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오징어게임>, 누가 살아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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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는데 뒤통수에서 총성이 울린다. 선혈이 낭자하고 아수라장이 된 운동장이지만 감미로운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니 그 광경이 그다지 잔학무도해 보이지 않는다. 최고급 위스키와 함께 관람을 즐기는 VIP들에게 타인의 생존 분투 현장은 흥미진진한 ‘게임’에 불과하다. 전 세계에 열풍을 불러일으킨 <오징어게임>은 그동안 흥행한 <기생충>, <설국열차>와 같은 한국영화의 계보를 잇는 듯 만연한 불평등과 자본주의의 병폐를 구석구석 드러낸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또 한가지 질문을 남긴다. 최종 승자는 왜 승자가 됐는가?

[오늘을 생각한다]<오징어게임>, 누가 살아남는가

타인의 불행에 대한 무감각은 흔한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또는 공감의 부재로, 적당히 무디게 살아간다. 그런 한편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힌다고 믿는다. 이 드라마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충고한다. ‘약해 보이면 안 된다’고. 그러나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는 가장 힘이 센 이가 아니다. 가장 선한 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는 약자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지만, 약자를 속이기도 한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한탕을 노리는 욕구가 우선하기도 한다. 찐득한 실타래가 엉켜 있듯이 사람의 마음에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공존한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그 두 감정 모두 지극히 본능적이라고 말한다. 그의 책 <공감의 시대>에서 “자연은 언뜻 경쟁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 생물들이 우리 곁에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자연의 규칙을 약육강식으로 결론짓는 것은 선입견이다. 공감과 협동 또한 본능이다. 특히 인류에게 공감은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자질이다. 우리는 협동하고 양보하며 나눌 줄 알기 때문에 강한 생존력을 갖는다. 저자는 ‘공감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라고 한다. 공감 본능을 잃는 만큼 생존의 열쇠를 잃게 된다.

주인공의 모순됨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는 스스로를 구하고 싶지만, 남을 돕고도 싶다. 어려운 타인의 처지를 연민하고 공감한다. 그는 약하기 때문에 가장 강한 무기를 갖는다. 그의 지극히 당연한 공감이 특별해보인다는 점이 비정하다. 우리는 이기적인 본능만 비대해지는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남을 짓밟고 자신만 구하려고 하는 자들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에 오만해진 이는 혼자 누운 병실에서 눈을 감는다.

<오징어게임>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원래 사람은 믿을 만해서 믿는 게 아니야. 안 그러면 기댈 데가 없으니까 믿는 거지.” 이 말은 어쩐지 2021년을 반추하게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코로나19와 함께한 올해, 우리는 스스로 사회적 동물임을 여실히 느꼈다. 다른 것을 다 갖추어도 관계없이는 살아내기 힘들다. 공감하고 협동하는 감각에는 뽀얀 먼지가 쉽게 내려앉고 마음은 금세 각박해지기 때문에 무뎌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한다. 서로를 망칠 수도 구원할 수도 있는 우리는 내년에는 후자의 본능을 더 키워보자. 2022년도 쉽지 않은 해가 될 전망이니까.

<지현영 법무법인 지평 ESG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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