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 ‘소신’ 과한 신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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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3조원 증액 국가채무 0.15%포인트 늘어 “기재부 지나치게 보수적”

“코로나19 위기가 가을, 겨울까지 계속돼 다음에 또 지원금을 지급하는 상황이 오면 100% 지급할 것인가”, “다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상황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만에 하나 지원금액을 다시 논의해야 하면 여러 상황으로 봐서 100%보다 (필요한 수준에) 맞춰서 하겠다.” 지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 28일 국회 예산 결산 특별위원회에서 미래통합당 유승민 의원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이에 오간 말이다.

정세균 총리가 4월 23일 정부의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입장을 두고 ‘뒷말’하지 말라며 기재부를 공개 질책했음에도 기재부의 ‘소신’은 확고해 보인다. 코로나19로 기업과 가계의 돈줄이 말라가는 지금 정부가 푸는 돈의 가치는 어느 때보다 크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기재부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그 정도가 과한 것은 아닌지 따져볼 시점이다.

“경제 전체가 아닌 부처만의 논리”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전재정이라는 이름의 도그마’라는 글을 올려 기재부를 비판했다. 경제상황과 관계없이 건전재정 유지가 절대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경직된 사고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 해법을 추구하되, 과감한 재정확장을 통해 단기적으로 불황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문제의 핵심은 정부의 재정적자 여부가 아니라 과연 정부가 생산적인 방식으로 적자재정을 활용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이 교수 외에도 기재부가 재정건전성에서 지나치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지적이 많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재부 입장에서 보면 재정건전성 유지가 부처의 역할이란 점에서 합리적일 수 있겠지만 전체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면서 “지금 정부가 취할 정책으로 기재부의 입장은 적절하지 않고 지나치게 위험기피적이다”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정부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정도나 다른 나라의 재정지원 규모, 우리의 재정여력 대비 지출 규모 등 어느 면을 봐도 과도하지 않다고 봤다.

실제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줘도 현재 제출된 추경안에서 3조원 정도만 추가로 들 뿐이다. 이를 국채로 발행해 충당해도 국가채무비율은 41.35%로 0.15%포인트 늘어나는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국가부채비율(110%)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주 교수는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늦게 코로나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돈은 훨씬 빨리 풀었다”면서 “우리는 재난지원금을 푸는 규모도 작고 속도도 너무 느리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은 합리적이고 혁신적이었지만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은 정치적 갈등만 조장하고 합의 도달이 늦었다고 지적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도 민간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우리는 공공부문 투자와 적극적인 재정지출로 민간 경제활동을 견인할 만한 재정여력이 확보되어 있다”면서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민간경제를 살리면 다시 세수가 증가하고 정부 재정여력이 확장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다소 해치더라도 한국의 복지국가 방향성을 그리고, 그에 따라 예산을 배정해 지출하면 중장기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동태적 관점의 기획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기재부는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국채 발행은 없다고 못 박았다. 지출조정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강병구 교수는 “정부가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거나 팬데믹으로 지출하지 못한 예산들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일정 정도 재원을 조달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경제위기 국면에서 재정지출 승수(정부지출을 한 단위 늘렸을 때 국내총생산이 증가하는 규모)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GDP)의 40% 이내로 유지하는 것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유럽연합(EU)이 권고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60%를 기초로 연금 고갈과 통일비용을 대비해 10%씩 줄인 것이다. 정부 부채가 많으면 성장이 악화되는 ‘문턱효과’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이런 기준을 세운 것이지만 학계에선 근거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의 국가채무 증가는 긴축재정과 고령화 등으로 인한 성장률 하락이 원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적극적인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은 정부’ 전통 따른 증세 거부감 때문

물론 기재부의 재정건전성 우려가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 국가 부채의 증가속도가 빠르고, 코로나19가 얼마나 장기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돈을 쓰기 어렵다는 논리다. 주 교수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독일이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듯 우리도 외적 충격에 대비해 재정건전성을 더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정부의 부채 비율이 훨씬 낮지만 그만큼 조세부담도 낮아 기재부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건 일견 타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세부담율이 낮다는 건 그간 증세를 미뤄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부 수입·지출 규모는 GDP 대비 각각 34.6%, 32.3%로 OECD 평균(42.4%, 43.0%)보다 작다. 조세부담률도 19.4%로 OECD 평균인 24.9%에 비해 낮다. 이 때문에 기재부가 진정 재정건전성을 우려한다면, 그리고 정부가 ‘중부담 중복지’ 국가를 지향한다면 자산과세를 중심으로 증세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을 늘리면 경제활동에 저해 요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과거부터 계속 증세를 반대했다”면서 “통일과 고령화를 대비해 여유를 둬야 한다면 증세를 하면 되지 ‘40%’가 마지노선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재정건전성 ‘집착’은 과거 재무부 시절의 자유주의 전통이 이어져 온 측면도 있다. ‘나라 곳간은 우리가 지킨다’는 생각이 각인되어 대대로 내려온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재무부 자체가 원래부터 자유주의자 혹은 ‘작은 정부주의자’들이 많다”면서 “작은 정부주의자의 전통과 재정건정성을 강조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의 관료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 보편지원·선별환수를 제안했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기재부가 제대로 된 재정건전성이라도 추구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위원은 “보편지원 후 기본공제 폐지 등으로 고소득자에 지원된 재난지원금을 선별적으로 환수해 세수를 확보하자는 제안에 기재부는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국무총리를 비롯해 많은 국민이 공감한 방안에 대해서 공감은커녕 쳐다도 보지 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기재부를 재정건전성을 수호하는 집단처럼 부각하는 것이 기재부의 프레임에 걸려드는 것”이라며 “증세를 하지 않고 여태 있었던 역진적 조세를 ‘효율화’하는 정도로는 기재부가 재정건전성에 관심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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