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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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봄. 하루 일을 마치고 청와대 인근에 있던 파란 천막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머리를 바싹 깎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농성을 이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이날 8명의 특수교사가 힘을 보태기 위해 천막을 찾았고,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어머니는 20대 발달장애인 아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무교육을 마친 발달장애인들이 낮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 달고 요구했습니다. “삭발만 4번째”라고도 했습니다. 10여 년 전, 부모들은 삭발로, 단식농성으로 장애인 교육권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특수교육 대상자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적어도 학령기에는 갈 곳이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발달장애인의 삶이 눈에 띄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을 찾아 헤매야 합니다. 돌봄 책임은 온전히 가족의 몫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중증이 아닌데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을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만드는 게 그의 희망이었습니다. 부모들의 요구에 그해 9월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이 나왔습니다. 한 조각 희망이 생겼습니다.

어머니를 다시 만난 건 지난 6월 8일이었습니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ㄱ씨와 그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ㄱ씨는 코로나19 이후 복지시설이 폐쇄돼 자택에서 중증 발달장애인 아들을 홀로 돌봤습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서비스는 제한적이었고 돌봄 부담은 컸습니다. ㄱ씨는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의 목숨도 끊었습니다. 이전부터 비슷한 일은 반복돼왔고, 지난 3월 제주에서도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ㄱ씨는 부모운동을 함께하는 동지이자 언니였습니다. 그는 “삶을 나름대로 나눈 것 같은데 마음 깊숙한 자리까지는 알지 못했나 보다”라며 “황망함 속에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습니다.

ㄱ씨의 죽음은 발달장애인 지원책에 구멍이 크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사흘 뒤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은 또다시 청와대 앞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자리에서 ‘언니’를 부르짖었고, 몸짓으로 추모했습니다.

2년 만에 생각지도 못하게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처럼, 언젠가 또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은 눈물 없는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기쁨의 눈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요. 활짝 웃을 수 있으면 더 좋고요.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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