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보안법 1년, 빛 잃은 ‘동방의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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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과 민주진영 와해… “미래 없다” 탈홍콩 줄이어

“신문이 폐간되고, 시위가 금지됐다. 민주진영 활동가와 정치인은 체포되거나 망명했다. 수만명의 시민이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고 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이자 홍콩 주권반환 24주년 기념일인 7월 1일 홍콩에서 경찰 의장대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홍콩기를 게양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이자 홍콩 주권반환 24주년 기념일인 7월 1일 홍콩에서 경찰 의장대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홍콩기를 게양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외신이 바라본 2021년 홍콩의 모습이다. ‘동방의 진주’로 불렸던 도시는 지난 1년간 빠르게 빛을 잃었다. 동서양의 정치·경제·문화가 교차된 중국 속의 또 다른 중국이었던 홍콩은 이제 자유로운 도시의 매력을 잃고 중국의 여느 한 도시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밀어붙인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가져온 변화다. 떠나려는 이들은 홍콩이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이 알던 그 도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홍콩에 미래가 없다며 또 다른 기회의 땅을 찾아 떠나고 있다.

숨 가쁘게 돌아간 홍콩의 1년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폐간한 6월 24일 홍콩 시내 가판대에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AFP연합뉴스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폐간한 6월 24일 홍콩 시내 가판대에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AFP연합뉴스

지난해 6월 30일 홍콩보안법이 시행된 이후 1년 동안 홍콩의 시계는 숨 가쁘게 돌아갔다. 지난해 5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통과된 홍콩보안법은 홍콩 내 반중국 활동을 처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가 분열과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의 파괴력은 생각보다 컸다. 1년 동안 117명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고, 6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우산혁명’으로 불리는 2014년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던 조슈아 웡(黃之鋒)과 아그네스 차우(周庭), 대표적 반중매체인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 등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들이 모두 보안법의 족쇄에 갇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홍콩의 야권과 민주진영은 사실상 와해됐다. 지난해 11월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채택한 입법회 의원 자격요건에 관한 결정을 근거로 홍콩 정부는 야당 의원 4명의 의원직을 박탈했고, 의원 15명이 이에 항의해 동반 사퇴하면서 홍콩 입법회에는 친중 성향 의원들만 남게 됐다. 또 올해 들어 홍콩 정부가 구의원에게까지 충성 서약을 의무화하는 조례안을 밀어붙이자 범야권의 구의원 190여명이 의원직을 사퇴했다. 야당인 신민주동맹은 보안법 시행 1년을 앞둔 지난달 26일 당을 아예 해산해 버렸다. 민주진영 단체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홍콩프리프레스 등 현지 언론은 지난달 이후에만 진보변호사그룹과 진보교사동맹 등 최소 8개의 홍콩 범민주진영 단체가 자진 해산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에서는 집회·시위와 언론의 자유도 사라졌다. 1990년부터 매년 빅토리아파크에서 열리던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추모집회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올해 처음 열리지 못했다. 매년 7월 1일 홍콩 주권반환일을 기념해 열리던 가두행진과 집회도 올해는 볼 수 없었다.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한 압수수색과 관련자 체포, 자산 동결 등 대대적 압박에 직면해 지난 6월 24일 폐간한 것은 홍콩에서 언론 자유의 종말을 고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인식된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달 홍콩보안법 1년을 맞아 낸 보고서에서 “보안법 시행 1년 만에 홍콩의 자유사회가 해체됐다”며 “중국은 홍콩인들이 오랫동안 누려온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정보 접근권, 학문적 자유 같은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체계적으로 지워버렸다”고 지적했다.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의 한 기자가 6월 24일 신문사 앞에서 폐간 전 마지막으로 인쇄된 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의 한 기자가 6월 24일 신문사 앞에서 폐간 전 마지막으로 인쇄된 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중국화의 완결판’ 선거제 개편

홍콩보안법이 홍콩의 중국화를 알리는 서막이었다면 올해 3월 중국 전인대에서 통과된 홍콩 선거제 개편안은 그 완결판으로 볼 수 있다. 지난 5월 홍콩 입법회에서 최종 확정된 선거제 개편안은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는 원칙에 기반을 둔 것이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인단 구성을 친중 인사에 유리하게 바꿨고, 모든 공직 선거 후보자에 대해 사전 심사를 거쳐 출마 자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입법회 의석수를 70석에서 90석으로 늘리면서도 주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뽑는 지역구 의석은 35석에서 20석으로 줄였다. 민주진영의 의회 진출을 막고, 중국 정부의 홍콩에 대한 직접적 통제력을 높이려는 조치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이자 홍콩 주권반환 24주년 기념일인 7월 1일 홍콩 도심 침사추이 거리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홍콩기가 함께 내걸려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이자 홍콩 주권반환 24주년 기념일인 7월 1일 홍콩 도심 침사추이 거리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홍콩기가 함께 내걸려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이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중국 정부는 최근 홍콩보안법 시행에 앞장선 존 리(李家超) 전 보안장관을 홍콩 정부 2인자인 정무부총리에 임명하고, 그가 공직 선거 후보자 자격심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도록 했다. 리 부총리는 자격 심사와 관련해 “모든 후보가 홍콩 기본법과 홍콩 정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며 “과거의 모든 행동을 포함해 충성 맹세의 진실성을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행적 등을 이유로 민주진영 인사들의 출마가 제한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행정장관 선거인단 선거와 12월 입법회 선거, 내년 3월 행정장관 선거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을 거쳐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만들겠다는 중국의 밑그림과 홍콩의 중국화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전망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7월 1일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대회에서 “홍콩·마카오특별행정구에 대한 중앙 정부의 전면 관리와 통치를 실현하고 국가 안전을 수호하는 법률 제도를 통해 전반적인 사회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와 고도 자치 방침을 관철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양제’보다는 ‘일국’에 방점을 찍고 홍콩에 대한 전면 통치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홍콩보안법 제정과 올해 선거제 개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조치를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 등 잇단 소요사태에 따른 안정화 조치라고 강조한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빈과일보 폐간 사태 등으로 서방의 비판이 커지자 “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사회는 정상 궤도를 찾았고, 동방의 진주는 더욱 빛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홍콩인들이 느끼는 보안법 이후 홍콩의 모습은 사뭇 달라보인다. 보안법 시행 이후 이민 문호를 넓힌 영국과 캐나다 등지로 떠나려는 홍콩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홍콩에 거주하는 브리튼 루스 베니는 “지난 1년간 적어도 20명의 주변 사람이 정치적 변화로 인해 홍콩을 떠났다”며 “2047년이 갑자기 일찍 찾아왔고, 이곳은 더 이상 우리가 살던 도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말했다. 2047년은 중국이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 주권을 반환받으며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50년의 기간이 도래하는 시점이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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