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서 마주한 우크라이나 난민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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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부터 5월 2일(현지시간)까지 발생한 우크라이나 피란민 규모가 550만명을 넘어섰다. 이번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는 그 자체로 인도주의적 위기인 동시에 유럽 난민 정책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기자는 지난 4월 16일부터 일주일간 우크라이나 인접국 폴란드를 찾아 난민 대응의 현실을 살펴봤다. 약 290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유입된 폴란드는 전쟁 초반의 혼란은 벗어난 모습이었지만, 난민과의 공존을 위한 본격적인 고민은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 5월 2일(현지시간)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을 탈출해 자포리자 대피소에 도착한 한 소년이 앞 유리창이 깨진 차 안에서 놀고 있다. / 자포리자 | EPA연합뉴스

지난 5월 2일(현지시간)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을 탈출해 자포리자 대피소에 도착한 한 소년이 앞 유리창이 깨진 차 안에서 놀고 있다. / 자포리자 | EPA연합뉴스

최근 폴란드로 유입되는 난민의 수는 전쟁 초반보다 확연히 줄어들었다. 전쟁 초반 난민들로 발 디딜 틈 없었던 국경 메다카는 다소 한산해졌고, 바르샤바의 생활시설에도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난민들의 단기 숙소로 활용돼온 ‘아레나 우루시노프’ 관계자는 “2주 전까지만 해도 300명이 넘는 난민이 있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이는 100명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전쟁 장기화에 폴란드도 긴장

국경과 단기시설에서 머물던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이 장기화하자 새로 정착할 행선지를 찾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바르샤바 중앙역 등 폴란드 주요 도시의 교통 거점으로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역사 바깥에 마련된 대규모 간이식당에서 배고픔을 달래고, 셔틀버스를 이용해 인근 생활시설로 이동했다.

전쟁 발발 후 두 달이 지났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폴란드 민심은 아직 식지 않고 있었다. 지난 4월 16일 찾아간 바르샤바 중앙역에선 폴란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푸른색으로 염색한 꽃다발을 들고 난민들을 격려했다. 인근 자코드니아 터미널에 마련된 임시 거주시설에도 폴란드 아이들이 방문해 우크라이나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만 폴란드 내에서는 장기화한 난민 사태에 따른 긴장감도 감지됐다. 짧은 기간 동안 폴란드 인구의 7%에 달하는 난민들을 감당하게 되면서 기존의 주거와 의료, 교육 지원이 버텨낼 수 있을지가 사태 대응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특히 우크라이나인들의 숙식에 도움을 주고 있던 개인과 단체들은 정부의 지원금 중단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우크라이나인 한명당 매달 1200즈워티(약 35만원)의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보조받았으나 최대 60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원해온 한 호텔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거주자들을 다른 시설로 보내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논란이 되자 폴란드 정부는 지난 4월 27일 사회보장번호인 PESEL 번호를 부여받은 난민들에게만 지원하는 조건으로 지원 기간을 최대 120일까지 늘렸다.

폴란드 사회가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려면 취업을 통해 난민들을 자립시켜야 하지만, 이 역시 간단한 일은 아니다. 난민 중에는 아이들과 노약자가 많아 구인과 구직의 불일치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할 수 있는 여성들도 언어적 장벽이 있다. 기자가 만난 한 우크라이나 난민은 “언어가 안 되면 일을 찾기 힘드니 능력을 발휘할 수 없어 맘에 걸린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8일(현지시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접경지대인 메디카의 도로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난민들의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 프셰미실 | 박용하 기자

지난 4월 18일(현지시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접경지대인 메디카의 도로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난민들의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 프셰미실 | 박용하 기자

독일·영국도 난민 대응 고심

폴란드 이외의 다른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난민 대응은 중요한 과제가 됐다. 특히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최종 정착지로 선호되고 있는 독일은 2016년 시리아 사태 이후 또다시 난민 정책의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현재까지 독일로 넘어온 우크라이나 난민은 40만명가량이다.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20억유로(약 2조6700억원)를 책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시리아 난민 사태처럼 반이민 정서가 대두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에서는 정부가 시행하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집’ 난민 지원프로그램이 실제 수용하는 난민들을 줄이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영국으로 건너오려는 우크라이나인 가족 중 아이에 대한 비자 승인을 고의로 지연해 나머지 가족까지 오지 못하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발급된 5만1300개의 비자 중 실제 영국에 도착한 비자는 1만1000개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난민 대응 문제가 전 유럽으로 확산하며 유럽연합(EU) 차원에서의 대응이 중요해졌다. EU는 폴란드에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다른 유럽 국가로 분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숙박시설 등 각국의 수용 능력을 파악해 난민들의 고른 분산을 유도하는 체계도 마련할 예정이다. 다만 재정 지원을 두고는 아직 잡음이 있다. EU는 최근 폴란드에 할당된 위기대응기금 중 5억5900만유로(약 7471억원)를 선지급했으나, 폴란드는 필요한 수요에 비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장기화한 난민 생활에 지친 일부 우크라이나인은 고향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500만명 중 100만명 이상이 귀향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지난 4월 18일(현지시간) 찾아간 메디카에서도 우크라이나로 되돌아가는 긴 차량 행렬을 볼 수 있었다.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도로의 통행량은 최근 하루 2만~4만건으로 늘어 탈출로의 통행량을 앞질렀다. 폴란드에서 만난 한 우크라이나인은 “정부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말라 하지만 그래도 가고 싶다는 게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했다.

고향으로 향하는 다수의 우크라이나인은 기자에게 5월 9일 전쟁이 끝날 가능성을 언급하곤 했다.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인 이날 우크라이나에서의 승리를 선언하고 전쟁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의 분석에 근거한 낙관론이었다. 하지만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5월 1일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승전 선언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희망이 현실이 될지는 여전히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용하 국제부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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