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청년이라는 이름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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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소란만 보면 대한민국에는 청년만 있는 것 같다. 특히 정부여당의 청년층을 향한 구애는 눈물겹다.

청와대는 지난 4월 이철희 정무수석이 이끄는 청년TF를 가동했고, 지난 22일에는 청년비서관 자리에 전임자보다 열다섯 살 젊은 박성민씨를 발탁했다. 이미 청와대에는 2019년 신설한 청년소통정책관실이 있고 국무총리실에는 지난해 출범한 청년정책추진단이 있다. 또 민주당에는 전국청년당, 청년미래연석회의, 청년정책연구소가 있다.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최근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년특임장관 신설을 제안했고 청와대는 이에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전례 없는 청년 인플레이션이다.

[오늘을 생각한다]청년이라는 이름의 유령

청년층이 과소대표되고 있는 우리 정치권에서 당사자의 발언권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운영하고 있는 청년 조직과 지명직 제도들이 청년 민의를 수렴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어떤 그룹의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특임장관을 새로 만든다면 여당이 선거에 질 때마다 장관이 한명씩 늘어날 것이다. 청년들이 정부여당에 등을 돌리는 이유는 그곳에 청년 조직이 없어서가 아니다.

만약 ‘청와대 여성대변인’이라는 별도의 관직이 있었다면 박경미 의원은 ‘청와대 대변인’이 될 수 있었을까? 국민의힘에 ‘청년당대표’라는 트랙이 따로 있었다면 이준석씨는 당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 청년대변인의 존재는 일반 대변인 자리에 청년을 앉히지 않겠다는 뜻이며, 청년비서관의 신설은 일반 비서관 자리에 청년을 기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청년비서관이라는 별도의 특임 관직이 만들어진 이상 다른 청년들의 비서관 진입 장벽은 더욱 높아진다. 청년 몫은 이미 ‘할당’했으니 청년의 문제는 오롯이 해당 비서관 소관이 된 것이다.

이것들은 정치적 비례성 확보를 위해 정원의 일부를 소수자 그룹에 할당하는 제도와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청년ㅇㅇㅇ’ 같은 별도의 직책과 테이블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과소대표되고 있는 청년세대를 정치의 중심 테이블에서 더욱 배제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청와대에서 청년 비서진이 필요하다면 청년비서관 직을 새로 만들 게 아니라 청년들을 비서관으로 뽑으면 될 일이다. 청와대에서 청년의제를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별도의 장관을 신설할 게 아니라, 조용히 사라질 TF 같은 조직을 만들 게 아니라 국무회의에서 여러 장관과 청년의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면 될 일이다.

청년 라벨을 붙이고 만들어지는 이 정부의 모든 것이 얄팍하다. 선망과 혐오가 교차하는 데 겁을 잔뜩 집어먹고 타자화해 그게 뭔지를 모른다. 불을 처음 만난 원시인마냥. 청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신비화한 결과다. 기성정치가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잡고 싶다면 청년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실체를 직시하는 것이 먼저다.

<정주식 직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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