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실망만 하다 끝내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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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보다 약한 팀은 없어… “대∼한민국” 힘껏 외치며 즐기자

전세계 축구팬들의 최대 축제인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마침내 시작됐다. 33일간의 대장정 동안 축구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굴 수많은 명승부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 팬들도 하루 빨리 한국의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18일 오후 9시 스웨덴, 24일 오전 0시 멕시코, 27일 오후 11시 독일과 차례대로 조별리그 경기를 갖는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을 맞는 한국 팬들의 시선에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의문부호가 붙었기 때문이다.

6월 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대 볼리비아 평가전에서 0대0으로 경기가 끝난 뒤 신태용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 오스트리아=연합뉴스

6월 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대 볼리비아 평가전에서 0대0으로 경기가 끝난 뒤 신태용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 오스트리아=연합뉴스

전력 숨기기냐, 준비 부족이냐

신태용 대표팀 감독은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은 뒤 월드컵에서 보일 베스트 11 및 전술에 대해 시종일관 ‘비밀’을 유지해 왔다. ‘가장 약한 전력인데 정보마저 누출되면 어떡하나’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기엔 대표팀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너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나아진 부분이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당장 지난 7일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을 복기해보자. 이날 한국은 볼리비아를 상대로 점유율(60-40)과 슈팅(13-2) 등 눈에 보이는 객관적 지표에서는 확실히 앞섰다. 그러나 결과는 0-0이었다. 그렇다고 볼리비아가 강팀인 것은 더욱이 아니었다. 월드컵 남미예선에서 10팀 중 9위에 그쳐 탈락했을 뿐 아니라, 한국전에는 주전 5명만 내보내 실질적인 전력은 1.5군이었다. 이런 볼리비아를 상대로 한국은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김신욱(전북 현대)이 몇 차례 높이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골과는 거리가 있었고, 황희찬(잘츠부르크)과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역시 소득 없는 돌파만 반복했다. 적어도 볼리비아전에서 한국은 신 감독이 그토록 강조했던 조직력 대신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볼리비아전에 앞서 치른 온두라스전(2-0 승)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1-3 패)도 전술의 완성도는 떨어졌다.

6월 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대 볼리비아의 평가전에서 정우영이 볼리비아 선수와 공중볼을 다투다 부딪힌 뒤 괴로워하고 있다. / 오스트리아=연합뉴스

6월 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대 볼리비아의 평가전에서 정우영이 볼리비아 선수와 공중볼을 다투다 부딪힌 뒤 괴로워하고 있다. / 오스트리아=연합뉴스

특히 볼리비아전에서 신 감독은 김신욱을 먼저 선발로 내세우고 주전 공격수 손흥민(토트넘)을 선발에서 제외했다가 후반에 교체 투입했다. 그리고 경기 후 이에 대해 “트릭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의 전력을 분석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F조 경쟁국 전력분석원들에게 정보를 내주지 않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이후 세네갈과의 비공개 평가전에서 0-2로 패했다. 이날 경기는 비공개라고는 했지만, 영국 언론에서 실시간 문자중계가 되는 등 보안에 허술함을 드러냈다. 여기에 세네갈이 스웨덴과 영상을 공유하기로 했다는 소문도 신 감독에게 들어왔다. 신 감독은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나 준비한 것들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기본적인 세트피스만 실험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평가전은 실전이 아닌, 월드컵으로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고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치른 여파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축구만의 색깔이나 전술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숨기는 게 아니라 준비가 부족해 보여줄 것도 없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신 감독과 대표팀을 우려의 시선으로만 바라봤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약간의 ‘변명’을 준비했다. 첫째는 앞서 말했던 ‘비밀’이다. 냉정하게 얘기해 한국의 조별리그 통과 가능성은 극히 낮다. 모든 외국 매체들이 한국의 16강 진출을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예 최하위로 분류하기까지 한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김진수·김민재(전북 현대), 권창훈(디종),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 등 주축 선수들을 부상으로 대거 잃었다. 기존 선수들이 다 있었어도 최약체로 분류되던 판국에 이들이 빠졌으니 그 전력이 어떨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6월 13일(현지시간) 베이스캠프 훈련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스파르탁 스타디움에서 훈련하고 있다. 손흥민과 황희찬이 공을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 / 상트페테르부르크=연합뉴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6월 13일(현지시간) 베이스캠프 훈련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스파르탁 스타디움에서 훈련하고 있다. 손흥민과 황희찬이 공을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 / 상트페테르부르크=연합뉴스

신감독과 대표팀을 위한 변명

모두가 한국을 ‘1승의 제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배짱 좋게 준비과정을 다 드러내 놓는 것은 자살행위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은 정보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말인데, 이를 살짝 뒤집으면 적에게 내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승리 확률도 올라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신 감독의 생각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만약 신 감독의 생각대로 되지 않고 실망스러운 경기력만 보여주고 월드컵을 끝낸다면 그때 가서 책임을 물어도 된다. 신 감독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스타일의 지도자가 아니다.

둘째는 선수들의 ‘각오’다.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일찌감치 나쁜 결과를 예상하는 선수는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주장인 기성용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이 끝난 뒤 선수들을 소집해 장시간 미팅을 가진 후 취재진에게 “우리에겐 한국 축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같은 결과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한 것은 월드컵에 대한 각오가 얼마나 남다른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볼리비아전에서 불거진 손흥민과 정우영(빗셀 고베)의 불화설도 결국은 해프닝이었다. 당시 볼리비아전이 끝난 후 마치 싸우는 듯한 모습이 방송카메라에 잡혀 구설에 올랐는데, 손흥민은 다음날 “난 팀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정우영 역시 “왜 그런 논란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고 어리둥절해 했다. 단순한 립서비스인 줄 알았지만, 손흥민이 인터뷰가 끝난 뒤 정우영을 향해 “우영이 형, 우리 싸울까”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이처럼 월드컵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분위기 역시 나쁘지 않다.

F조에는 한국을 포함해 독일, 멕시코, 스웨덴이 속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결과는 독일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고, 조 2위를 두고 멕시코와 스웨덴이 다툴 가능성이 높은데 멕시코가 승산이 더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최근 약간의 ‘변수’가 생겼다.

멕시코는 초비상이 걸렸다. 주전 중앙수비수 2명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네스트로 아라우호(산토스 라구나)에 이어 지난 13일 디에고 레예스(FC 포르투)라는 걸출한 수비자원이 또 부상 때문에 월드컵 출전이 불발됐다. 아라우호는 무릎, 레예스는 햄스트링 부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주전 포백 중 건재한 선수는 오른쪽 풀백 미겔 라윤(세비야) 정도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3일 스코틀랜드와 평가전 이후 매춘부를 불러 파티를 벌인 사실이 알려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멕시코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악재만 쏟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에는 희소식이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6월 13일 오후(현지시간) 베이스캠프 훈련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스파르탁 스타디움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연합뉴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6월 13일 오후(현지시간) 베이스캠프 훈련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스파르탁 스타디움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연합뉴스

스웨덴은 멕시코와 비교해 이렇다 할 이탈자는 없다. 하지만 최근 평가전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불안함을 노출하고 있다. 올해 총 4번의 A매치를 가졌는데 2무2패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4경기 모두 공개 평가전으로, 한국은 이를 통해 스웨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입수했다. 스웨덴이 얼마나 한국에 대한 분석을 했느냐가 관건이지만, 신 감독의 생각대로 흘러갔다면 그리 많은 정보를 수집하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전 수비수 이탈로 멕시코 초비상

그렇다면 한국의 조별리그 전망은 어떠할까. 냉정하게 한국의 16강 진출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실낱 같더라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세계랭킹 1위인 독일과의 경기는 현실적으로 한국이 승리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승리보다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최강팀과 경기가 맨 마지막에 열린다는 점이 다행이다. 독일이 멕시코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2승을 챙기고 일찌감치 16강을 확정지은 뒤 한국과 일전을 치를 경우, 주축선수들의 체력관리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다.

스웨덴과의 첫 경기도 중요하지만 대표팀이 노려야 할 것은 멕시코전이다. 멕시코팀에 부상으로 인한 이탈자가 생기면서 오히려 멕시코전이 승부의 열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축 수비수인 아라우호와 레예스가 부상으로 빠진 것은 타격이 꽤 크다. 아라우호가 188㎝, 레예스가 189㎝로 두 선수 모두 키가 큰데, 이들 두 명이 사라지면서 한국이 공략할 요소가 생겼다. 특히 ‘조커’로 분류되는 장신 공격수 김신욱(197.5㎝)을 십분 활용해 측면에서 올리는 크로스나 세트피스 상황에서 한국이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비수들이 김신욱에게 시선이 집중된다면 손흥민이나 이승우, 황희찬 같은 주축 공격수들의 활동반경도 더 높아질 수 있다.

과정이 좋을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스포츠 경기는 결과로 말한다. 대표팀이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은 분명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 시작도 안했는데 걱정만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지금은 ‘We the Reds!’라는 구호에 맞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응원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윤은용 스포츠경향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러시아 모스크바|황민국 스포츠경향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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