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배달앱, 노동자 목소리는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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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대행 서비스와 배달대행 중개까지 함께해야 배달노동자 권익도 개선

배달노동자 임승환씨(29)는 하루 평균 12시간 배달일을 했다. 부산지역 배달대행업체와 주 2회 휴무를 조건으로 계약했지만 업무가 시작되자 업체 측은 일주일에 하루만 쉴 것을 통보했다. 강도 높은 노동에 피로가 누적됐고 안전사고로 이어졌다. 지난해 1월에는 부산 수영구의 한 내리막길에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필름이 끊기는’ 느낌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오토바이와 함께 도로에 누워 있었다. 사고 당시 시속 10㎞ 이하로 저속주행 중이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찔했다. 사고가 날 때마다 보험 접수를 했는데 내역을 결산해 보니 한 달에 1회 이상 사고 기록이 남아 있었다.

대구 달구벌대로 청라언덕역 부근을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대구 달구벌대로 청라언덕역 부근을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리랜서, 이른바 개인사업자 신분이었던 임씨는 왜 배달 물량을 조절하지 못하고 과로에 시달렸을까. 임씨와 계약을 맺은 지역 배달대행업체는 배달대행앱 ‘생각대로’와 위탁계약을 맺은 업체다. 배달대행업체는 ‘생각대로’의 배차 프로그램을 쓰고 ‘생각대로’가 내려보낸 업무규정을 따라 라이더들을 관리했다. 생각대로의 업무규정에는 라이더의 출·퇴근 시간과 식사시간 제한을 포함해 회사가 명령한 ‘강제오더’를 수행할 것을 명시했다.

임씨도 강제배차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강제배차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과속과 신호위반, 인도 주행을 반복했다. 임씨는 지난 1월 27일 부산에 강풍 특보가 내려진 날 강제배차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됐다. 비에 젖은 휴대폰과 옷을 말리는 동안 내려온 강제배차 주문을 확인하지 못한 탓이다. 임씨는 “회사가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하면서 노동착취를 벌였다”며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지만 사실상 생각대로 소속 직원이었다”고 말했다.

임씨와 같은 배달노동자는 자영업자와 소비자, 배달앱, 배달대행앱, 배달대행업체와 함께 배달시장을 이루는 한 축이다. 하지만 배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배달업계 이슈에서 밀려나 있다. 최근 국내 1위 배달앱 ‘배달의 민족’의 수수료 개편 과정에서 불거진 배달시장 문제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배달노동자의 자리는 없다. 현재 배달시장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된 방안은 공공배달앱이다. 배민 수수료 사태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비롯해 각 지자체가 공공배달앱 추진 계획을 밝히고 나섰다. 공공배달앱이 배달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공공배달앱, 배달노동환경 바꿀까

노동계는 공공배달앱 개발에 찬성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플랫폼 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공공앱을 개발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라이더유니온(위원장 박정훈)은 ‘소상공인과 라이더들이 플랫폼 기업의 갑질과 횡포로부터 보호받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배달산업을 만들기 위한 협의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후 라이더유니온은 공공배달앱과 관련해 경기도에 ‘공공배달앱의 배달 주문을 처리하는 라이더들의 노동기본권보장’이 필요하다며 안전배달료와 라이더들의 산재 가입, 날씨에 따른 배달 제한 및 안전수당 지급 등을 제안했다. 공공배달앱의 수수료 경감에서 나온 이익을 배달노동자와 공유하고 배달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다.

라이더유니온이 경기도에 제안한 1안은 공공배달앱과 공공배달앱에 접수된 주문을 수행하는 배달대행업체 간 공정한 계약이다. 공공배달앱과 일을 하려는 배달대행업체에 ‘안전배달료 3500원’ 보장을 비롯해 배달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위탁계약을 강제하자는 것이다. 배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을 감안해 우회적으로 배달대행업체를 관리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다만 1안은 공공배달앱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야 효과가 있다. 배달의 민족·요기요 등 기존 배달앱에서 지금처럼 배달 물량이 나온다면 배달대행업체가 안전배달료 등 추가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공공배달앱과 계약을 맺고 거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라이더유니온은 두 번째 대안으로 공공배달앱이 주문 중개와 함께 배달대행 중개를 함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생각대로·부릉 등 배달대행업체들이 제공하는 배달대행 프로그램을 공공배달앱에서 직접 제공해 배달대행 중개수수료 부담을 덜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대형 배달대행업체와 지역 배달대행업체가 가져가는 월 관리비와 프로그램 사용수수료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는 주문중개앱 제작보다 더 많은 시간과 인력·비용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상시적으로 배달 관제업무를 전담할 인력이 유지돼야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 유지·관리하기 쉽지 않다.

전북 군산에서 출시한 공공배달앱 ‘배달의 명수’를 보면 이해가 쉽다. 배달의 명수는 민간 배달앱과 달리 이용수수료와 광고료가 없다. 이 때문에 업소당 월평균 25만원 이상(군산시 추산)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소비자들은 민간 배달앱에서 쓸 수 없는 지역화폐를 이용해 음식값 10% 할인을 받는다. 앱을 이용하는 자영업자와 소비자에게는 혜택이 돌아간다.

하지만 ‘배달의 명수’식 공공배달앱은 배달노동자와는 무관한 앱이다. 배달대행 중개를 하지 않고 주문대행 서비스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군산시 관계자는 “배달의 명수는 주문연계 업무까지만 한다”며 “지자체에서 배달대행 중개까지 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지자체서 배달대행 중개까지는 어려워”

배달의 명수를 통해 주문이 들어오든, 배달의 민족으로 주문이 접수되든 배달노동자에게는 똑같은 배달 일감이다. 주문 접수된 이후 배달 과정은 공공앱과 민간앱 간 차이가 없다. 자영업자와 지역 배달대행업체는 배달대행프로그램을 받고 수수료를 낸다. 배달대행업체가 자영업자와 배달노동자에게 수수료를 떼가는 구조는 소비자가 공공배달앱을 이용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4월 13일 이재명 경기지사는 플랫폼 배달 노동관계자와 간담회에서 “최근 플랫폼사업자와 가맹점의 이익 편중 문제가 집중 조명되었는데, 사실 그 그늘 속에 배달직 종사자들이 있다”며 “가맹점도 이익이 되고, 거기에 종사하는 라이더들도 도움이 되고, 소비자들도 이익이 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지사의 말처럼 배달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아우르려면 배달산업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기존 ‘배달의 명수’식 앱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성공 여부를 떠나 시도를 하는 데도 장시간 고비용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당면한 배달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지자체의 공공배달앱을 근본 해결책으로 삼기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배달노동자를 포함한 플랫폼 노동 전반에 대한 관리지침을 먼저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박정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무엇보다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공공앱을 통해 착한 소비를 유도하기보다 정부가 배달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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