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나의 눈

민식이법은 악법도 떼법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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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이 35만4857명의 참여로 종료됐다. 나도 운전을 하지만,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잠재적 가해자로 인식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모든 보행자가 운전자는 아니지만, 모든 운전자는 원래 보행자 아니던가? 민식이법에 반대하는 이유로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과실치사임에도 고의 살인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고의와 과실범의 구분은 근대형법의 원칙인데 이런 원칙이 흐려진다”고 말했다.

[장하나의 눈]민식이법은 악법도 떼법도 아니다

반대청원은 민식이법 형량이 윤창호법과 같은데 “음주운전이라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와 순수과실범죄가 같은 선상에서 처벌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라고 주장한다. 순수과실은 무슨 뜻일까? 스쿨존에서 제한속도를 위반하고, 교통신호를 위반하고, 횡단보도에서 일시 정지하지 않고 운전한 가해자에게서 어떤 순수함을 발견하라는 것인가?

근대형법의 원칙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민식이법은 피 해자가 13세 미만 어린이라는 단서가 달려 있고, 전 국토의 극히 미미한 일부분인 스쿨존에서만 작동하며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했을 때만 적용되는 법이다. 2018년 기준 전국 초등학교 통학로 중 30%에는 보도가 없다. 민식이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튀어나와서 억울하게 처벌받을 것’을 걱정하지만 스쿨존의 실상은 어린이들이 튀어나오는 차를 피해 살아남는 상황이다. 반대청원은 민식이법이 입법권 남용과 여론몰이가 불러온 엉터리 법안이라고 말한다. 악법이고 떼법이라고 말한다.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라는 규정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제한속도를 지켰다 한들 운전자 부주의를 문제삼으면 징역이나 벌금형을 면하기 힘들 거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건 민식이법의 문제가 아니다.

1997년 8월 30일 도로교통법 제11조의2(어린이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제3항이 신설되면서 “운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준수하고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행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법체계에 처음 등장한다. 2009년 12월에는 이를 ‘중과실 교통사고’로 규정하고 반드시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 시행되었고, 지난 3월 시행된 민식이법에서 가중처벌의 대상으로 해당 규정이 인용된 것이다.

즉 민식이법이 아니라 도로교통법 제12조 제3항이 문제다. ‘규율 대상자(운전자)’에게는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 미리 알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법 집행자’에게는 객관적 판단 지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해 자의적 해석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개정해야 할 것은 민식이법이 아니고 도로교통법이다.

민식이법은 악법도, 떼법도 아니다.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민식이법이 악법이라는 여론을 조장하고, 스쿨존에서 사고 나면 ‘무조건’ 처벌받는다는 유언비어로 공포를 조성했을까. 이득을 본 건 보험을 파는 회사나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가 아닐까. 돈벌이 때문에 아이의 고운 이름에 먹칠을 하고 유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민다.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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