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또다시 생사기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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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해고노동자 복직 앞두고 마힌드라 그룹 투자 철회 방침 밝혀

쌍용자동차가 위기를 맞았다. 대주주 마힌드라 그룹의 2300억원 자금 지원 약속 철회로 생존의 기로에 섰다. 당장 경영진은 4월 임직원 급여 지급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12분기 연속 적자에 부분 자본잠식(자본잠식률 46.2%)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마힌드라의 지원 철회는 쌍용차에 치명적이다. 오는 7월 만기가 돌아오는 산업은행 차입금 900억원을 막지 못하면 유동성 부족으로 문을 닫을 수 있다.

쌍용자동차 사회적 합의 이행 촉구 시민사회 선언 기자회견에서 노동자 장준호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쌍용자동차 사회적 합의 이행 촉구 시민사회 선언 기자회견에서 노동자 장준호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강윤중 기자

2009년 이후 다시 벼랑 끝에 선 쌍용차 구성원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쌍용차 노사는 정부와 금융권 지원을 촉구하는 한편 추가 자구안 마련을 검토 중이다.

마힌드라발(發) 위기는 5월 1일 복직을 앞둔 마지막 해고노동자 46명에게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다. 10년 넘게 이어진 악몽이 끝나려던 찰나 또다시 악재가 터진 것이다. 복직 대기자들은 지난해 12월 24일 복직을 일주일 앞두고 ‘경영상 이유’로 무기한 복직 연기 통보를 받은 바 있다. 이미 이들은 2018년 대통령 소속 사회적 대화 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와 쌍용차, 기업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등 4자가 참여한 ‘사회적 합의’가 깨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들이 악몽이 되풀이될까 두려워하는 이유다.

해고노동자의 사정

지난 1월 김수형씨(41·가명)는 쌍용차 복직을 위해 충남 당진에서 경기 평택으로 이사를 왔다. 당진에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다. 예정과 달리 복직이 연기되면서 요즘은 배달 대행일을 한다. 오후 3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음식배달을 한다. 배달일은 5월 1일 복직 전까지만 할 예정이었는데 요즘은 더 하게 될까 불안하다. 김씨는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 예정대로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이번에도 복직 약속이 깨지면 회사로부터 세 번 해고 당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1993년 쌍용차에 입사한 뒤 2009년에 정리해고된 윤진석씨(52·가명)는 이제껏 단기 계약직·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왔다. ‘쌍용차 출신은 강성노조’라는 세간의 편견 때문에 재취업이 어려웠다. 현재 유급휴가 상태이긴 하지만 회사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해 출근할 날만 기다려왔다. 무엇보다 10년 넘게 따라다닌 쌍용차 해고자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 윤씨는 “복직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게 아니다. 10년 넘게 기다렸으니 이번만큼은 동료들과 같이 손잡고 들어갔으면 좋겠다. 회사가 어려워서 임금을 깎는다면 들어가서 동참할 생각이다. 한 배에 타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46명의 복직과 관련해 내려온 별도의 방침은 없다. 그럼에도 복직 대기자들은 불안하다. 지난해 쌍용차와 기업노조가 복직 대기자의 휴직을 일방적으로 연장해 복직이 무산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쌍용차 노사는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당사자의 동의 없이 무기한 휴직 연장에 합의했다. 2019년 쌍용차 정년퇴직자는 복직 대기자수 46명보다 많은 50여 명이었다. 이 때문에 복직 대기자의 휴직 연장 조치를 두고 ‘내부 직원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깨뜨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이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이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4월 7일 정일권 쌍용차 기업 노조 위원장은 “총고용이 흔들리는 조짐이 감지된다면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투쟁도 불사해 조합원의 고용안정만큼은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위기 국면에서도 내부 직원의 고용은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복직 대기자에 대한 휴직 연장을 했을 때와 비슷한 행보다. ‘외부’ 직원인 복직 대기자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문제는 쌍용차가 처한 현실이다. 현재 쌍용차의 생존 전략에 복직 대기자 46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마힌드라가 투자 철회 건과 별도로 400억원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부산물류센터에 이어 안성 인재개발원까지 매각한다고 해도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100여억원에 불과하다. 쌍용차 경영진이 위기 타개 전략으로 내세운 신차 개발도 녹록지 않다. 신차 개발에는 최소 2년 이상의 연구·개발 기간과 3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자금 유치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난해 12월 기준 쌍용차의 차입금 규모는 4100억원에 달한다.

정부, 쌍용차 자금 지원에 난색

마힌드라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마힌드라는 쌍용차의 운명을 한국 정부에 떠넘긴 상태다. 쌍용차 인수 이후 마힌드라는 쌍용차에 대해 소극적인 지원 방침을 고수해 왔다. 이제껏 마힌드라가 지원한 자금 규모는 1300억원(인수 대금 제외)에 불과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도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마힌드라의 생존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마힌드라도 누적적자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투자 철회는 간접적으로 ‘쌍용차에서 그만 손 떼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쌍용차 자금 지원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쌍용차의 시장·기술 경쟁력과 세금 지원에 대한 국민 여론을 감안하면 자금 지원은 명분과 실리 모두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카드다. 마힌드라가 투자 계획을 철회하면서 “대주주가 성의를 보이면, 채권 만기 연장 및 투가 대출 등 지원을 검토하겠다”는 기존 방침 역시 고수하기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쌍용차는 정부와 금융권에 지원을 거듭 요청하고 있다. 자금 지원을 통해 쌍용차가 자생할 수 있을지 여부를 떠나 당장 정부의 자금 지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향후 쌍용차는 정부의 자금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추가 자구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강도 높은 자구안은 정부와 채권단에 ‘성의’를 보이고 국민 여론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임직원이 대규모 임금 삭감과 같은 고통 분담을 통해 동정 여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고자 복직 문제는 쌍용차가 자금 지원을 요구하는 데 있어 부담스러운 이슈다. 쌍용차 측은 “공식적으로 5월 1일 현장배치(복직) 방침에 변동 사항은 없다”면서도 “앞으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심적으로는 안타깝지만 해고자 복직 문제는 도덕적 당위로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복직을 강행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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