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절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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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반대표 던진 안건 대부분 효과 못 봐

3월은 주주총회의 계절이다. 미국 등 주요 국가 기업의 주총은 4~6월에 열리는 게 보통이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회사가 3월 마지막 주에 주총을 연다. 12월에 결산을 하는 회사들은 3월 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회사들은 보고서 제출 직전에 주총을 개최한다. 특히, 올해에는 국민연금의 ‘5%룰’이 완화되면서 주총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제51기 정기 주주총회가 지난 3월 18일 오전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됐다. / 연합뉴스

삼성전자 제51기 정기 주주총회가 지난 3월 18일 오전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됐다. / 연합뉴스

그동안 주주권 행사는 국내에서만큼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기보다는 단순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2016년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도록 한 ‘행동지침’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떻게 주주권을 행사할지 규정한 이 행동지침에 따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기관투자자가 늘어난 것이다.

주주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에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주주총회에서 찬반을 표시하는 의결권이다. 찬성과 반대 여부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소극적인 형태의 주주활동이다. 투자 대상 기업에 보내는 서신이나 경영진과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는 사적 대화를 통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주주권 행사 걸림돌 5%룰도 완화

주주제안이나 위임장 대결과 같은 적극적인 주주활동도 있다. 주주제안은 일정 지분 이상을 소유한 주주가 직접 주주총회에 안건을 상정하는 것이다. 지난해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주총에서 국민연금은 배임·횡령 등으로 실형을 받은 임원은 자격을 박탈하도록 정관을 변경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위임장 대결은 주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실력행사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주로 인수·합병(M&A)과 같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에서 벌어진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배당을 늘리는 등의 변화도 나타났다. 사회적 책임투자 컨설팅사인 서스틴베스트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보고서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효과 연구’를 보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배당 성향이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기업보다 약 55% 높아졌다.

국민연금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12월 마련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통해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평가 등급이 C등급 이하이거나 예상하지 못한 기업가치 훼손, 주주 권익침해가 우려되는 경우에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주주권 행사의 걸림돌이었던 5%룰도 완화됐다. 5%룰은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거나 이후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는 경우에는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특히 5% 넘게 주식을 가진 투자자가 임원 해임 등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때에는 5일 이내에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 이 보고 의무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의 걸림돌이었다. 국민연금의 지분 변동 현황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는 모두 313곳인데, 이들 기업의 지분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진다면 국민연금의 투자 전략도 외부로 노출된다.

이에 정부는 활발한 주주권 행사를 위해 보고 의무를 개선했다. 우선,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사안을 특정 인물을 임원으로 뽑거나 다른 기업과의 M&A로 한정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정관을 변경하거나 배당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들 사안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월별로 약식으로 보고만 하면 된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지분 변동 내역이 바로 공개되지 않는 만큼 부담을 덜 게 된 것이다.

우호 지분 확보 못해 영향력 미미

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5%룰을 완화하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은 실질적 경영권 개입 행위를 주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반면 기업의 경영권 방어는 무력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투자자가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해 지분을 늘리는 경우에는 5일 안에 상세히 보고됨에 따라 기업이 대응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불가능해졌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금까지 열린 주총을 보면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3월 25일까지 열린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안건들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국민연금은 효성 조현준 회장과 조현준 사장, 우리금융지주의 손태승 회장, 신한금융지주의 조용병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이들 모두 선임됐다. 국민연금은 이들 회사의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등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우호 지분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원안대로 승인된 것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우호 지분을 확보하지 못해 의견이 관철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 2017년 열린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한 373건 중 7건만이 최종 부결됐다. 지난해 정기 주총에서는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 648건 중 11건만 부결됐다. 투자대상 기업에서 2위나 3위 정도의 지분을 보유한 경우가 많아 이 지분만으로는 목표한 성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적극적으로 다른 투자자와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가 가운데 투자자 연대 관련 조항이 없는 곳은 한국을 비롯해 독일과 벨기에, 태국 등이 전부다. 일본도 스튜어드십 코드 당시에는 투자자 연대와 관련한 규정이 없었지만 2017년에 뒤늦게 포함됐다.

예금보험공사 등 공공기관들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3월 25일 열린 우리금융지주 주총에서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과 달리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손태승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건에 찬성함에 따라 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는 “예금보험공사가 예금보호기금을 운용하는 기관이며, 동시에 다수 금융기관의 지분을 갖고 있음에도 수탁자로서 행동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라며 “하루속히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한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수탁자책임 활동을 통해 기업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건전경영을 유도하겠다고 강조해왔다”며 “그럼에도 예금보험공사는 자신의 책임을 내버렸을 뿐 아니라 다른 기관투자자들의 수탁자책임 활동까지 방해했다”고 비판했다.

<박상영 경제부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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