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으로 보는 검·경 수사권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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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에피소드와 대사를 통해 짚어본 수사권 조정 핵심 쟁점들

‘한 줌의 희망이 수백의 절망보다 낫다는 믿음 하에 멈추지 않고, 관망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드라마를 시작합니다.’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2(이하 <비밀의 숲>)의 기획의도다. 제작진은 시청자를 계몽하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경찰과 검찰의 해묵은 수사권 논쟁에서 출발합니다’라며 구체적인 주제도 던졌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 포스터/tvN 홈페이지 갈무리

tvN 드라마 <비밀의 숲> 포스터/tvN 홈페이지 갈무리

2017년 방영된 전작 <비밀의 숲> 시즌1은 권력기관과 재벌을 둘러싼 의혹을 긴장감 있게 파헤친 추적극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사장르물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호평도 따라붙었다. 평균 시청률은 4.5% 수준(최종화는 7.1%)이었지만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비밀의 숲>은 살짝 방향을 틀었다. 현재 진행형 이슈인 검·경 수사권 조정을 드라마에 끌어들였다. 수사권 조정안은 최근에야 시행령이 입법예고됐다. 드라마는 수사권 조정의 핵심 쟁점을 두루 소개한다. 한국 드라마 중에는 논의되고 있는 사회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룬 예가 드물다.

<비밀의 숲>은 지난 8월 30일까지 6회차가 방영됐다. 1~4화에선 등장인물들이 수사권 조정 이슈의 주요 쟁점을 설명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비말의 숲’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시즌1에 비해 드라마의 내적 완성도나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복잡한 수사권 조정 이슈를 압축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빼놓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 인물관계도/tvN 홈페이지 갈무리

tvN 드라마 <비밀의 숲> 인물관계도/tvN 홈페이지 갈무리

<비밀의 숲>의 주요 에피소드와 대사로 수사권 조정 핵심 쟁점을 짚어봤다. 수사권 조정에 참여한 전·현직 검·경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수사권 조정은 ‘암장’ 사건을 줄일까

<비밀의 숲>은 익사 사고로 시작한다. 한 연인이 바닷가 출입통제선을 끊었고, 출입통제선을 못 본 다른 일행의 익사 사고를 촉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검찰은 경찰에서 송치된 지 하루 만에 불기소 처분(혐의없음)을 내린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처분이었다. 시설물 파손이 익사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견할 순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출입선을 끊은 남성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검찰의 빠른 불기소 처분에 전관예우가 작용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한여진(배두나 분) 경감이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사건 단서를 목격하는 등 전개가 작위적이라는 비판과 별개로, 익사 사고 에피소드는 기소권을 쥔 검찰 권력을 보여준다. 황시목(조승우 분) 검사는 “검찰의 힘은 기소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기소할 사건을 기소하지 않는 데 있다고 한다”(4화)고 말한다.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은 입맛에 따라 사건을 덮기 용이했다. 검찰의 ‘암장’ 사건은 종종 이슈가 됐다.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반려, 불기소 처분으로 묻혔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행 의혹이 암장 사건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비밀의 숲>에선 최빛(전혜진 분) 경찰청 수사구조혁신단장 겸 정보부장이 익사 사건 처리 과정을 두고 수사종결 권한이 검찰에 전적으로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실제 수사권 조정안은 드라마 속 최빛 단장의 뜻대로 경찰에게 1차 수사종결권을 줬다. 수사권 조정의 기본 취지에 역행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수사권 조정의 목표는 검·경 간 권한 분산과 견제였다. 검찰의 직접수사를 줄이는 대신, 검찰이 경찰의 직접수사 사건을 꼼꼼히 스크리닝하자는 것이 수사권 조정의 골자였다. <비밀의 숲>에는 최빛 단장이 경기 남양주경찰서장 시절 전직 대전지검장 사망 사건을 덮었다는 의혹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검찰이 ‘암장’ 사건을 우려했다. 검찰은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쥐게 되면 일반 서민 사건이 암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법무부가 지난 8월 7일 입법예고한 수사권 조정안 시행령에서는 보완장치가 마련됐다. 수사권 조정안 시행령에서는 경찰에서 수사 중지한 모든 사건을 검사에게 보내도록 했다. 검사의 재수사 요청에 따라 경찰이 재수사한 사건을 검사가 경찰에 송치 요청할 수 있는 제도도 더해졌다.

검·경 신경전, 현실과 유사?

<비밀의 숲>은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검·경 사이 갈등도 현실과 비슷하게 재현했다. 드라마에는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음주운전에 적발된 검사가 나온다.

지난 2019년 1월, 서울고등검찰청 소속 검사 두 명이 연이어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수사권 조정 논의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각각 혈중알코올농도는 0.095%(면허정지), 0.264%(면허취소) 수준이었다. 면허취소 수준으로 만취한 검사는 세 번째 음주운전 적발이었다. 음주운전자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시행 직후였기에 비난의 목소리는 더 컸다.

검찰 내부에서는 “경찰이 슬쩍 흘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드라마에는 경찰이 수사권 조정 국면을 유리하기 끌고 가기 위한 기획기사를 준비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고의적으로 검사 음주 사건을 언론에 흘리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경찰 비리를 몰라서 공개 안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드라마에는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치열하게 공작에 가까운 여론전을 펼치는 것처럼 나오는데, 그렇게까지 언론 플레이를 하진 않는다”고 했다.

경찰 권력의 핵심이면서 경찰의 ‘약한 고리’는 정보경찰이다. <비밀의 숲>에는 지인에게 구속영장 신청 사실을 미리 알린 경찰청 정보국장이 등장한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경찰은 선제적으로 다른 혐의를 적용해 정보국장 집무실 압수수색에 들어간다. 검찰수사는 최대한 피해보겠다는 취지다.

정보경찰이 입수한 정보를 수사권 조정 국면에 이용하는 장면도 나온다. 최빛 단장은 경기남부경찰청 정보과가 쥔 정보로 수사권 조정안 통과의 키를 쥔 국회 법사위원장을 압박한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이렇게 힘 있는 조직이었나 생각이 들면서도 정보경찰 이야기는 정확하게 취재해서 쓴 느낌이 든다. 부끄러운 장면이나 대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2018년 12월 대대적인 불법 정보 수집·사찰 의혹이 제기된 정보경찰 수사에 나섰다. 수사권 조정 논의가 이어지던 국면이었다. <비밀의 숲>의 정보국장 수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당시 검찰은 경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했다. 경찰은 같은 해 영포빌딩 다스 비밀창고·경찰청 정보국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정보경찰의 불법 정보 수집·사찰 정황이 담긴 문건들이 발견되자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특별수사팀이 수사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 2019년 6월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구속 기소하고 이철성 전 경찰청장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경찰 일각에선 검찰이 수사권 조정 국면에 영향을 주려 한 무리한 기소였다는 불만이 나왔다.

정보경찰 해체는 수사권 조정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경찰은 정보경찰 조직을 축소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다. 경찰은 지난 8월 24일 경찰청장 서면 브리핑에서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방역 위험요인 발굴 등 공공안녕 위험 예방·대응을 위한 정보경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현실과 다른 부분은?

드라마가 현실과 꼭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 <비밀의 숲>은 영장청구권이 검찰에게 있다고 명시한 헌법을 비중 있게 다룬다. 4화에는 여섯 가구에 가구당 평균 2억5000만원씩 전세 사기를 친 피의자가 등장한다. 경찰은 피의자를 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하지만, 검찰은 영장을 기각한다. 장건(최재웅 분) 용산경찰서 강력팀 형사는 “밑도 끝도 없이 보완 수사를 하라고 한다”고 말한다.

구속영장뿐만이 아니라 압수수색 영장 등은 강제수사의 핵심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처럼 검찰이 덮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서도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반복해 반려하는 검찰의 행태가 문제가 됐다. 다만 경찰은 영장청구권이 이번 수사권 조정의 핵심 쟁점은 아니었다고 했다. 수사권 조정 업무에 관여했던 한 경찰 간부는 “개헌이 필요한 쟁점이었고 영장청구권을 검찰에게만 준 헌법 조항을 폐지하는 데에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판단한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이 국회를 상대로 설명할 기회도 얻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비밀의 숲>에는 검찰이 국회 법사위원장 자녀 채용 비리 사건을 1년 6개월가량 쥐고 있다가 불기소 처분하는 장면이 나온다. 황시목 검사는 “검찰은 (법사위원장을) 구워삶는 쪽을 택했네요”(5화)라고 말한다. 수사권 조정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 검찰이 사건을 덮은 사실을 꼬집은 대사다. 기소권을 남용한 사례이기도 하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경찰은 수사구조개혁단이 수십명씩 붙는 상시 조직이었고, 우리는 저를 포함해 검사 3명만 붙는 임시 조직이었다. 국회를 돌아다니면 불이익을 준다고 해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대검 형사정책단장으로 수사권 조정 업무를 총괄했다. 드라마에선 우태하(최무성 분) 대검 형사법제단장이 김 의원의 역할을 맡는다.

김 의원은 지난 2019년 7월 법무연수원 교수로 발령받았다가 올 1월 사표를 냈다. 김 의원이 수사권 조정 업무를 하다가 정부·여당의 눈 밖에 나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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