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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튼 민주당 새싹, 뿌리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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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했다.
그동안 불모지였던 서울 강남 3구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냈다.
강남 진입에 성공한 민주당은 보수정당의  ‘강남불패’ 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인가.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이 지방선거 운동 마지막 날인 6월 12일 서울 강남구에서 정순균 강남구청장 당선인과 함께 유세를 하고 있다. / 정순균 후보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이 지방선거 운동 마지막 날인 6월 12일 서울 강남구에서 정순균 강남구청장 당선인과 함께 유세를 하고 있다. / 정순균 후보 제공

23년,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강남구청장이 탄생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송파구청장 자리는 18년 만에 탈환했다. 송파을 보궐선거에서는 최재성 민주당 후보가 54.4%의 지지를 얻어 배현진 자유한국당 후보(29.6%)를 24.8%포인트 앞섰다. 보수당의 ‘강남불패’가 깨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일각에서는 2년 뒤 총선까지 낙관하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강남3구의 민주당 지지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먼저 보수정당에 대한 실망감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과 그 이후 보수정당이 보여준 태도가 1차 요인으로 보인다. 국정농단 이후에도 보수정당은 제대로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홍준표 대표의 막말만 끊이지 않고 논란이 됐다. 송파구에 거주하는 김명자씨(71)는 “자유한국당은 인격이 떨어진다”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서초구에 거주하고 있는 50대 초반 서동규씨는 “자유한국당이 차라리 경제문제를 들고 나왔으면 괜찮았을텐데 상대 후보의 개인사나 불륜을 언급하고 홍준표 대표는 막말만 했다”며 “청와대와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국가 대운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는데 야당의 이런 모습을 보면 환멸감이 든다”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 강남에 튼 민주당 새싹, 뿌리내릴 수 있을까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강남3구는 고학력자와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자신의 생각과 이해관계에 맞게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라며 “지금까지는 이해관계 때문에 보수정당에 투표했을지 모르겠지만 최근 보수정당이 보여준 모습이 자신들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 ‘이해관계’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강남구 토박이인 김종현씨(42·가명)는 “여전히 강남쪽 키포인트는 부동산이다. 오래된 아파트가 상당히 많다. 주차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손가락만한 바퀴벌레도 자주 나온다”며  “재건축 이야기가 계속 나왔지만 보수구청장 20년 동안 변한 게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보수구청장 20년 동안 변한 게 없다”

정순균 강남구청장 당선자도 이런 점을 공략했다. 정 당선자는 ‘사유재산권 보호’를 강조하며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대치동 은마아파트, 개포동 구룡마을 등에 재건축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보수정당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던 재건축 이슈를 가져온 것이다. 김씨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재건축을 해줬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성욱 민주당 강남갑지역위원장은 “보수가 뭐냐. 나라를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게 보수다. 하지만 보수정당은 강남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못 했다. 신연희 전 구청장은 서울시 행정에 반대만 했지 강남구에 실질적인 이익을 주지 못했다”며 “그래서 우리는 주민들에게 감정적 투표가 아닌, 이익을 위한 전략적 투표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당선인이 지난 5월 31일 오후 송파구 장지역 일대에서 유세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송파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당선인이 지난 5월 31일 오후 송파구 장지역 일대에서 유세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수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민주당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당장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서동규씨는 “주변을 보면 민주당이 좋아서 찍는다기보다 지난 10년 동안 보수정당이 너무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안 찍어준다’는 정서가 강하다”고 말했다. 강남구에서 오랫동안 지역활동을 해온 이의필씨(55)는 “갈 데 없는 표들이 민주당으로 상당수 갔다”고 말했다.

이는 수치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정순균 강남구청장 당선인이 획득한 표(12만 928표·46.1%)가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이 강남구에서 획득한 표(10만7743표·40.4%)보다 많다. 박성수 송파구청장 당선인은 19만5055표(57.0%)를 받은 데 비해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은 송파구에서 17만1592표(49.1%)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반면 서초구에서는 이정근 낙선자(9만 2154표·41.1%)와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의 서초구 득표(9만 6452표·42.5%)에 차이가 거의 없다.

즉 마음에 들지 않았던 구청장은 바꿔보겠지만, 민주당 소속 서울시장은 원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일정 수준으로 있다는 의미다. 실제 다른 곳에 비해 강남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의 지지연설은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듯 보였다. 6월 12일 박 당선인이 신사역 인근에 등장하자 한 시민은 “뭘 세 번이나 하려고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정순균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보수 지지층 일부는 투표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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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안일원 대표는 “보통 강남3구는 평균보다 투표율이 상당히 높은 곳이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전에 비해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며 “보수정당 지지자 일부는 민주당으로 돌아섰지만 지지자 일부는 투표를 포기했다는 의미다. 지역색이 보수에서 진보로 돌아섰다고 보기는 이르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번 6·13 지방선거 전국 투표율은 60.2% 인 데 비해 강남구 투표율은 58.5%를 기록했다. 반면 19대 대선의 경우 전국 투표율은 77.2%, 강남구 투표율은 78.3%를 기록했다. 또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강남구 투표율(57.8%)은 전국 투표율(56.8%)보다 높았다.

강남3구 분위기를 보면 민주당이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강남구에 거주하는 박소연씨(32)는 “목욕탕에 가면 동네 민심을 알 수 있다”며 “목욕탕 휴게실에는 종편채널이 하루종일 틀어져 있고 주로 나오는 말이 ‘누가 되든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 ‘홍준표 좋아서 찍나. 문재인 싫어서 찍지’다. 한 번에 보수색이 옅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의필씨는 “4년 전만 해도 민주당 지지한다고 하면 종북, 빨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해도 입 밖으로는 꺼내기 힘들다.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게 부끄러운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씨는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간 것은 아니다. 조용히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샤이보수’를 말하는 것이다.

송파을에 거주하는 최지효씨(20)는 생애 첫 투표를 민주당에 행사했다. 최씨는 “개인적으로는 바른미래당이 보수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당 통합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최씨는 “아버지는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자유한국당을 지지한다. 주변을 보면 이런 집이 많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하는 김종현씨도 “민주당의 정치 스타일은 여전히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뭐든지 규제하려고 한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그는 부동산 정책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면서 “한국만의 부동산 문화가 있다. 시장경제 흐름에 맡기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강남3구 분위기를 하나로 묶어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보수색이 짙은 데 비해 송파구는 이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민주당의 싹이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송파구는 8년 전부터 변화하기 시작해 일부 아파트 촌을 제외하고는 민주당 지지가 상당하다”며 “송파구에서 민주당은 상승세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6월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한국당 지역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6월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한국당 지역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수 전체가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

실제 역대 송파구청장 선거를 보면 2010년에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단일화에 실패해 한나라당 후보가 48.5%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2014년에는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지만 민주당 후보와의 격차는 3만표(9.74%)에 불과했다. 당시 강남구는 7만표(25.87%), 서초구는 4만표 정도(17.02%)의 격차를 보였다. 송파구는 지난 대선에서도 강남3구 중 민주당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보수정당이 지금처럼 계속 ‘죽을 쑬’ 경우, 강남3구의 이런 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2014년 4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유한국당은 ‘도와 주이소’ ‘한 번만 살려 주이소’ 전략만 취하고 있다. 이번에도 ‘살아야 한다’ 유세단을 꾸렸다”며 “이런 방식은 유권자들에게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시사평론가는 서울시장 선거를 언급하며 “안철수 후보가 ‘박원순을 저지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은 완전히 틀렸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한 것이다”라며 “서울시민들은 박원순을 저지하기 원하지 않는다. 박원순을 넘어설 사람을 원한다. 이번 선거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의 선거는 끝났다”고 평가했다.

소종섭 정치평론가는 “이제는 자유한국당이 어떻게 거듭냐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라고 통칭되는 세력 전체가 어떻게 거듭날 것인지의 문제다”라며 “텃밭이라 여겨지던 지역에서도 패배한 보수정당들은 해체와 이합집산, 그리고 새로운 집단을 꾸리는 과정을 밟아나가야 한다. 보수의 정체성을 새로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난히 두드러지긴 했지만 더 이상 ‘텃밭’의 개념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안일원 대표는 “강남의 전현희, 대구의 김부겸, 순천의 이정현을 볼 때 영원한 난공불락은 없다”며 “한국 사회가 진보, 보수 개념을 떠나서 인물 경쟁력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소 정치평론가 역시 “보수정당에 대한 실망이 곧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간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며 “민주당이 이번에는 압승을 했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다음 총선에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번 선거에서 봤듯이 이제는 어디의 ‘텃밭’ ‘막대기만 꽂으면 된다’는 식의 선거는 끝났다”고 말했다.

결국 보수당의 ‘강남불패’ 신화를 계속 깨뜨릴 수 있을지 여부는 민주당에 달렸다. 주민들의 상식과 이해관계를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현씨는 “구청장도 당 소속이다 보니 당에서 요구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보다는 구민들을 위해 활동한다면 민주당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의필씨는 “예전에는 강남3구 사람들이 세금문제에 상당히 민감했지만 요즘에는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이 애국자’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너그러워졌다”면서 “민주당이 이런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세금 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다면 앞으로도 강남3구에서는 문제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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