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삼아 배달노동 권하는 사회,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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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달노동자 권익보호 앞장서는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

지난 10월 24일 경남 진주에서 배달노동자 이모군(19)이 사고로 숨졌다. 이군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갔다가 가로등을 들이받고 세상을 떠났다. 숨진 이군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업주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이군의 오토바이에는 번호판조차 없었다. 업주는 이군이 무보험 상태임을 알면서도 일을 맡겼다.

사고 소식을 전한 기사 밑으로 댓글이 이어졌다. 대부분 저주에 가까운 악담이었다. 10대의 황망한 죽음을 애도하는 이는 드물었다. 최근 온라인에서 회자되는 이른바 ‘배달원 배달 음식 빼먹기’와 이군의 사고를 연관 지은 혐오 표현도 나왔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김정근 선임기자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김정근 선임기자

혐오는 노동자의 죽음을 덮는다. 노동자의 죽음이 가십으로 전락하면서 플랫폼 노동의 구조적 문제는 공론장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배달노동자의 죽음은 혐오 소재로 소비되고 희화화된 뒤 사라지는 것이다. 배달노동자는 어쩌다 혐오의 대상이 됐을까.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플랫폼의 구조는 왜 바뀌지 않는 걸까. 배달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결성한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36)을 만났다. 인터뷰는 10월 30일 서울 마포구 기본소득당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배달노동자의 죽음보다 ‘배달 음식 빼먹기’가 관심을 받는다.

“음식 빼먹기는 분명 잘못된 행위다. 당사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개인 일탈에 불과하다. 배달원 음식 빼먹기가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배달산업이 유지될 수 있겠나.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소수의 일탈행위를 놓고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마치 다수의 배달노동자가 벌이고 있는 행위처럼 몰아간다. 사안 자체가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기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한국 사회에서 배달노동자(라이더)는 혐오해도 괜찮은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 혐오하기 적당한 대상이 주목받기 좋은 짓을 저질렀으니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는 것이다.”

-소수의 일탈이라고 해서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일탈행위에 대한 비난을 한 뒤에 그 다음을 봤으면 좋겠다. ‘왜 라이더의 일탈행위는 통제를 받지 않을까’ ‘왜 이들은 업무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을까’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일탈행위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 플랫폼 노동 구조에서는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 라이더는 업무지시도 교육도 받지 않는다. 라이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누구도 직접고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자들은 배달노동자를 싼값에 쓰지만 고용의무와 사고책임에서는 자유롭다. 음식 빼먹기 건만 봐도 그렇다. 해결책으로 나온 게 빼먹기 방지용 스티커를 붙이는 건데 이 스티커 비용마저도 소비자에게 지운다. 책임자가 없다보니 결국 소비자가 피해에 대한 비용을 떠안는 셈이다.”

-배달노동자들이 위험한 노동환경을 호소하면 ‘본인이 돈 더 벌고 싶어서 과속하고 신호위반해서 위험을 자초한 것 아니냐’고 한다.

“현재 배달노동자들이 속한 산업 구조를 봐야 한다. 배달 한 건당 정해진 단가가 있다. 2000~3000원 정도다. 연료비·보험비용 빼고 최저임금 수준에 맞추려면 1시간에 최소 5건은 배달해야 한다. 제한속도, 신호 다 지키면서 일하면 1시간에 2건이 최대다. 최저임금도 못버는 건데 이러면 누가 배달일을 하겠나. 위험하게 일해야 돈을 버는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다. 그들에게 도로는 확률 높은 도박판과 같다. 판에 돈이 쌓여 있고 빨리 달려가면 쥘 수 있다.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다. 생활에 쪼들리고 돈이 궁해 이 판에 뛰어든 사람들이 안 달리고 버틸 수 있나. 도박에 빠진 사람도 문제지만 도박판을 짜고 만든 이들이 더 큰 문제 아닌가.”

-최근엔 배달노동자를 두고 ‘전과자가 하는 일, 질 안 좋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비하를 서슴지 않는다.

“배달노동 시장은 말 그대로 규제가 없는 시장이기 때문에 사람을 거를 수 없다. 믿을 만한 배달노동자를 선별하고 싶다면 ‘규제’를 해야 한다. 라이더를 사용하는 플랫폼 사업자나 대행업체가 자격요건을 만들어서 라이더를 뽑아야 한다는 얘기다. 사업자 입장에선 꽤 귀찮은 절차다. 특히 플랫폼 사업자들이 반대한다. 구호는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는다’이다.”

-혁신 담론을 어떻게 보나.

“타다 사업자에 대한 검찰 기소 이후 혁신론자들이 일제히 나서 정부가 혁신을 죽였다고 한탄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타다는 IT 혁신기업이 아니라 운송사업자다. 타다 플랫폼을 만들어서 택시시장에 들어가 파이를 나눠먹는겠다는 건데 그게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인가. 물론 택시 서비스 엉망이다. 그런데 그건 기존 택시 노동환경이 최악이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타다의 혁신과는 별개 문제다. 타다 기소를 두고 코리아스타트업 포럼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구글에서 양자 컴퓨터를 개발하는데 우리 스타트업은 정부, 국회, 검찰의 압박 속에 죽어간다’고 하더라. 타다와 양자 컴퓨터가 무슨 관계가 있나. 양자 컴퓨터는 혁신이다. 그런데 돈 받고 사람 태워서 보내는 타다 서비스가 혁신인가. 시행착오 겪으면서 만든 공공서비스를 가짜 혁신 내세워 무너뜨리는 것밖에 안 된다. 국내 플랫폼 사업의 혁신 대부분은 이미지를 팔아 만든 허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혁신은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단어다.

“이 시대의 자본가는 마초 성향이 두드러진 초기 자본가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청바지에 흰티를 입고 나타나서는 기존 질서를 모두 적폐로 규정한다. 세련된 혁명가 행세를 하는 것이다. 기존 질서가 100% 옳은 건 아니지만 그 안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 만든 노동법과 사회안전망이 담겨 있다. 이 모든 것을 적폐라며 없애는 건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최근에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대정부 권고안을 내놨다.

“수준이 낮아서 놀랐다. 추상적인 개념을 나열해 놓은 대학 리포트 같다. 그 중에서 백미는 ‘인재론’이다. 위원회가 ‘4차산업혁명시대 인재는 이전 노동자와 달리 생산수단을 스스로 소유하고 있고 시간이 아닌 성과로 평가받는다’고 정의했다. 주52시간 제도를 폐지해 노동시간을 늘리고 성과급 주자는 거다. 그러면 배달 라이더야말로 최고의 인재라고 볼 수 있다. 생산수단인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고 건당 성과로 돈을 받으니 인재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한다. 위원장에게 ‘라이더가 4산업혁명시대 인재 맞나’라고 되묻고 싶다.”

-배달노동이 유행처럼 번진다. 퇴근 후에 운동 삼아 자전거 타고 배달을 해보라는 라이더 모집 광고도 나왔다.

“최근에 플랫폼 업체마다 더 ‘라이트’한 배달서비스를 론칭하고 있다. 자전거나 퀵보드 타고 누구나 쉽게 원하는 시간에 배달해서 돈 벌라는 취지다. 업체는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 배달수요를 해소해서 좋고 돈이 필요한 직장인은 투잡 개념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어 좋다. 이렇게 보면 참 좋은 서비스 같지만 자세히 보면 큰 문제가 있다. 이런 구조가 정착되면 일과 여가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퇴근하고 자연스럽게 노동을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거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인류가 얼마나 오랫동안 싸워왔나. 힘들게 얻어낸 8시간 노동의 원칙이 깨질 수 있다. 무한노동 시대가 열리는 건데 이걸 ‘내 직업은 하나가 아니다. 운동 삼아 배달하라’는 식으로 포장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내는 야만적이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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