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번지르르한 ‘푸드트럭’ 속은 ‘푸어트럭’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박근혜 정부 야심찬 추진 불구 영업범위 제한ㆍ기존 노점과 경쟁 등 겹쳐 ‘애물단지’ 우려

11월 22일 방영된 인기 TV프로그램 <무한도전>은 멤버들의 장사 솜씨를 다뤘다. 밑천은 각 100만원. 그 중 정준하씨가 선택한 영업형태 중 하나가 ‘푸드트럭’이었다. 정부가 신규 고용 창출이 6000명에 달하고, 400억원 부가가치가 생긴다고 내세웠던 바로 그 정책이었다. 정씨의 푸드트럭 사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60만원으로 푸드트럭을 빌려 북엇국과 또띠아를 판 정씨가 올린 수입은 37만8000원에 불과했다. 트럭 대여비에도 미치지 못했다. 방송이 묘하게도 현실과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푸드트럭 허용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입을 타고 알려진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 3월 20일 지상파 방송으로 생중계된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푸드트럭 허용을 촉구하는 민원을 챙길 정도였다. ‘규제완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표 정책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그러나 정책 제안이 현실화된 지금 시점에서 푸드트럭은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속속 나오고 있다.

전국 최초로 영업 허가를 받아 관심을 끌었던 충북 제천의 푸드트럭도 폐업 위기에 몰리면서 제도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연합뉴스

전국 최초로 영업 허가를 받아 관심을 끌었던 충북 제천의 푸드트럭도 폐업 위기에 몰리면서 제도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연합뉴스

푸드트럭 영업이 가능한 곳은 전국의 유원지와 도시공원뿐이다. 시행 초기 유원지로 한정돼 있던 것을 영업범위가 너무 좁다는 민원이 빗발치면서 그나마 도시공원으로 넓혀준 것이다. 그래도 푸드트럭 활성화 조짐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에 1·2호 푸드트럭을 허가받았던 50대 여성 자영업자 권모씨의 푸드트럭이 영업을 중단할 정도로 매출이 줄어들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푸드트럭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신세가 돼버렸다.

정부는 또다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푸드트럭이 미완의 노점 대책이라는 지적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자체장이 노점이나 포장마차, 기존 음식점과의 마찰요인이 없는 곳을 골라 푸드트럭이 들어서도록 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씨가 1톤·0.5톤 트럭 두 대를 개조하고 LPG이용검사, 위생교육 및 건강검진 등 푸드트럭 영업에 필요한 각종 허가를 받는 데 든 비용만 2000만원이 넘었다. 충북 제천 의림지 놀이시설에서 감자튀김 등을 팔며 영업한 권씨의 매출은 9·10월 두 달을 지나니 급격히 줄어들었다. 유원지라는 한계에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노점상과의 경쟁까지 겹쳐 이를 극복해내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푸드트럭이 일각에서는 정부의 전향적인 대책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일반 노점상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합법이 아니면 다 불법이라는데, 장사가 될지 어떨지도 모르는 공원 안에서만 영업해야 합법이라는데, 우리 같이 못 배운 사람들이 뭐라 할 말이 있겠어요?”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붕어빵 노점상인 김묘현씨(54)는 “예쁘게 칠해놓은 노점상을 공원에 갖다 놓으면 그럴싸해 보이기야 하겠지만 당장의 생활비로 일당 5만원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한테는 그 예쁜 게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라고 말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도시정책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와 각 지자체가 명목적으로는 노점 합법화를 내세우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법의 기준에 맞지 않는 노점들을 모두 불법으로 내몰아 소멸시키려는 이중적인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속을 전제로 하고 관공서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반영되는 정책에서 근본적인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준희 도시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책이 도시 미관 개선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궁극적으로 노점상을 소멸하고자 한 것”이라며 “노점상은 유형도 내부 계층도 다양하기 때문에 단속과 규제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