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라이프생명, 왜 추락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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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차별화 전략 실패… 경영난 심화로 6년째 적자

2011년 현대차그룹이 생명보험업 진출을 선언하자 일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삼성·한화·교보 ‘빅3’가 시장을 장악한 구조에서 후발주자가 자리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현대라이프생명을 출범시켰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위인 정태영 현대라이프생명 이사회 의장은 “2년 안에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현대차그룹의 지원 없이 독자경영으로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 의장의 호언장담은 빗나갔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14년 5월 현대라이프생명은 대주주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커머셜로부터 유상증자를 통해 950억원의 자금지원을 받았다. 이후 대만의 푸본그룹으로부터 2130억원의 유상증자를 받았다. 이어 지난해 12월 또다시 3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받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 채권과 신종 자본증권을 발행한 것을 감안하면 벌써 네 번째 자금수혈인 셈이다.

현대라이프생명 보험설계사 노조는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 우철훈 기자

현대라이프생명 보험설계사 노조는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 우철훈 기자

희망퇴직으로 임직원 250여명 떠나

출범 이후 지금까지 현대라이프생명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누적적자만 2273억원에 달한다. 보험업계에서는 현대라이프생명의 추락이 판매전략의 실패에서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출범 당시 현대라이프생명은 1만원대 저가보험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다른 생명보험사들과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 싼 보험을 쉽게 만들어 많이 팔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시 현대라이프는 설계사들에게 연금·종신보험 판매를 막고 저가상품인 제로보험을 팔라고 주문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듯 보험상품에 가입하도록 하겠다’는 영업전략은 실패했다. 저가보험상품을 팔면서 수수료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설계사들이 떠났다. 보험사의 개인영업망에도 균열이 생겼다. 정태영 의장의 신임을 받았던 현대캐피탈 출신 최진환 대표이사는 결국 2014년 회사를 떠났다.

‘마트에서도 파는 보험’ 전략으로 쓴 맛을 본 현대라이프생명은 뒤늦게 경력 보험설계사를 수십억 원의 웃돈을 주고 영입했다. 개인영업을 강화해서 실적을 높이겠다는 판단이었다. 효과는 있었다. 경력 설계사들이 고객을 몰고 왔고 반짝 실적 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2년째 들어서면서 영입했던 설계사들이 떠나기 사작했다. 이른바 ‘먹튀’ 논란이 벌어졌다. 설계사가 떠나면서 계약 해지가 이어졌다. 경력 설계사 투입은 실적 악화라는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다. 보유계약이 해지되고 유지율이 떨어지면서 경영난이 심화됐다.

현대라이프생명은 경영난 타개를 위한 출구전략으로 구조조정을 택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구조조정으로 400명이 넘던 직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사무금융노조 현대라이프생명보험지부는 퇴직자를 줄이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노조는 무급휴직과 임금 삭감, 복지 축소의 범위를 놓고 사측과 줄다리기 끝에 지난 12월 29일 사측이 제시한 자구안을 받아들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라이프생명은 개인영업을 포기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250여명 가운데 대부분은 개인영업 업무를 담당하던 인력이다. 개인영업을 위한 지점도 문을 닫았다. 75개에 이르던 점포는 센터 두 곳을 포함한 11개 지점으로 축소됐다. 이재원 현대라이프생명 대표이사는 지난 3일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자본확충이 마무리되면 영업에 주력해 실적을 낼 것”이라며 앞으로 텔레마케팅과 퇴직연금, 단체보험 등 법인영업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개인영업 채널이 사라지면서 남아있던 설계사들은 폭탄을 맞았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점포를 폐쇄하면서 설계사들에게 재택근무할 것을 통보했고, 수수료도 50% 삭감하기로 했다. 영업지침에 동의하지 않는 설계사는 계약기간 만료 후 해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계약이 해지된 설계사에게는 보험 모집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설계사들은 떠났다. 지난해 2000명에 달하던 설계사들은 170명도 채 남지 않았다. 이동근 전국보험설계사노조 현대라이프지부장은 “회사는 우리를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고 있다”며 “한 명 쫓아낼 때마다 평균 4000만원이 회사 이득으로 잡힌다고 계산해서 반드시 쫓아내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 악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현대라이프생명.  / 우철훈 기자

경영 악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현대라이프생명. / 우철훈 기자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손벌려 회생

현대라이프생명 측은 설계사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라이프생명 관계자는 “3년 이연지급(나눠서 지급)되는 수수료를 한 번에 달라는 설계사 측의 요청은 규정에 없는 내용”이라며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설계사와 현대라이프생명 간 계약 해지를 놓고 문제가 불거지자 그동안 고였던 고름이 터져나왔다. 설계사 노조는 회사가 설계사들에게 태블릿 PC를 구입하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의 상품을 팔게 했다고 밝혔다. 지난 12월 27일에는 이 같은 현대라이프생명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공정위 측은 “진정서 내용과 관련한 불공정계약 내용에 관한 건은 약관심사과에서 처리될 예정”이라며 조사에 착수했다. 설계사 노조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강문대 변호사는 “설계사 노조를 노조로 취급을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설계사는 이해당사자다”라며 “경영상 문제가 있으면 해결방안을 내세워 설득하는 절차를 밟아야지 설계사들이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따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안팎으로 부침을 겪고 있는 현대라이프생명의 앞날도 순탄치 않다. 개인영업의 포기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창구는 법인영업만 남았다. 하지만 법인영업도 상황이 썩 좋지 않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대라이프가 출범하면서 법인영업이 생겼기 때문에 외부에서 법인영업을 할 수 있는 베테랑 인력이 없다”며 “(현대차) 계열사 위주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보니 계열사 실적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라이프생명이 운용하는 전체 DB형 퇴직연금 적립금 1조1767억원 가운데 계열사 물량은 1조1570억원인 98.32%에 달한다.

오는 2021년 도입될 예정인 IFRS17(보험부채의 평가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제 보험 회계기준)도 현대라이프생명에는 큰 부담이다. 새 기준에 맞춰 부채 평가를 현재 시가로 하게 되면 부채규모는 늘어난다. 이 여파로 RBC(보험회사 지급여력) 비율이 떨어지면 대주주인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또다시 손 벌릴 가능성이 높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현재 상황에서 IFRS17이 도입되면 추가 자금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또다시 계열사 지원에 기대야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라이프생명의 회생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현대라이프생명 추락의 책임이 결국 노동자에게 지워졌다는 사실이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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