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경정책, 남쪽은 ‘봉쇄’ 북쪽은 ‘느슨’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미국의 국경에 대한 ‘내로남불’식 태도는 인접국에 각기 다른 애환을 안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그 피해는 이들 나라를 떠돌아야 할 이민자들의 몫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더 이상 ‘이민자의 나라’이길 거부했다. 출범 일주일 만에 특정 국가 국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8개월 뒤에는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인 ‘다카’(DACA)의 폐지를 결정했다. 재난을 피해 미국에 온 이민자들의 임시보호지위(TPS)도 잇따라 갱신을 중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3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설치된 멕시코 국경 장벽 시제품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샌디에이고|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3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설치된 멕시코 국경 장벽 시제품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샌디에이고|AP연합뉴스

미국의 국경도 달라졌다. 장벽 건설이 추진되고 군대가 배치된다. 그러나 모든 국경이 이렇게 바뀌는 건 아니다. 어느 쪽에 있는 국경이냐에 따라 변화의 성격은 사뭇 달라진다.

방문비자로 미국 거쳐 캐나다로 몰려

캐나다는 최근 미국에 방문비자 발급절차를 엄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에 들어온 나이지리아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캐나다로 불법 월경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4월 중순까지 캐나다 퀘벡주에 들어온 불법입국자는 6000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 2016년 같은 기간에 비해 6배에 달하는 수치다.

캐나다는 난민들에게 인기있는 도피처였다. 불법입국자에게도 난민신청 기회를 부여하고 심사기간 적절한 보호조치도 제공한다. 때문에 이슬람권이나 제3국 출신 난민들이 지속적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불법입국 자체를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동쪽과 서쪽은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막혀 있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서 뗏목이나 보트로 건너올 수 없다. 위쪽은 영구 동토인 북극이다. 아래에 맞닿은 미국은 자체적으로 불법이민자 상당수를 흡수해 왔다. 때문에 비자 발급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것만으로도 불법입국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은 더 이상 불법이민자를 흡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불똥은 캐나다로 튀었다. 난민들이 미국 입국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민자의 나라’였던 미국의 방문비자는 캐나다 것보다 발급 받기가 쉬웠고, 이는 캐나다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길을 제공했다. 미국과의 국경은 대서양, 태평양, 북극 등의 지리적 방어막과 까다로운 입국절차 사이의 구멍이 됐다.

미국과 캐나다 간 이민협약의 허점도 작용했다. 양국은 최초 도착국에서 난민심사를 하도록 하는 제3국 협약을 2002년 체결했다. 때문에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온 난민들은 미국으로 다시 돌려보내지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이는 합법적으로 국경을 넘은 경우에 한한다. 불법 월경자의 경우 관련 규정이 따로 없어 미국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 난민들은 이 허점을 노린다.

특히 이는 미국 내의 이민자들까지 캐나다로 몰려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편법을 가장 먼저 활용한 이들도 미국 내 아이티 이민자들이었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들의 TPS 갱신을 중단하자 3국 협약의 허점을 노리고 캐나다 퀘벡주나 온타리오주로 대거 불법 월경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협약을 개정하거나 폐기할 생각이 없다. 방문비자 발급을 엄격히 해달라는 캐나다의 요청에 대해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남쪽 국경에서의 미국의 태도는 북쪽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초 “캐러밴이 오고 있다”며 “이들에게 우리 국경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 방위군을 국경에 배치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 ‘캐러밴’ 중 한 여성이 3월 29일 멕시코 티후아나의 한 수용시설에서 아이를 안고 있다./티후아나|로이터연합뉴스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 ‘캐러밴’ 중 한 여성이 3월 29일 멕시코 티후아나의 한 수용시설에서 아이를 안고 있다./티후아나|로이터연합뉴스

‘캐러밴’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 중미 출신 이민자들의 행렬을 말한다. 이들이 멕시코 남부에서 북상 중이라는 소식을 접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미국의 이민법을 비웃고 있다”며 이들을 막을 것을 압박했다. 4월 23일에는 재협상이 진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에 이민 규제 조건을 추가하겠다는 엄포도 놨다.

남쪽 국경에는 방위군 배치 포고령까지

2016년 대선 당시부터 그는 “멕시코 돈으로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약했다. 허풍처럼 들리던 공약은 실제로 추진됐고 지난 1월에는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까지 일으켰다. 2월 20일에는 엔리케 페나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멕시코 장벽 예산을 내놓으라’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로 크게 다툰 뒤 예정됐던 정상회담까지 취소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범죄자 등 불법이민자의 유입을 막기 위해 남쪽 국경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약 거래상이나 갱단 등 범죄자들이 접경지역을 넘는 것을 막으려면 장벽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난민신청을 한 이들 중 상당수가 심사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들어온 이후 법정에 나타나지 않고 잠적하는 경우가 많다며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이민법을 뜯어고쳐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남쪽 국경에 대한 집착은 미국 내 이민자의 상당수가 미국의 남쪽, 즉 중남미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2015년 기준 미국 내 이민자 4210만명 중 4분의 1의 넘는 1210만명이 멕시코 출신이었다.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국가 출신도 1029만명에 달했다. 이민자 중 절반가량이 미국의 남쪽 국가 출신들인 셈이다. 이민자를 줄이려는 트럼프 행정부에 있어 남쪽 국경은 꼭 틀어막아야 할 입구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단과 폐지 방침을 밝힌 DACA나 TPS의 수혜자 역시 온두라스, 아이티,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 중미 출신 이민자와 그 자녀들이 상당수다.

미국의 국경에 대한 ‘내로남불’식 태도는 인접국에 각기 다른 애환을 안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그 피해는 이들 나라를 떠돌아야 할 이민자들의 몫이다. 캐나다가 난민 친화적이라는 말은 절차에 관한 것이다. 난민 인정률이 높다는 뜻이 아니다. ‘캐러밴’에 인도주의 단기 비자를 내주는 멕시코도 자국의 난민신청자들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심사 결과에 항소할 경우 장기간 투옥하기도 한다.

이민자들이 정착할 만할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상당수는 이들 나라 어딘가에서 추방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고국에 남지도 않을 것이다. 엘살바도르 출신 20대 산모는 “MS-13 갱단의 폭력을 피해 달아났다”며 “(망명을 위한) 싸움은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박용필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phil@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