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IMF 20년

IMF 20년, 현실은 여전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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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과 경제상황 달라졌지만 20년 전 위기 지표 적잖게 다시 발견돼

20년 전, 1997년 새해 첫 신문지면은 파업 소식이 장식했다. 1996년 세밑에 당시 집권여당이던 신한국당이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을 노동계는 파업으로 대응한 것이다. 지금 봐선 익숙하지만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내용이 개정된 노동법에 포함됐다. 변형근로제와 정리해고제였다. 근무시간과 출퇴근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변형근로제나 경영상의 이유 등을 들어 대규모 정리해고가 가능하게끔 법적 근거를 처음 마련한 정리해고제는 당시로서는 낯설었던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한국 사회에도 밀어닥친 결과였다. 변형근로제는 이후 단시간·저임금 근무, 고용 불안정 등을 특징으로 하는 비정규직 노동이 사회에 만연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정리해고제는 적어도 이전까지는 법적으로나마 대규모 정리해고는 불가능했던 사측에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면죄부를 쥐어주는 제도로 자리잡고 말았다.

“명퇴하고 나니까 일은 계속 꼬였어요”

서울 은평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권모씨(67)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던 시기를 “어, 어, 하다보니 길바닥에 나앉을 뻔했던 때”였다고 회고한다. 권씨는 울산에서 현대자동차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1996년쯤부터 경기가 안 좋다고 TV에서 얘기가 많이 나오긴 했어. 그러다가 1997년 되니까 이전까지는 잘나가던 대기업들이 계속 쓰러지고, 연말쯤 되니까 IMF가 왔다고 그러대. 그땐 그런가보다 하고 있다가 그 다음해(1998년) 되니까 내가 다니던 공장에도 덜컥 정리해고한다는 소리가 돌더라고.”

당시 현대차는 최초 4800여명의 정리해고 계획을 노조에 통보했다. 노조는 파업으로 맞서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고, 결국 노사는 정리해고 인원을 270명 선으로 줄이는 선에서 협상을 타결했다. 권씨는 정리해고 전 회사의 압박에 못 이겨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작업복을 벗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버텼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그땐 뭐가 씌었는지…. 끝까지 (회사에) 붙어 있어야 됐는데, 나오고 나니까 일은 계속 꼬이고….” 권씨의 퇴직 이후 도전은 순탄치 못했다. 납품업체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 살던 친척이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권씨를 설득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얼어붙은 경기가 풀리기에는 시기상조였던 터라 적잖은 손해를 안고 그만둬야 했다.

1998년 1월 한 취업박람회에 구직자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8년 1월 한 취업박람회에 구직자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IMF 시작되고 은행이자(금리)가 (연) 20%를 넘던 때니까 다들 사업할 생각은 못하고, 남 등쳐먹던 놈들도 부지기수인 때였지. 그때 퇴직금에다가 모아놓은 돈 꼴랑 몇푼 믿고 일을 벌이니까 될 리가 있나.” 남은 돈이 빠듯해 겨우 구멍가게 수준의 동네 슈퍼마켓을 차렸다. 2000년대 초·중반을 거치며 경기도 회복되어 먹고살 만한 정도가 된 것도 잠시, 동네상권은 점점 메말라갔고 집값만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겨우 만든 단골을 놓치기는 싫었다. 그래서 대기업 편의점 업체 직원 말에 넘어가 편의점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한동안은 편의점으로 바꾸고 벌이가 좀 된다 싶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네. 골목마다 편의점이 들어서니까 장사가 돼야 말이지.” 영업이 점차 어려워지다 보니 인건비라도 줄이려고 시급이 가장 높은 야간시간대에 권씨가 직접 카운터를 지킨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권씨의 삶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울산의 공고 출신 대기업 생산직 사원이 서울의 편의점 점주가 됐다. 서울에 온 뒤로는 집 한 채도 소유하지 못하고 전세살이를 계속하고 있다. 과거 도시락 싸들고 출근하던 새벽이 이젠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가게를 맡기고 퇴근하는 시간대가 됐다.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을 넘어 넉넉하게 챙겨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현실은 마음 같지 않다. 아르바이트는 그나마 주말과 주중으로 나눠 쉬는 날이 있지만 권씨는 365일 밤이면 밤마다 쉬지 않고 가게를 지켜야 한다. 당연히 친지나 친구를 만나는 등의 인간관계는 꿈도 못 꾼다.

그래도 권씨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다. “새해부터는 옛날처럼 경기 좋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아져서 야간 시급 듬뿍 주고 일할 친구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나도 등산이라도 좀 다녀올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지. 나라 돌아가는 걸 보니 어떻게든 크게 바뀔 모양새이긴 한 것 같이 보이니까.”

권씨가 바라는 변화가 있으려면 먼저 아프지만 현실의 위기를 지켜볼 필요도 있다. 한국 사회는 한편으로 20년 전과 달라졌지만 20년 전의 위기상황을 가리키는 수치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치솟은 청년실업률에 따라 장기적인 실업을 경험하는 비중은 외환위기 당시 수준으로 높아졌고, 실업의 질도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법원에 파산관리를 신청한 기업의 수도 이미 외환위기 시절 수준에 육박했다.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 수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 11월 청년실업률은 8.2%를 기록했다. 같은 달 기준으로 외환위기 이후 경기회복이 본궤도에 오른 2003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로 높은 수치다. 기업들의 도산이 이어지던 1997년 11월의 6.0%보다도 높다. 청년실업률은 2016년 2월부터 8월까지 같은 달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운 데 이어 하반기에도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못한 채 외환위기 당시 수준에 근접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 여파로 청년실업이 극에 달하던 1999년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6개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실업자가 늘어나는 양상 역시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2016년 8월 기준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 수는 18만2000명으로 1년 전보다 6만2000명이나 증가했다. 장기실업자 증가 폭은 실업자 통계 기준을 바꾼 1999년 6월 이후 최대이며, 실업자 수로 따져도 1999년 8월 27만4000명을 기록한 이후 최대치였다. 전체 실업자 중 장기실업자 비율도 18.3%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8월 기록한 20%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표지이야기-IMF 20년]IMF 20년, 현실은 여전히 아프다

실업률 치솟고, 기업 신용등급 강등 최대

실업률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청년층의 현실 못지않게 고용을 책임져야 할 기업의 현실도 심상찮은 실정이다. 산업지표 곳곳에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더욱 심각해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간 한국 경제를 이끄는 동력 역할을 한 제조업 분야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침체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2015년 연간 제조업 가동률은 74.3%까지 떨어져 1998년 67.6%를 기록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 분위기는 2016년 2분기 제조업 가동률이 72.2%로 떨어지는 데까지 이어져 IMF 외환위기 시기와 비슷한 수준에 근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신용등급 역시 낮아지고 있다. 2015년 신용평가사들이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내린 기업은 전년보다 26곳 늘어난 159곳으로, 신용등급 강등 업체 수는 2010년 34곳을 기록한 이래 꾸준히 증가해 2014년 133곳을 기록한 바 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71곳이 강등된 이래 가장 많은 숫자다.

각종 경제·산업지표가 IMF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7년 이후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지만 오히려 이 엄혹한 시기를 버티고 있는 청년층의 반응은 비교적 무덤덤한 편이다. 외환위기 전과 후의 극명한 차이를 경험한 권씨 같은 세대와는 달리 현재의 청년실업의 한가운데 있는 청년층은 보다 긴 기간을 두고 현실에 젖어든 셈이기 때문이다.

엄혹한 시기 청년층은 이상하게도 ‘무덤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무열씨(31)에게 연말연시는 절망과 희망이 엇갈리는 때다. 한 해의 공무원시험 합격자 발표는 이미 마무리됐고, 김씨의 수험생활은 1년 더 늘어난 셈이 됐다.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지만 최대한 희망을 품고 활기차게 생활하려고 노력해야 축 처지는 기분을 다잡을 수 있기 때문에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는 웃으면서 한 해 계획을 세울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이라도 가지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 버티는 이유를 찾을 수 없어요.” 김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김씨는 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생업 현장에 뛰어들어야 했던 과거가 있다. IMF 외환위기에는 버텼던 부모님의 가게가 김씨가 군대에 있던 무렵인 2007년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전역 후 대학 복학을 미루고 부모님의 일을 도왔지만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지병이 악화돼 쓰러지면서 김씨와 김씨의 여동생이 함께 취업전선에 나섰다. 김씨는 전남 여수, 경남 창원 등 대규모 공단이 있는 곳으로 파견직을 나가기도 하고,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기도 하며 집안 살림에 보탰다. 하지만 몸이 버텨주지 못해 그만둔 때도 많았다.

“좀 더 어렸을 때는 깡으로 버티며 일하긴 했지만 원래 몸이 약해서 오랫동안 현장 일을 하지는 못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니 대학도 중퇴, 스펙은 없고, 결국 공무원밖에 없었죠.” 김씨는 이미 실업상태에 익숙해져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구직 과정에서의 낙방이나 탈락에 익숙해진 것이다. “자격이 초대졸이라길래 그래도 대학 2학년까지는 다녔으니 원서를 넣어보면 탈락이라는 곳도 많고, 아예 고졸 일자리라고 가도 자격증이나 경력 있는 사람들한테 밀리니까, 막상 취업하려고 해도 갈 데는 파견업체 통해서 공장이나 창고 같은 데 가는 길 말고는 잘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겨우 찾아간 일자리는 대개 노동환경이 나빴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은 김씨 말고도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일을 가르쳐주는 것부터 구내식당에서 차려주는 밥, 화장실 청소상태까지 김씨의 표현대로 “모든 게 뜨내기 장사 하듯 대충대충”이었다.

2016년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현대·기아자동차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찾은 취업준비생들이 면접을 보고 있다.  / 김정근 기자

2016년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현대·기아자동차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찾은 취업준비생들이 면접을 보고 있다. / 김정근 기자

김씨는 공무원 학원과 독서실, 고시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 노량진 근처에서 만나는 시험준비생들 치고 김씨와 비슷한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더 찾기 힘들 거라고 말했다. “고시원 옆방에 있던 애는 멀쩡히 대학도 4년제 졸업하고, 나름 열심히 취업 준비했는데도 200군데 이상 떨어져서 ‘공무원밖에 없구나’ 생각했대요.” 고용 불안정과 낮은 질의 노동환경,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유지하게 만드는 청년실업의 장기화가 1997년 이후 20년간 한국 사회가 만들어온 수렁 같은 현실로 자리잡아 버린 것이다.

실업이 같은 세대가 공유하는 공동의 질곡처럼 되어버린 청년층에게는 이 긴 터널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필요하다. 이미 경기수축 국면은 IMF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길게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한국 경제가 더욱 긴 경기수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경기침체기의 가계소비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2011년 8월 경기순환에서 정점을 찍은 뒤 5년 넘게 경기수축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 29개월간 경기수축이 이어진 것보다 훨씬 긴 것이다.

현 경기후퇴 IMF보다 충격 덜해도 길어져

전문가들도 현재 경기 불황이 외환위기 때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외환위기 직후 수준만큼 나빠졌다는 진단과 함께 이 국면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IMF 외환위기의 충격이 짧은 기간에 강력하게 밀어닥친 데 비해, 최근의 경기후퇴는 충격은 덜해도 더 길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 느끼는 체감 고통은 더 나쁠 것이라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IMF 외환위기의 충격은 1년에서 1년 반 정도에 걸친 단기적인 영향으로 끝났다”며 “지금은 충격의 강도는 그때보다 약하지만 저성장이 굳어지고 경기 부진이 너무 길어져 국민의 체감경기가 더 나빠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 실장은 “외환위기 당시는 실업자가 한꺼번에 양산됐지만 최근은 구조적인 문제로 청년층 실업자가 자꾸 누적되고 있어 IMF 때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외환시장 관련 지표는 양호해 보이지만 실물경기는 외환위기 직후와 거의 유사한 정도로 가라앉았다”며 “디플레이션 우려로 소비와 투자를 미래로 미루면서 내구재 관련 소비·투자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서 경기를 살릴 수 있게 정책적·재정적 자원을 집중한다면 현재의 악화되는 상황을 멈추고 서서히 경기를 반전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통화와 재정, 구조개혁의 세 가지 대책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해 나가서 경제 주체들에게 경기가 반전될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상조 교수 인터뷰 “취약계층 현실 개선하는 정책적 수단을 써야”

[표지이야기-IMF 20년]IMF 20년, 현실은 여전히 아프다

냉정하게 보면 희망적인 점을 찾기 어려운 때다.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며 맞은 2016년 연말이었지만, 2017년 한국의 경제가 처한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IMF 외환위기를 맞은 뒤 2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 경제에도 변화를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잡기는커녕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지도 못한 탓에 1997년의 ‘한보사태’ 못지 않은 정경유착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의 지적이다. 그렇기에 2017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운명의 해가 될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를 평가한다면.

“IMF 외환위기는 1960년대 이래의 고도성장식 개발주의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면서 새롭게 밀어닥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한 지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출주도형 경제로 고도성장을 추구해온 군사독재 시대의 한계를 전혀 극복하지 않은 채,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충격을 받으면서 또 다른 폐해에 노출된 데 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되풀이된 정경유착은 구시대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기존의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세계화가 던진 새로운 과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쌓아둔 셈이다.”

적어도 구체제의 문제는 해결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정부의 개혁 방향이 혼선을 빚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로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시작된 ‘차이나 이펙트’가 너무 강했던 것도 이유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중국 시장의 급성장으로 한국에선 재벌을 비롯해 사회 전체가 단맛에 빠져 자율적인 경제질서를 세워야 할 과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그동안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은 위기를 맞았고, 노동세력도 비정규직화를 막지 못한 채 여전히 힘을 가진 재벌에 휘둘리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현재의 체제를 개혁할 방안을 서둘러 모색해 추진하면 되지 않을까.

“현 시점에서는 명확한 모델을 제시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 주도 경제가 남긴 오래된 문제에 더해서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새로운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존의 방안을 개혁의 모델로 제시하기에는 현재 진행 중인 기술과 산업의 변화가 너무나 급속하고, 따라잡기 어렵다. 현재의 과도기를 지나야 어느 정도 윤곽을 그릴 수 있는 상황이다.”

경제구조를 바꾸자는 대안들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인가.

“경제구조를 바꾸는 데는 리더의 일관성과 국민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은 냉정하게 말해 최악이다.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면서 국민들도 정치권도 고양된 분위기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경제개혁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다음 대통령은 정책 방향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채 취임할 수밖에 없는 데다, 개혁적 정책을 둘러싸고 좌우 진영이 정치적 충돌로 치달아 국민 전체가 두 쪽으로 분열될 가능성도 크다. 개혁의 과제는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밖에 없다.”

결국 경제개혁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분석 같다.

“한국 경제가 처한 일면 비관적일 수도 있는 상황을 보면 어느 때보다도 변화가 시급하다. 그렇기 때문에 분위기에 도취되지 말고 냉정하게 판단해 개혁을 차근차근 실행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더욱 나빠져 온 취약계층의 현실부터 개선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정책적 수단을 써야 한다. 미래세대의 양육 문제나 청년실업 문제, 은퇴세대의 노후 문제 등 가장 필요하고 적실한 부분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단, 장기적인 개혁이 시급한 시점에서 진영 간의 정치적 논쟁으로 전체 역량이 소모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점진적 로드맵을 바탕으로 국민 다수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점차 개혁 추진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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