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호, 플랜 A·B 대신 플랜 C로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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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가 2018 러시아월드컵을 향해 첫 훈련에 나선 5월 21일 오후 경기도 파주트레이닝센터.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48)은 초췌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월드컵 출정식에서 “3전 전패라는 평가를 뒤집는 통쾌한 반란을 기대하라”던 그의 밝은 표정은 반나절 만에 사라졌다. 본격적인 월드컵 준비를 위해 점검한 선수들의 몸상태에 한숨이 절로 나온 탓이었다.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도 걱정이 컸다. 신 감독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꼭 필요한 선수가 줄줄이 부상으로 빠졌다”며 “이젠 부상이 겁난다”고 말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5월 21일 오후 파주 NFC에서 열린 훈련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2018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5월 21일 오후 파주 NFC에서 열린 훈련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김진수와 장현수도 아직 회복 중

신 감독이 답답한 속내를 여과없이 드러낸 것은 부상 악재가 그만큼 만만치 않다는 증거다. 신 감독은 일주일 전인 5월 14일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월드컵 본선에 참가할 후보군 28명(최종 선발 23명)을 선발했다. 그런데 정작 훈련장에 나타난 선수는 24명뿐이었다. 물 오른 득점감각에 해결사로 손꼽혔던 미드필더 권창훈(24·디종)이 아킬레스건 파열로 소집 전날 낙마했다. 소집된 27명의 선수 중 3명도 훈련할 상태가 아니었다. 왼쪽 풀백인 김진수(26·전북)와 중앙수비수 장현수(27·도쿄)는 부상 중이라 치료가 우선이었다. 무릎 부상으로 출정식에도 불참한 이근호(33·강원)는 아예 훈련장이 아닌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근호는 5월 19일 K리그 경남FC전에서 상대 수비수와 부딪쳐 무릎을 다쳤다. 당시 이근호는 하루이틀 휴식하면 훈련을 소화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표팀에선 빠르게 걷는 것조차 힘겨웠다. 결국 21일 경희의료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월드컵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앞서 중앙수비수 김민재(22·전북)와 베테랑 미드필더 염기훈(35·수원)이 부상으로 낙마한 가운데 대표팀에 부상이 또 발생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월드컵에서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한국 축구에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1위 한국은 조별리그 F조에서 16강을 다투는 독일(1위)과 멕시코(15위), 스웨덴(23위)보다 약세다. ‘캡틴’ 기성용(29·스완지시티)은 “월드컵에 꼭 필요한 선수들이 모두 다치니 주장으로 어깨에 짐이 하나씩 더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권창훈과 이근호의 잇단 부상은 한국 축구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공격력이 무뎌졌다는 의미라 더욱 뼈아프다. 본업이 미드필더인 권창훈은 대표팀에서 측면 날개로 공격의 활로를 책임졌다. 최근에는 득점 본능도 깨어나 프랑스 리그앙에서 페널티킥 없이 필드골로만 11골을 쏟아내 손흥민(26·토트넘)과 함께 월드컵 활약이 기대됐다. 이근호도 풍부한 활동량과 빠른 발을 겸비해 투톱과 측면을 오가며 팀에 활력소가 되는 옵션이었다. 경험적인 측면에서 대표팀 최고참이었고, 4년 전 브라질월드컵 첫 경기에서 귀중한 득점을 기록한 터라 대표팀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당초 신 감독은 플랜 A로 간주됐던 4-4-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4-3-3 혹은 3-4-3 포메이션 등 다채로운 공격 조합을 구상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해결사로 성장한 손흥민을 비롯해 황희찬(22·잘츠부르크)과 김신욱(30·전북), 이근호 4명의 공격수를 반 년간 숱한 시험대에 올린 결과물이다. 전방에 배치하는 공격수 숫자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공격력을 구축한 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권창훈과 이근호가 다치면서 대표팀에 남은 공격수는 단 3명이다. 신 감독은 “내가 생각했던 플랜 A와 플랜 B를 다 바꿔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창훈과 이근호 모두 공격수를 두 명 배치하는 투톱 전술에 꼭 필요한 선수들이라 더 고민이다. 투톱 자원은 손흥민과 황희찬만 남았다. 김신욱은 큰 키를 살린 타깃형 골잡이로 A매치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나지만 원톱이 더 어울린다. 김대길 경향신문 해설위원은 “단순히 공격수 숫자가 줄어든 것을 넘어 본선에서 쓸 수 있는 전술이 원톱으로 제한됐다”며 “본선 3경기에서 최상의 공격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태용호, 플랜 A·B 대신 플랜 C로 승부수

화끈한 공격보다 실리적 축구에 무게

마땅한 대안도 당장 눈에 띄지 않는다. 미드필더로 득점력이 뛰어난 구자철(29·아우크스부르크)은 시즌 막바지 부상에서 이제 막 회복한 상황이고, 이청용(30·크리스털 팰리스)도 소속팀에서 벤치에 앉은 시간이 더 길어 실전감각에 문제가 있다. 공격수를 추가 발탁하지 않은 신 감독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아직 A매치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문선민(26·인천)과 이승우(20·헬라스 베로나) 정도다. 신 감독은 “문선민과 이승우, 구자철이 같이 투톱 형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그러나 현실에 고개만 떨굴 수는 없다. 신 감독은 “각 국이 치열한 정보전을 펼치고 있어 공개할 수는 없지만 새 전술을 빠르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원래 준비한 전술이 화끈한 공격에 초점을 맞췄다면 새 전술은 실리적인 축구에 무게를 뒀다. 수비 숫자를 늘린 스리백에 기반해 다양한 포메이션으로 상대의 빈 틈을 노리는 형태다. 변화된 전술의 핵심 줄기는 영상을 통해 선수들에게 공유됐다. 월드컵 개막(6월 15일)까지 남은 시간은 20여일에 불과하지만 국내외에서 치르는 네 번의 평가전(5월 28일 온두라스·6월 1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6월 7일 볼리비아·6월 11일 세네갈)을 통해 갈고 닦는다면 월드컵 16강 진출도 불가능한 도전이 아니다. 손흥민은 “언제 한국 축구가 상황이 좋았던 적이 있느냐”며 “월드컵이 쉬운 무대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 선수들이 더 많은 힘을 낼 수 있도록 팬들도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황민국 스포츠경향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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