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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에 서기 위해” 탈영하는 군인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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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서 나와 불복종 운동 가담… 시민들이 집에 숨겨주기도

미얀마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은 군부다. 군인들이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일으킨 정변이다. 지난 2월 1일 쿠데타 발생일 이후 미얀마 군대와 군인들은 시민의 거센 저항에 맞서 있다.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쿠데타 이후 현재까지 700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 그 학살의 중심에 서 있는 미얀마 군대는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잔혹행위로 이슈에 섰다. 21세기에 보기 힘든 엽기적인 고문 방법과 고문한 시민의 얼굴을 보란 듯이 공개하는 잔악함에 혀를 내두른다. 이 철옹성 같은 군대에도 시민 저항 두달여가 넘어가며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있다. 사람을 고깃덩어리 다루듯 하는 잔혹함에 따르는 피로도가 군대 내부에도 서서히 퍼지기 때문이다. 이미 다수의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정권 아래서 복무하지 않고자 이탈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는 물론 구체적인 탈영 장병의 신상까지 돌고 있다.

미얀마 양곤 시내를 장악한 군인들 / 연합뉴스

미얀마 양곤 시내를 장악한 군인들 / 연합뉴스

“군대의 잔혹함에 질려서”

최근 양곤 지역에서 진압작전을 벌였던 77사단 소속 대위 등 4명이 탈영했다. 이들은 탈영 후 시민 불복종 운동(CDM)에 가담했으며 모처에 숨어 있다. 수도 양곤 주변은 길마다 군경의 검문소가 촘촘히 있어 발각되기 쉽고 만약 체포되면 잔혹한 고문은 물론 즉결처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언론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왔다. 단지 그들은 “시민의 편에 서기 위해” 탈영했음을 기자에게 알리고 싶어했다. 그들과는 달리 양곤과 멀리 있는 지역에서의 탈영은 조금이라도 이동이 가능했다. 칠흑 같은 밤, 미얀마 샨주에서 복무하던 한 군인이 무작정 카렌족이 사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는 휴대폰 하나에 의지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그는 군사작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근무지를 버리고 탈영하고 있었다. 가는 길에 사람들이 그가 탈영한 미얀마 군인임을 알아보고 집에 숨겨주고 음식을 제공해주었다. 그는 어떤 루트로 움직였는지를 기자에게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도와주고 숨겨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얀마 샨주에 주둔 중인 528경보병여단 소속의 린 텟 아웅 대위다. 미얀마 군대 내에서 장교가 이탈해 실명이 알려진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쿠데타가 아니었으면 어느 정도 미래가 보장됐을 것이다, 전화로 기자와 연결된 그는 탈영한 이유에 대해 단 한마디로 “군대의 잔혹함에 질려서”라고 대답했다.

근무지 이탈하는 경찰들도

최근 미얀마군에서 탈영한 린 텟 아웅 대위는 “군은 시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데 죄 없는 시민을 잡아와 고문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도저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 미얀마나우 캡처

최근 미얀마군에서 탈영한 린 텟 아웅 대위는 “군은 시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데 죄 없는 시민을 잡아와 고문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도저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 미얀마나우 캡처

그의 위험한 도주는 소수민족이 통제하는 은신처에서 멈춰 있다. 그곳도 안전하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시민 불복종 운동(CGM)에 동참함으로써 시민의 편에 섰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군대는 시민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죄 없는 민간인들을 군대 내부로 잡아와 고문하고 살해하는 행위가 그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제서 탈영을 한 이유는 가족들의 안전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가족을 대피시키고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 그는 소수민족 연합군과 만나면 미얀마 시민을 구하기 위한 임무에 투입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위한 진짜 군인의 임무를 다하고 싶다. 나는 자랑스러운 미얀마 군인의 명예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린 대위는 목숨을 건 탈영에 성공했다. 하지만 알면서도 군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군인들도 있다. 계급과 실명 모두를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한 장교는 “나는 매일 탈영을 꿈꾼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지금 양곤 인근에 주둔 중으로 현재 집에도 못 가고 매일 시위진압과 상부에서 내려오는 압력으로 고통이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군인들은 여권을 만들 수가 없다. 여권이 있었다면 적어도 장교들의 30%는 지금 해외로 도망갔을 것이다. 이러니 군부가 여권을 안 만들어주고 인질처럼 가둬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집에 안 들어간 지 열흘이 넘었으며 아내는 걱정이 많다고 했다. 그는 “아내는 마음이 약하고 착한 사람이라 지난번 집에 갔을 때 울면서 사람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말했다. “우리도 사람인데 왜 이 상황을 모르겠나. 하지만 명령 거부는, 즉 우리 가족의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군인들뿐만 아니라 경찰도 근무지 이탈에 합류했다. 양곤시 외곽에 숨어 있는 A씨는 지난달 근무하던 경찰서를 빠져나와 은신처에 숨어 있다. 그는 한 외국 시민단체에서 주는 후원금으로 간신히 먹을 것을 해결할 뿐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그는 “경찰서 근무 시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잡혀왔고 그중의 한명을 동료 경찰이 구타했다. 그 학생의 머리가 깨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동료들은 그를 사무실 한켠에 두었다가 밤에 내다 버렸다. 나는 그날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그 동료들이 평상시에는 절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마음 약하고 착한 동료들이다. 상황이 우릴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내가 계속 경찰서에 있으면 곧 나도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기자가 그의 가족이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을 하자 “만달레이에 있는 가족은 이미 뿔뿔이 흩어져 숨었다. 온 가족이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나는 이런 삶을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그가 숨어 있는 곳도 안전하지 못하다. 더군다나 양곤 인근이기 때문에 더욱 발각 위험이 크다. 그래서 그는 남쪽에서 오는 연합군(Federal Army라고 표현했다)과 합류하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연합군은 소수민족 반군들의 연합체를 말한다. 그는 “시민에게 총을 쏘지 않고 시민과 함께 저항의 총을 쏘고 싶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경찰관이 꿈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옳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통계는 없지만 현재 군부가 밝히지 않는 탈영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샨주에서 탈영한 린 대위의 증언에 의하면 그 부대에서 그 혼자 탈영한 것이 아니라 꽤 많은 인원이 같이 탈영했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도망가는 도중에 서로 흩어져 아쉬웠다고 증언했다. 미얀마 국경지대의 군인들 탈영은 더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와 인도 국경에 위치하는 인도 미조람주에는 현재 인도 정부 관할 하에 미얀마에서 넘어온 난민들의 수용소가 생겨났다. 그곳에는 미얀마에서 군인과 경찰로 복무하다가 탈영한 사람이 공식적으로도 500명이 넘어선다. 이들은 미얀마에서부터 걸어서 국경을 넘어왔고, 대부분 군부의 민간인 학살에 질려 조국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정확한 숫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자신들이 군인이나 경찰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행된 군경의 잔혹한 학살 행위로 미얀마 시민들에게 분노의 대상이 되어 보복이 두려워서이다.

탈영한 미얀마 군인과 군부에 분노한 민간인 상당수가 최근 반군 격인 카렌민족연합 등에 참여해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미얀마연대

탈영한 미얀마 군인과 군부에 분노한 민간인 상당수가 최근 반군 격인 카렌민족연합 등에 참여해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미얀마연대

군부, 이탈 막으려 자구책 고심

군부는 이처럼 계속되는 군무 이탈을 막기 위해 군인과 군인 가족들을 더 통제하기 위한 자구책에 고심하고 있다. 최근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 다음으로 미얀마 군부 2인자로 알려진 소 윈 부사령관이 지난 4월 10일 만델라이에 있는 군사훈련시설을 방문했다. 그는 군인과 군인 가족에게 “가야 할 곳에만 가고, 얘기해야 할 것만 얘기하고, 해야 할 것만 하고, 어울려야 할 것만 어울려야 한다”며 군 이탈을 염두에 두는 발언을 했다. 그는 군 내부에서도 강경파로 흘라잉 사령관의 오른팔이자 저항 시위진압 작전의 주요 방향을 직접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발언 이후 미얀마군 내부에서 군인 가족들에 대한 통제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군인 당사자보다는 군인 가족들을 통제하는 쪽이 더욱 효과적으로 군인들의 이탈 방지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계급과 실명을 밝히기 거부한 한 현역 장교는 “대부분의 군인 가족들은 영내의 사택에서 산다. 군인 가족들은 민간인이라도 군대 내에 살기에 ‘보안 요구’, ‘출입 제한’, ‘전화나 인터넷 통신 제한’ 등의 조치가 내려지면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된다. 이들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남편들도 잔인한 진압 작전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또한 군인 가족들과 병사들은 인터넷과 외신 등에 대해 거의 통제된다. 양곤에서 활동하는 군부에 정통한 Y기자는 “영내에서는 도·감청의 우려가 더 크다. 때문에 군인들과 그 가족들은 외부와의 대화나 소통에 한계가 많다. 그리고 이들이 볼 수 있는 방송은 군부가 제공하는 국영 방송뿐이고 소셜미디어에 대한 접근도 쉽지 않다. 군인 가족들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쉽지 않고 병사들은 왜곡된 정보에 점점 고립된다”고 말했다. 그런 고립된 가운데 병사들은 인간적 배려보다는 단절된 특수 환경에서 명령에 의해 단지 살인기계가 되기 쉽다. 군부는 이런 공포정치 위에 정권을 창출하기만 바란다. 국가가 군대를 창립하는 이유는 시민을 보호하고 안전과 행복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지금 미얀마는 그 원칙이 완전히 상충되는 상황이다.

<김니나노(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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