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청소년들의 ‘잠 못 이루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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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부족 핵심 원인은 과도한 학습 활동… 게임 셧다운제 실효성 되짚어야

“늦어도 밤 11시 전에는 침대에 누워요. 그런데 잠들지를 못해요.”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고등학교 1학년인 정현우군(가명)의 스마트폰 기상 알람은 오전 7시 30분에 맞춰져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 중학생 시절부터도 그랬고, 지금도 그대로다. 지난해 상반기 개학이 연기되면서 학교에 가지 않을 때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던 기간에도 역시 기상시간은 바꾸지 않았다. 잠에 취해 알람을 끄고 누워도 어차피 부모님이 방문을 열어젖히며 깨우는 것은 같았기 때문이다. 기상시간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군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취침시간뿐이다. 친구들과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화하거나 소셜미디어(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느라 침대 위에서 보낸 심야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정군은 꿀잠을 잔 뒤 개운하게 일어나는 꿈을 매일 꾼다면서도 막상 자리에 누우면 마음먹은 대로 잠들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모님에 의한 강제 기상시간이 정해진 상황에서 5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 정군은 왜 일찍 눈을 감지 않을까. 사실 정군이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시간이 취침시간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늦게 자는 이유도 납득이 될 여지가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난 정군이 과외수업을 마치는 시간은 오후 10시쯤이다. 이후 간식을 먹거나 거실에서 부모님이 보느라 켜둔 TV를 잠시 멍하니 보다 친구들에게서 오는 메시지를 확인하러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정군과 비슷하게 하루 일과를 보낸 친구들이 대화를 집중적으로 주고받는 시간도 이때부터다. “뭐 크게 중요한 얘기는 없어요. ‘아무 말 대잔치’지만 그런 대화가 없으면 허전하죠.”

코로나19, 관계도 수면도 흔들었다

정군은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화상 대화 프로그램인 ‘줌’으로 과외를 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과외 수업이 있는 날이 취침시간도 늦은 편이다. 최근엔 다니고 있지 않지만 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때나, 과외가 없는 날 온라인 게임에서 접속한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즐길 때는 조금이나마 취침시간이 앞당겨졌다. “학원에서는 얼굴을 보니까 마치고 짧게라도 얘기할 시간이 있고, 게임할 때도 채팅으로 대화를 하거든요.” 정군의 말대로라면 마치 친구들과의 하루 대화 할당량 같은 것이 있어서 채우지 않으면 허전해지고 또 욕구를 충족할 때까지 잠들기도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모들은 친구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청소년에게는 친구가 세상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아동과 청소년이 느끼는 단절은 강력한 소속감을 주는 집단인 학급 동료로부터의 단절을 뜻한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말이다. 아무리 매일 온라인으로 친구와 대화를 해도 직접 만나는 것과는 차이가 있고, 여러 이유 때문에 소통의 양과 질이 모두 저하되면 청소년들에게는 심리적 부담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아동·청소년의 트라우마 호소 증상 역시 단절과 박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립 및 단절’, ‘위생 관련 잔소리’, ‘혼공·혼밥 생활’ 등의 트라우마가 함께 작용해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또래 집단 구성원들과의 단절이 청소년의 정신건강과 수면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높지만, 늘어난 비대면 활동과 실내생활 시간에 따라 수면각성주기가 교란된 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수면각성주기가 깨지면 장기적으로도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달라진 수면각성주기는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모든 아동·청소년을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특히 고위험 아동·청소년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이 코로나19 이전 평시보다 대폭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보니 이들 청소년에게 닥칠 악영향도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셧다운제가 짚은 헛다리

한국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유독 짧다. 우선 한국인의 수면시간이 전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년 기준 회원국 간 수면시간 비교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51분에 그쳤다. OECD 회원국 평균인 8시간 22분보다 31분이 모자라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청소년기의 수면시간은 더 짧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청소년의 건강 및 생활습관에 관한 조사’를 보면 초등학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 41분, 중학생 7시간 21분, 고등학생 6시간 3분으로 나타났다. 미국 수면재단이 권장하는 10대 청소년 수면시간이 8시간 이상임에도 중고교생은 크게 미달했고, 실제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5.2%가 수면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특히 청소년들의 인간관계와 정서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수면각성주기까지 교란했음을 감안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더욱 줄었을 것이라고 예상할 법하다. 그런데 또 다른 조사결과는 다소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0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진행한 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2020년 청소년종합실태조사’를 보면 9~12세 청소년의 주중 수면시간은 평균 9시간 13분, 13~18세는 8시간 4분으로 이전 조사인 2017년 조사와 비교할 때 수면시간이 늘어난 것으로 나왔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기간에 조사가 수행된 점을 볼 때 코로나19로 인해 청소년 수면시간이 줄었다고 보기엔 어려운 결과가 나온 것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물론 조사 방식에 따라 집계되는 수면시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조사결과와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보고서에서도 “이 방식은 자기기입식으로 수면시간을 측정하는 것으로 다소 부정확한 한계가 있으며, 이런 이유로 이 조사의 수치는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보건복지부의 건강행동실태조사의 수면시간과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를 감안해 해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2011년 이후 3년마다 수행된 4회의 수면시간 조사를 비교해 볼 때 점차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이 늘고 있는 추세는 발견된다. 2011년의 전체 청소년 주중 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 17분이었던 데 비해 2020년에는 8시간 20분으로 계속해서 늘었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지난 6월부터 서서히 논쟁의 주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국회가 논쟁의 무대가 됐다. 당초 논쟁의 시발점은 ‘게임 셧다운제’ 존폐 여부였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 25일 셧다운제를 명시한 청소년보호법 제26조를 폐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인터넷 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새벽시간 동안 인터넷 게임을 제공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삭제하려는 개정안이었다. 2011년 셧다운제 도입 당시 취지가 청소년들의 수면권 보호였음에도 제대로 된 효과는 없이 관련 산업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불필요한 사회적 차별과 갈등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지난 10년간 줄곧 이어졌다.

셧다운제 폐지 논의는 지난 7월 2일 ‘마인크래프트의 성인게임화를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되면서 더욱 불이 붙었다. 마인크래프트는 온라인 공간에 육면체 블록을 쌓아 게임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상공간을 꾸미는 게임이다. 한달 이용자 수가 전 세계 1억4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고, 특히 초등학생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 덕에 지난해 5월 청와대의 어린이날 행사에선 이 마인크래프트 게임 속에 가상 청와대를 만들어 어린이 이용자들을 초청하는 행사가 열릴 정도였다. 그런데 마인크래프트를 운영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의 엑스박스 계정을 통해 로그인하는 방식으로 접속 방법을 변경하려 하면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엑스박스 이용대상을 19세 이상 성인으로 제한한 한국의 청소년들은 졸지에 즐기던 게임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조차 막아버리는 국내의 과도한 게임 규제가 도마 위에 오르며 ‘갈라파고스’식 규제의 대표 항목으로 꼽히는 셧다운제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청소년 수면시간 보장 문제로 논의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면서 청소년보호법을 관할하는 여성가족부도 제도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성유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관은 “청소년 보호제도가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노력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게임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청소년들을 자게 하자며 도입한 셧다운제가 시행되는 내내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했는지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연구결과가 속속 나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3월 발간한 ‘2020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 보고서를 보면 “아동·청소년과 성인 게임이용자 모두 게임이용 시간과 수면시간의 유의미한 상관성이 도출되지 않았다”는 분석결과가 나온다. 이 보고서는 “효과성 측면에서 셧다운제가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셧다운제가 청소년 수면시간에 미친 영향이 미미했던 것은 청소년 수면 부족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원인이 게임이나 여가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소년에게서 잠잘 시간을 뺏는 가장 큰 활동이 학원, 숙제, 강의 등 학습 관련 활동이라는 것이다. 조문석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셧다운제 도입 후 청소년의 수면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도 않았고, 심야시간대 게임 이용을 완전히 통제하지도 못했다”며 “청소년 수면시간 부족의 주요 원인을 게임으로 지목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셧다운제는 청소년 수면 부족을 해결하려다 헛다리를 짚고 정작 잠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주진 못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보다 다소 개선되긴 했으나 여전히 잠이 부족한 한국의 청소년들과 청소년기는 지났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수면장애를 겪는 인구가 늘어난 성인층 모두에게 생활리듬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는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외출 및 이동을 자제해야 하는 분위기에 재택근무가 늘고 예기치 못한 실업까지 겪는 성인층에게도 적용되는 문제다. 실제 건강보험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지난해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은 인구는 전년보다 4.1% 증가했다. 김혜윤 가톨릭관동의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청소년들의 잠이 부족한 원인으로 거론되는 요인 중 하나는 학업 문제지만, 청소년기 호르몬 문제 때문에도 자는 시각과 깨는 시각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수면과 낮의 각성시간은 분리해 생각할 수 없으므로 수면각성주기를 원상회복하기 위해선 낮에 직접 햇빛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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