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프리존’ 들고나온 안철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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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전략 산업을 지정해 규제 풀어주는 제도… 시민사회단체는 반발

사실상 명을 다한 것으로 봤던 ‘규제프리존’이 대선정국에 부활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주요 공약으로 규제프리존에 찬성하고 나서면서다. 그동안 규제프리존에 찬성했던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은 환영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시민사회단체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규제프리존은 중도에 있는 민심을 흔들 수가 있어 이번 대선의 주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안철수 후보는 4월 10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가진 경제인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규제프리존 특별법과 관련, “민주당이 이 법안 통과를 막고 있는데, 다른 이유가 없다면 통과시키는 것이 옳다”면서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특별단지 ‘창업 드림랜드’를 만들어 점진적으로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창업 드림랜드에서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고 이를 점진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4월 10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대선후보 초청 특별강연에서 규제프리존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 대한상의 제공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4월 10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대선후보 초청 특별강연에서 규제프리존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 대한상의 제공

문재인 대선후보와 차별화 전략

규제프리존특별법(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 2개씩 지역전략산업을 지정해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다. 세종시만 전략산업 1개를 선정해 최종적으로는 27개 전략산업이 지정돼 있다. 정부는 “창조경제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지역경제 발전모델”이라며 2015년 12월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 법은 보건의료, 환경, 교육 등의 분야에서 다른 법에 우선해 규제를 푼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많았다. 이 법은 19대 국회에서 폐기됐다가 20대 국회에서 재발의됐다.

규제프리존법은 기획재정부에게도 핵심법안이었다. 기재부는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에도 집요하게 국회 설득에 나섰다. 국민의당 쪽에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권인 국민의당으로서는 시민사회단체가 반대하는 규제프리존법에 대놓고 찬성할 수는 없었지만 내심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산업분야가 낙후된 호남지역으로서는 규제프리존을 통해 지역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강했다. 규제프리존에 따르면 광주는 친환경자동차(수소융합)와 에너지신산업(전력변환저장)을, 전남은 에너지신산업(전력SI, 화학소재 포함)과 드론을, 전북은 탄소산업과 농생명을 집중 육성할 수 있다. 규제프리존법 발의에 국민의당 의원 3명이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대표는 3월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는 신성장동력을 찾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규제프리존법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은 무작정 ‘재벌 지원법이다’ ‘특혜법이다’ 하는 이름으로 규제프리존법의 처리를 원천적으로 막는 행위를 이제는 철회해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이 중요하다면서 법·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게 묶어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원내수석대표는 장병완·김동철 의원과 함께 규제프리존법 발의에 서명한 국민의당 3인 중 1명이다.

국민의당이 대선정국에서 ‘규제프리존법 찬성’을 들고 나온 것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 안 후보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최고경영자 출신이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미래의 비전을 책임질 인물로 이미지메이킹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14개 시·도 지자체가 찬성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규제프리존은 법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 되고, 필요하다면 다른 형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문 후보의 싱크탱크인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김상조 부위원장은 “나름대로 합리적 진보 경제학자인 제가 봐도 규제프리존법은 너무 성숙되지 않았다”며 “안철수 후보가 솔직히 법안을 읽어봤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도 잇달아 성명서를 내며 안 후보를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규제프리존법은 의료, 환경, 교육, 개인정보, 경제적 약자 보호 등 공공적 목적의 규제를 완화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 공공성 침해의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이 지난 2월 작성해 국회 등에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 규제프리존법은 우선 기획재정부에 막강한 권한을 준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손꼽힌다. 규제프리존법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각 부처 장관과 특별위원회 협의를 거쳐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위원회는 기재부 장관이 위원장이 되고, 각 부처 장관이 위촉하는 민간전문가로 구성된다.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할 여지가 없어 정부 입맛대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실증특례’도 논란이다. 기업실증특례란 기업이 안전하다는 것을 실증하면 특별위원회에서 특례를 승인하는 제도다. 관련 법·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기업이 제출한 안전성 실증 결과를 근거로 판단하다보니 기업의 자의적인 판단에 안전성을 맡겨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파문이다. 옥시는 1999년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유해성이 예상되는 흡입독성 실험을 생략하고 2001년 10월부터 제품 판매에 들어갔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아도 신기술의 효용성만 확보되면 시장에서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한 ‘신기술기반사업’도 문제다. 신기술기반사업에는 줄기세포치료제 등 첨단 재생의료분야도 포함돼 있다. 사전에 충분한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고도 관련 의학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나올 개연성이 크다.

정부 입맛대로 결정될 수 있어 문제

개인정보를 비식별화하면 개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개인의 위치정보 등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한 특례는 개인정보 유출의 우려가 크다. 예를 들어 내가 동의를 하지 않았음에도 네이버는 내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고, 이를 상업용으로 사용한다. 정부는 정보를 비식별화하면 개인이 식별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식별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는 것이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이다. 의료분야 규제완화는 의료영리화와 직접 연결된다. 허가 또는 인증받지 않은 의료기기를 수입업자가 수입할 수 있고, 세포배양 의약품이나 유전자 재조합 의약품은 약사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의료법인은 시·도 조례로 정한 부대사업을 할 수 있다.

수도법과 하수도법 적용특례는 기반시설이 없는 각종 보호지역에서도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산지관리법 적용특례는 보전산지를 손쉽게 변경 해제할 수 있어 환경파괴의 위험이 크다.

시민사회단체는 규제프리존의 정치적 순수성도 의심하고 있다. 규제프리존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대규모 기부를 한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활성화를 주문하는 시점에서 발표됐다. 또 규제프리존은 삼성·롯데·SK·현대차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지역의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도하도록 설계돼 대기업 청부입법 아니냐는 것이다. 각 지역이 선정한 2개의 전략산업 중 한 가지는 반드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특화사업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산지규제 해제는 비선실세인 최순실씨 소유의 평창 땅 개발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민주당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규제프리존은 14개 지자체에 27개 전략산업을 지정해주는 것이어서 사실상 국토 전체가 특구가 되는 셈”이라며 “대규모 규제 철폐가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고, 필요한 규제는 더 강화하는 ‘규제 재설계’가 필요하다. 지금 상태로라면 잘못하면 규제 폐지의 4대강사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충돌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굳이 박근혜 정부의 어젠다인 규제프리존을 통과시킬 이유는 기재부도 없다. 다만 규제완화가 이슈가 되면 다음 정권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규제완화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차기 정권의 철학을 담은 모습으로 변형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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