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아쉬움, 아시안게임 16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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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2위로 오른 남자축구의 ‘대장정’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무책임한 운영 등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취재진들은 긴 여정에 예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우리 기자들을 버티게 한 것은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9월 1일 남자축구 결승전이 열린 인도네시아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경기 후 시상식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 이날 한국은 일본을 2-1로 꺾고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했다. / 치비농 | 윤은용 기자

9월 1일 남자축구 결승전이 열린 인도네시아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경기 후 시상식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 이날 한국은 일본을 2-1로 꺾고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했다. / 치비농 | 윤은용 기자

총면적 190만4569㎦. 인구수 2억6679만5000명. 대한민국보다 19배 크고 인구는 5배 많은 동남아시아 최대 섬나라 인도네시아. 이곳에서 지난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16일간 아시아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Energy of Asia(아시아의 힘)’. 아시아가 가진 막강한 힘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인도네시아의 야심찬 포부는 이번 대회를 통해 확실하게 전세계인들에게 각인됐다. 놀랍고 감탄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짜증을 감춰야 했던 22박24일간의 아시안게임 취재기를 풀어본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 도착한 것은 지난 8월 12일이었다. 개막은 18일이었지만, 남자축구 일정은 15일부터 시작됐다. 사진부 기자와 함께 다른 기자들보다 먼저 ‘선발대’로 떠났다. 무덥고 습한 날씨와 숨막히는 교통체증. 한국에서 접했던 인도네시아의 ‘단편적인’ 정보들은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 바로 사라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던 때였기에 적도에 가까운 인도네시아는 한국보다 더 심한 폭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막상 도착한 자카르타 현지 날씨는 예상을 정확히 비켜갔다. 자카르타 현지시간으로 오후 4시, 온도는 31도에 불과했다. 공항에 배치돼 있는 자원봉사자 한 명이 매우 덥다고 잔뜩 겁을 줬던 터였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공항을 나섰지만 바깥 날씨는 한국보다 선선했다. 숙소에 도착한 저녁 무렵에는 바람까지 세게 불어 춥다는 느낌까지 줬다. 습도도 그리 높지 않았다.

남자축구 조별리그가 진행된 반둥도 마찬가지였다. 자카르타에 도착한 다음날 곧바로 반둥으로 이동해 20일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그런데 그곳은 자카르타보다 더 기온이 낮아 오히려 쌀쌀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8월 17일 말레이시아에 1-2로 패한 ‘반둥 쇼크’는 기자의 업무량을 늘려놓았지만 그래도 기분 나쁜 출발은 아니었다.

그러나 8월 21일 자카르타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지낼 만하다’는 생각은 산산조각 났다. 남자축구 일정이 ‘반둥 쇼크’ 이후 꼬일 대로 꼬인 탓이었다. 남자축구 대표팀은 말레이시아에 패해 조 2위로 통과했다. 그 바람에 16강, 8강, 4강전이 전부 다른 곳에서 열리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장소마다 다른 날씨는 기자의 체력도, 정신력도 고갈시켰다.

그러나 덕분에 재미있는 여러 에피소드들도 생겨났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종목이었던 남자축구는 곳곳이 취잿거리였다.

한국 남자 3대 3 농구 대표팀의 김낙현이 8월 26일 중국과의 결승이 끝난 뒤 팬과 사진을 찍고 있다. / 자카르타 | 윤은용 기자

한국 남자 3대 3 농구 대표팀의 김낙현이 8월 26일 중국과의 결승이 끝난 뒤 팬과 사진을 찍고 있다. / 자카르타 | 윤은용 기자

조별리그 일정이 모두 끝나고 이란과의 16강전이 열린 치카랑에서 있었던 일이다. 8월 22일, 이란전을 앞두고 훈련을 하는 대표팀 취재를 하기 위해 치카랑의 한 국제학교 내 운동장을 찾았다. 도착해서 상태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땅, 군데군데 파인 잔디 등 훈련장소로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 한국 대표팀에 주어졌다. 거기에 현지 교민들 300여명이 모여들어 도저히 훈련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 학교 교장이 온 동네에 “한국 축구대표팀이 온다”는 소문을 퍼트린 탓이었다. 그날 대표팀은 교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훈련장으로 들어섰지만, 끝내 훈련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운동장을 떠나야 했다. 다만 떠나기 전 교민들과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응원에 대한 보답은 확실하게 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김학범 감독의 눈물을 볼 수 있었다. 힘겹게 4-3 승리를 거둔 뒤, 김 감독은 인터뷰 도중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너무 힘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애연가로 소문이 난 김 감독은 인터뷰 후 담배 한 개비를 물고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결승까지 모두 끝나고 나서야 “선수들의 눈에서 절실함이 사라진 것을 봤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을 혼냈다. 다시 절실함을 갖게 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서였을까. 일본과 결승전에서 황희찬이 한국의 두 번째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는 사이 손흥민과 부둥켜안는 김 감독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다른 아시안게임 종목 취재에서도 안타까움과 환호를 골고루 맛볼 수 있었다. 남자 3대 3 농구 결승에서는 중국을 상대하는 한국 선수들이 연장전 끝에 분패한 뒤 한동안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선수들은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하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 후 주인공은 중국이 아닌 한국 선수들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 선수들과 사진 한 장을 찍고 싶다며 몰려들었다.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의 열악함도 엿봤다. 소속을 알 수 없는 한 여자직원이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들에게 “이게 점심이다”라며 여러 취재진이 있는 앞에서 식빵 세 덩이를 던지는 모습은 잊기 힘든 장면이다.

‘한류’ 덕분에 현지인들의 환대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무책임한 운영 등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취재진들은 긴 여정에 예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우리 기자들을 버티게 한 것은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이곳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나 ‘한류’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문화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자원봉사자인 파멜라 아멜리아(23)는 “이곳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어지간한 것은 다 챙겨본다. EXO, 블랙핑크 같은 한국 아이돌 그룹도 인기가 많다. 그래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며 한류의 인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폐회식이 열리던 9월 2일은 취재진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하루 전이기도 했다. 폐회식 티켓을 얻지 못해 한 한국음식점에서 밥을 먹으며 TV로 중계를 봤다. 폐회식에 한국 아이돌 그룹인 아이콘이 나와 ‘사랑을 했다’를 부르자 식당 안에 있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다같이 노래를 불렀다.

언제 또다시 인도네시아를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자카르타는 2032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만약 자카르타에서 올림픽이 유치된다면 그때도 현장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윤은용 스포츠경향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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