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아이들’ 엄벌이 능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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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적용 연령 인하 주장에 ‘낙인효과’ 우려 지적도

소년범죄는 쉽게 여론의 입길에 오른다. 참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범죄자가 소년법상 ‘소년(19세 미만)’에 해당하면 처벌 수위가 현격히 낮아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형법에 규정된 ‘형사미성년자(14세 미만)’, 소년법의 ‘촉법소년(10~13세)’이라면 아예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 지난 3월 렌터카를 훔쳐 무면허로 운전하다 대학생 피해자를 치어 숨지게 한 소년들을 비롯해 4월 초 성착취물 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도 촉법소년이 있었다. 무거운 죄를 지어도 나이가 어려서 처벌을 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세간의 인식 때문에 소년법을 개정 또는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은 수시로 들끓는다.

소년원에 감치된 재소 청소년들이 소년범죄를 다룬 영화 <범죄소년>을 시청하고 있다./㈜타임스토리 제공

소년원에 감치된 재소 청소년들이 소년범죄를 다룬 영화 <범죄소년>을 시청하고 있다./㈜타임스토리 제공

촉법소년에 해당하지 않는 14세 이상의 청소년들이 저지른 범죄까지 포함하면 소년범죄의 심각성은 무시할 수준을 넘어섰다. ‘n번방 사건’으로 알려진 성착취물 영상 촬영 및 유포 사건에서도 만 18세의 ‘부따’ 강훈이 주요 공범으로 지목됐고, 지난해 인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역시 2명의 청소년이 또래 학생에게 성폭력을 저질러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들 소년범에게 성인 범죄자와 같은 수준의 처벌을 하라는 요구도 현실과 당위 모두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시민의 권리가 제한되는 청소년들에게 높은 수준의 책임만을 묻도록 법체계를 바꾸기도 어려울 뿐더러 당초 소년범들을 교화하려는 취지에 반해 낙인을 찍는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10~13세 ‘촉법소년’은 보호처분

법조계에서는 당장 소년범죄가 발생했을 때, 특히 범죄로 인한 피해가 참혹하다면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해 범죄자에게 응분의 벌을 내려야 한다는 정서가 강해지는 현실부터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범죄의 참상에 분노하는 분위기 역시 그 자체로 옳다, 그르다를 따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소년범죄를 규정하는 법이 단지 나이 어린 범죄자를 봐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이 저지른 형사사건 처리 절차는 크게 형법과 소년법, 두 법률에 따라 진행된다. 일단 형법(제9조)이 1953년 제정 이후 줄곧 14세 이하 형사미성년자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 10세 미만은 법적인 제재를 가하기 어렵지만 10세부터 18세까지는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10~13세 소년이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면 ‘촉법소년’에 해당돼 보호처분을 받는다. 14세부터는 ‘범죄소년’에 해당돼 형법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대체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수준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보다는 비교적 가벼운 벌금형 이하에 해당하는 범죄사실이 인정될 경우 소년법의 보호처분만을 받는 경향이 있다. 지방법원이나 가정법원 소년부에서는 소년원에 감호시키는 처분부터 사회봉사나 보호관찰 등에 이르기까지 인정된 범죄의 수위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린다.

물론 이렇게 봤을 때 일방적으로 관용만 베푸는 법적 조치가 내려지지 않는다고 해서 현재의 법적 제재가 적정한 수준이냐의 논란은 남는다. 특히 최근 소년범죄 전체 건수는 줄어들었지만 이 가운데 정식 형사재판을 받는 비중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법적 대응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검찰청의 소년사범 형사사건 처리현황 통계를 보면 검찰에 송치된 전체 소년사범 수는 2010년 10만5033명에서 2019년 7만5184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죄가 위중하다고 보고 검사가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한 구공판 비율을 보면 같은 기간 3.4%(3572명)에서 5.6%(4255명)로 늘었다. 보다 무거운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늘어난 데 대한 대책 마련은 필요한 셈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소년범죄 사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적용 연령을 낮추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대체로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1~2세 낮추고 특정 강력범죄를 두 차례 이상 저지르면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하는 등의 방안이 담겼다. 그러나 소년법은 개정되지 않은 채 회기가 끝나 개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21대 국회를 지켜봐야 한다.

‘소년의 사회 복귀와 회복’ 관점에도 반해

형사정책 전문가들은 단순히 소년법의 연령기준을 낮추거나 형사처벌 감경 조항을 폐지하는 것으로 청소년 강력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강력범죄 사건이 벌어지면 처벌을 강화하자는 여론도 거세지만 이에 따라 청소년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 ‘낙인효과’에 따라 청소년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아예 차단돼 버린다는 것이다. 범죄를 처벌하는 목적은 응징만이 아니라 교화와 예방에도 무게를 둬야 하는데, 특히 소년범죄에 대해 더욱 강하게 이뤄져야 할 교화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사회에 더 큰 폐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경고다.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소년범죄의 흉포함 때문에 소년법을 폐지하거나 이들 소년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 소년범죄는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모든 잘못을 소년에게 전가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비준하고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소년의 사회 복귀와 회복’ 관점에 반한다는 점에서 처벌 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년범죄자 가운데 과거 전과가 있는 비율이 40% 내외인 만큼 예방을 위해선 재범률을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문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소년법은 아동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역량을 강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며 “아동기의 발달특성을 고려해 범죄를 저지른 아동이라 해도 적절한 교육과 선도를 통해 가정과 학교,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를 비롯해 인권활동을 벌이는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비공개로 진행되는 소년보호사건 심리 과정에 피해자나 그 법정 대리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절차참여권 및 알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수사단계에서 심리치료 지원과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지원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대표는 “학폭위에서 제대로 해결을 보지 못한 피해 학생은 그 분노를 더 약한 사람에게 푼다”며 “가해자에게만 귀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는 마치 피해자가 문제가 있어서 피해를 당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문제를 남긴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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