로 종결되든 간에 러시아는 중국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전선이 유동적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도, 브라질 등 비동맹 성향의 나라들 때문이다. 이들의 움직임 여하에 따라 다극 질서의 혼돈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 뚜렷한 일극 체제가 부상하면 안정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괴리가 너무나 큰 나라다. 하드파워 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누르더라도 소프트파워에서 앞서기는 힘들 것이다. 하드파워의 리더십만으로는 미국을 대체하기 쉽지 않다.”

-세계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도 있다.

“보호주의 진영화라는 말은 과거 ‘진영 간’에 있었던 글로벌 자유무역이 끝났다는 의미다. 이제는 진영 간의 교역을 진영 내 교역이 대체하게 된다. 진영 내 세계화가 아닌 지구적 차원에서의 세계화는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더군다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엔 기껏해야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에서의 진영화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금융과 에너지에서도 두 세계가 나뉘고 있다. 단적으로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나 오일을 사갈 때 달러 결제가 안 되니까 위안화 거래 비중이 늘었다. 중국이 이를 절호의 찬스로 활용해 위안화 결제망인 시프스(CIPS)의 영역을 확대하려고 한다. 에너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끊었고, 유럽도 점진적으로 중단하는 상황이 되면 보호주의 진영화의 외연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유럽이 에너지는 러시아에, 공급망은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자신들의 허약한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든 상태다. 과거 효율성에 기반해 극단으로 치달았던 하이퍼 세계화의 폐해를 여실히 경험하는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처럼 국제 공조가 필요한 문제에서 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미국의 IRA가 기후변화 대응을 목적으로 하는데 거기서 중국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서 중요한 것이 전기차로의 전환인데 그 주도권을 중국에 내주는 걸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대대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하면서도 그것이 대중 공세와 같이 가게 된다. 전기차를 만드는 업스트림부터 다운스트림까지 전 과정에서 중국을 끊어내겠다는 게 바로 IRA의 핵심이다.”

-IRA에서 눈여겨본 점은.

“IRA 관련해 우려하는 부분은 2가지다. 먼저 과하게 국내 자동차 산업이 입는 피해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IRA는 미국 중간선거를 염두에 두고 급조된 법이라 문제점이 많긴 하다. 그럼에도 큰 흐름에서 보면 11년 만에 재정 흑자를 목표로 세입 세출 구조를 다듬은 것이자 (부유층·대기업 증세로) 얻은 재원의 84% 이상을 기후변화 대응에 투입하겠다는 거대한 국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을 중국이 점하고 있는데 그걸 끊어내려 한다. 대용량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을 끊어낼 때 그 혜택을 어떻게 최대화시킬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두 번째 대용량 배터리와 전기차 산업의 생태계를 미국 내에 만들려고 한다. 국내 업체가 미국에서 받을 보조금만 따지지만, 이면에서 한국의 전기차·반도체·배터리 생태계가 무너질 위험에 주목해야 한다.”

-기업이 중국과 거래를 끊으라는 정부의 말을 순순히 따를까.

“효율보다는 회복력을 중시하는 시대로 전환이 됐지만, 여전히 효율성은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작동 원리다. 그런 면에서 길게 볼 때 시장의 논리를 과하게 침해하는 안보 논리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물론 ASML(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반도체노광장비업체)의 첨단 반도체 장비처럼 이중 용도의 전략물자를 팔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칩(Chip)4 동맹에서 한국이 맡을 역할은.

“국내에서 ‘칩’과 ‘4’ ‘동맹’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모두 잘못됐다. 미국에선 ‘팹(Fabrication)4’라고 한다. 미국은 반도체칩 제조만 약하기 때문에 그것만 다시 자기네들이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4’라는 말도 맞지 않다.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일본·대만·한국 네 나라가 모여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다. 기업이 빠진 상태에서 네 나라 정부만 모여 할 수 있는 얘기가 어디까지일까. 공급망 관련된 정보 교류 같은 낮은 수준에서의 협의 그 이상을 할 수 없다. 우리로서는 여전히 중국 시장이 너무 중요하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모두 중국 공장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협력은 중국과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야 하는데 자승자박이 될 수 있는 동맹이라는 말을 남용하면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건 바보짓이다. 동맹이나 안보라는 표현을 오남용하면 우리 목을 조르게 된다.”

-대중관계는 어떻게 변하리라고 보나.

“중국 시장이 큰데 그걸 다 끊어내면 우리의 전환 비용이 너무 크다. 또 하나 거대한 중국 시장이 사라지고, 보호주의 진영 간의 거래가 사라지면 그 시장을 진영 내에서 찾아야 한다. 그럼 동맹이든 우방이든 같은 진영끼리 치고받고 싸우게 된다. 그러나 (기술 수준이 낮은 제품이 아닌) 반도체 같은 첨단 전략물품에서 구축하려는 신뢰가치사슬에서는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거기서 입는 손해는 보호주의 진영 내의 자유화에서 상쇄해야 한다. 미국의 반도체법이나 IRA가 한국에 손해를 끼치는 것만 보지 말고 중국이 우리 턱밑까지 쫓아온 부분을 미국이 막아주는 데서 오는 플러스 요인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IRA를 보면 국가 주도의 산업 전략이 읽힌다.

“안보 논리가 중요해질수록 국가는 점점 시장을 제치고 앞으로 나오게 된다. 유럽도 그렇고 중국, 일본, 한국, 미국 말할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산업 전략을 말하고, 보조금을 얘기한다. 국가가 역할을 해야 하냐, 안 해야 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국가의 퀄리티가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국가의 외교역량, 정책 설계역량 이런 것들이 너무너무 중요해졌다.”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방향성은.

“한국의 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 10위다. 10위 안의 국가 중 캐나다와 함께 유일하게 식민지를 거느린 경험이 없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대사를 지낸 분과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그곳 정부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한국의 입장을 묻는다고 한다. 프랑스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라 과거 식민지배를 했던 나라들이 아무리 민주주의, 인권을 말해도 위선적으로 본다. 반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한국은 그들 입장에선 ‘우리도 노력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고, 되고 싶은 나라’다. 식민지배 경험이 없는 우리의 장점을 활용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한국의 정체성을 소탐대실하면서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한편 보호주의가 진영화하면서 점점 중간지대라는 게 사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미국에 묻어가거나 혹은 전략적 모호성을 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진영에 들어가야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들어가 있으면서도 들어가 있지 않은 척, 안 들어가 있으면서도 들어가 있는 척해야 한다. 아주 유능하고 노련하면서도 실용적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천박한 장사꾼처럼 굴지 않고 때로는 인권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가보지 않은 전혀 낯선 길을 가야 한다.”

-정부의 대미·대중 전략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핵심이익을 분명히 하고, 원칙 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방한했을 때 우리 정부가 취한 행동은 중국에도, 미국에도 우스워 보였다.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의도가 읽히지 않고, 예측이 안 되면 함께하기 힘들다. 그런 부분을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우리의 강점에 기반해 미국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것을 중요시한다. 우리의 국익은 이것이니 우리는 이렇게 움직일 거야’라고 보여줄 때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된다. ‘우리는 제조업을 중시하는 나라이고, 우리의 혁신 역량을 키우는 데 필요한 나라라면 손을 잡는다’라는 점을 분명하게 설명할 때 중국도 한국은 미국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구나, 거기에 맞춰 한국에 대응할 수 있는 플랜을 짤 수 있다. 갑갑한 건 현안이 나올 때마다 일회성으로 대응하는 전략이다. 단면적인 이벤트에 집중하지 않고 그걸 꿰뚫는 기조를 읽고, 우리의 핵심이익과 원칙을 분명히 한다면 일관성 있는 대응이 가능해진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