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없는 항공’ 체질 개선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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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비용항공사 대체노선 찾기 발등의 불… 3·4분기 실적 암담

2019년 항공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일본 노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저비용항공사(LCC) 업계에 ‘일본 불매’ 강풍이 불어닥쳤다. 당장 대체노선을 찾는 것도 여의치 않다. 여기에 과잉경쟁 구도, 자연재해로 인한 수요 감소 등 악재가 겹치면서 항공사들은 올 상반기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어야만 했다. 상반기 성적에는 일본 불매로 인한 일본 수요 급감이 반영되지 않은 점, 당분간 중국 신규 취항에 제동이 걸린 상황 등을 감안할 때 국적 항공사들의 3·4분기 실적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국제공항의 한 국내 항공사 카운터가 일본행 항공기 탑승 수속시간에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의 한 국내 항공사 카운터가 일본행 항공기 탑승 수속시간에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네이버 일본여행 동호회 카페 폐쇄

일본을 방문하는 여행객의 추세는 8월 들어서 본격적으로 꺾이고 있다. ‘노 재팬’이 시작된 지난 7월 신규예약이 대폭 줄어든 결과다. 9월이 되면 여행객 감소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8월 21일 일본정부관광국(JNTO)이 발표한 방일 외국인 여행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56만17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6% 감소했다. 국토교통부 일본노선 주간 항공운송 실적에 따르면 8월 첫 주(4~10일) 일본 노선 탑승률은 71.5%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포인트 감소한 수치를 보였다.

국적 항공사들 가운데서도 일본 노선의 비중이 높았던 저비용항공사들은 시름이 깊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국내 저비용항공사 5곳(진에어·제주항공·에어부산·티웨이항공·이스타항공)의 국제노선 가운데 일본 노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대였다. 나머지 한 곳인 에어서울은 국제선 노선 28개 가운데 11개가 일본 노선이다. 국제선 중 일본 노선이 65%를 넘어서고 있다.

그간 국내 저비용항공사의 성장은 국내 일본 여행객 성장과 함께해왔다. 실제 저비용항공사들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 세일즈에 나서기 시작한 무렵인 2014년을 기점으로 방일 한국인 관광객 수는 급격히 늘었다. 2014년 276만에서 2016년 509만, 2018년 약 753만명으로 치솟았다. 같은 기간 저비용항공사가 국제 여객 수송에서 담당하는 수송분담률 역시 약 12%에서 30%로 2배 이상 늘었다. FSC(풀서비스항공사)에 비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은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본 여행객들의 급증을 불러왔다.

과거에는 주요 대도시에서 대도시를 잇는 항공노선들이 주를 이뤘지만 근래 수년간 LCC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무안, 청주 등 지방 소규모 공항에서 일본의 사이타마현, 구마모토현 등 중소도시를 잇는 노선이 대폭 늘어나기 시작했다. ‘저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손쉽게 신규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방법이 일본행 소도시 노선을 늘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의 경우 2017년부터 지난 6월까지 신규취항한 노선 총 34개 가운데 한·일 지방 공항 발착 노선(대구-가고시마 등)은 8개로 전체의 24%를 차지했다. 저비용항공사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저비용항공업계 내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본 소도시 위주 취항에 집중해왔다”며 “일본 일부 소도시 공항은 이용객 중 한국인 비율이 절반을 넘을 만큼 적극적으로 일본행 노선을 확장했다”고 말했다.

일본 여행객이 주로 ‘혼여족’, ‘자유여행족’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 최대 일본 여행 커뮤니티였던 ‘네일동(네이버 일본여행 동호회)’ 카페의 폐쇄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불매운동’에 불이 붙던 지난 7월 17일 네일동은 무기한 폐쇄를 선언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간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 등으로 인한 일본 불매운동은 수차례 있었지만 이처럼 민간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일본 여행을 보이콧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현재 일본 여행객 수가 수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격히 늘어난 만큼 ‘일본 안가기’ 운동이 갖는 파급력이 강력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 없는 항공’ 체질 개선될까

중국도 신규취항 및 증편 신청 규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항공사들은 일본행 비행기를 적게 띄우고 운휴 비행기를 동남아 등 신규노선으로 대거 돌리고 있지만 반등의 기회는 요원해 보인다.

8월 22일 현재 FSC 항공사를 비롯한 국적 항공사 8곳 모두 일본 노선을 대폭 줄이고 동남아 등지로 신규노선 취항, 증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8월 21일 제주항공은 인천~코타키나발루, 마카오, 가오슝 등 노선을 주 1회에서 주 4회까지 증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앞서 인천~도쿄, 나고야 등 일본행 감편으로 인한 유휴 항공편을 동남아 쪽으로 돌린 것이다. 제주항공에 따르면 10월 중 일본행 여행객 예약자 수는 약 6만5000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0% 하락했다. 대한항공 역시 8월 20일 일본행 핵심 노선 중 하나인 부산~오사카 노선(주 14회) 운항 전면중단을 발표하면서 신규취항 및 증편을 예고했다. 일본행 감축으로 인한 추가 노선은 클락, 다낭, 치앙마이 등 동남아 지역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아직까지는 한두 달 정도 소폭 조정을 진행 중인 노선들이 더 많지만, ‘불매운동’이 장기화될 경우 일본 중심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 노선 다양화 및 유동성을 확보해가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단기간에 ‘일본 없는 항공’으로의 체질 개선이 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일본 여행으로 인해 줄어든 수요가 그대로 다른 국가로의 여행 수요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항공 자유협약이 없는 국가는 신규취항을 할 때도 제약이 많고 인바운드(들어오는 항공기의 탑승객) 수요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증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진에어는 다른 항공사들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지난해 8월 조현민 전 부사장의 국적 문제로 인해 부과된 국토부 신규취항 금지 등 규제가 기약 없이 유지되면서 본격적으로 신규취항에 팔을 걷어붙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재는 또 겹쳤다.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었던 중국행에도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오는 10월 10일까지 신규취항 및 증편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항공노선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이에 장비 여력이 있는 항공사는 기존의 중국 취항 노선에서 비행기 기종을 더 큰 기종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좌석을 늘리는 등 우회로를 찾고 있지만, 중국 측이 규제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는 만큼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사실 7월 일본 여행 보이콧 이전부터도 과잉경쟁으로 인해 10만원 이하 항공권이 등장하는 등 수익성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항공업계 과당경쟁으로 인해 퍼스트클래스 구조조정 등을 통해 수익구조 개선을 고민해왔다”며 “상황을 봐야겠지만 장기적으로 항공업계의 체질 개선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원 산업부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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