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장관이란 ‘독배’는 결국 친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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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직계 중 직계인 전해철 의원이 최적임자로 지목돼

“4선급 재선 의원.”

한 민주당 의원 측이 민주당 전해철 의원을 두고 한 말이다. 전 의원은 민주당에서 친문 직계 중 직계이기 때문에 비록 재선에 불과하지만, 민주당에서는 중진급이라는 비유다. 전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 이후 차기 법무부 장관의 유력한 후보자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10월 18일 국회에서 열리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시작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10월 18일 국회에서 열리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시작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을 일컫는 ‘삼철’(전해철 의원·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삼철’이라는 용어는 영광의 배지가 아니라, 주로 친문(親文)을 비판할 때 사용됐다. 때문에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문 대통령은 주위의 비판을 의식해 ‘삼철 배제’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당 안팎에서도 법무장관은 결국 전해철

하지만 대통령 임기 절반을 돌아선 후반기를 앞두고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80%대까지 이르렀던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40%대로 내려왔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 외국에서 떠돌던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는 내년 총선을 준비해야 하는 민주연구원장이라는 중요한 역할이 이미 맡겨졌다. 이제 전해철 의원도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아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서로 하고 싶어하던 법무부 장관직도 이제는 할 사람이 없어졌다. 청와대에서는 검찰개혁에 정치인이 적격이라고 보고 있지만, 정치인들에게는 내년 총선에서 금배지를 다는 것이 우선이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금배지를 단 후에는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장관직도 수행할 수 있는데, 지금 총선을 눈앞에 두고 갈 사람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결국 ‘삼철’ 중 한 명인 전해철 의원이 법무부 장관을 떠맡아야 할 ‘운명’이 됐다. 법무부 장관 지명이 유력하다는 일간지의 보도가 나온 10월 18일 국회 정무위에서 전 의원은 기자들에게 “국회와 당에서 할 일이 많이 있다”면서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 고민해서 결정하겠다는 게 내 심정이고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을 맡아야 할 ‘운명’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가 나중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문 대통령은 자신이 맡게 된 역할을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이 단어는 문 대통령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전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안산시 상록구갑에서 3선에 도전할 예정이었다. 친문 직계의 한 의원은 “3선 의원이 되면 할 일이 많다”면서 “원내대표도 할 수 있고, 상임위원장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전 의원이 국회와 당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겠지만, 지금 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 의원만한 적임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할 지금, 법무부 장관직이라는 ‘독배’를 마셔야 하는 운명이 됐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당 내부에서도 많은 의원들이 전 의원에게 ‘지금 적임자는 당신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해철 의원이 2007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문재인 대통령(당시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해철 의원이 2007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문재인 대통령(당시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데다 국회 법사위에서 활동을 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 측은 “일단 전 의원이 사법연수원 기수로는 윤석열 검찰총장보다 윗기수이기 때문에 지금 검찰을 개혁해야 하는 시기에는 최고 적임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연수원 19기이고, 윤 총장은 23기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금은 다른 사람을 찾아도 전 의원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지금 국회 예결위 민주당 간사로 활약하고 있다. 국정감사가 끝난 후 국회의 최우선 과제는 내년 예산안 통과다. 전 의원은 예산국회에서 공교롭게도 민주당에서 주요 역할을 떠맡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빠른 시기에 법무부 장관으로 가야 한다면 민주당 간사직을 우선 내려놓아야 하고, 당에서도 총선 전 알짜배기 보직인 예결위 간사직을 서로 맡으려고 할 것인데 그런 조짐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예결위 간사 마치고 장관 지명 가능성

전 의원 쪽에서도 ‘아직은 멀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 직계의 한 의원은 “예산안은 12월 초 국회에서 통과되게 돼 있는 만큼 예결위 간사직을 내려놓을 만큼 급박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당·정·청 사정에 밝은 다른 의원은 “전 의원의 입장은 ‘다른 적임자를 찾아보고 정 안 되면 맡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에서는 지금은 전 의원 이외의 다른 적임자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전 의원이 맡아야 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우리당에서는 특히 꽃길을 걷다가는 명분을 잃기 때문에 가시밭길을 가야 하는 경우가 돼버린다”고 말했다.

친노친문들은 가시밭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나서게 됐고, 조국 전 장관 역시 법무부 장관이라는 운명을 떠안았다. 조 전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후 반드시 대학교수로 복귀하고 싶다는 문자를 일부 기자에게 보내기도 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사실상 당의 강권으로 2018년 도지사직에 도전했다. 김 지사는 2011년 김해을 보궐선거에서도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에게 양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억지로 떠맡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다. 조국 전 장관이 대표적인 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2006년 서울시장 출마도 선거 패배로 빛이 바랬다.

친노친문에게는 ‘떠맡는’ 운명이 아니라 ‘버리는’ 운명도 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원장직을 맡으면서 서울 구로에 출마해 배지를 달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백원우 전 의원도 지역구에서 불출마 의사를 표시하고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한 친문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와 다른 점을 강조했다면 그것은 ‘시대적 소명’이었다”면서 “그 밑에서 정치를 배웠기 때문에 결국 소명이라는 가시밭길을 선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TK) 같은 민주당의 험지 출마로 가시밭길을 자처하고 나선 정치인도 있다. 경북 경산지역에 전상헌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대변인이 출사표를 던졌다. 전 대변인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박남춘 인천시장의 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다. 허소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은 대구 달서을에 출마할 예정이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 파견나갔던 구윤철 기재부 제2차관도 대구지역 출마가 계속 거론되고 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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