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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도 박찬호·이승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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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인 야구 열풍, 등록 팀 2년만에 두 배 늘어

"까앙!”
경쾌한 금속 소리와 함께 야구공이 한강 난지야구장의 하늘을 시원하게 갈랐다.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 그러나 공은 글러브에 맞고 뒤로 빠진다. “3루! 3루까지 달려.” 초여름 날씨만큼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비록 실력은 어설픈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열정은 프로선수 못지않다.

사회인 야구팀 루시퍼(흰색 유니폼)와 튜즈스타(청색)의 경기 모습.

사회인 야구팀 루시퍼(흰색 유니폼)와 튜즈스타(청색)의 경기 모습.

사회인 야구팀 루시퍼와 튜즈스타의 경기가 5월 4일에 열렸다. 평일인 만큼 참가한 이들은 전문직이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30, 40대가 대부분이다. 주말 경기에는 직장인으로 구성된 야구팀이 참가한다. 사회인 야구 열풍은 주말을 넘어 평일까지 사람들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제 야구는 ‘보는 것’에서 ‘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보는 야구에서 하는 야구로
“나이와 체력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잖아요.” 임창우씨(35·자영업)의 취미는 농구였다. 20대부터 주말이면 농구를 했다. 하지만 나이가 서른 중반이 되자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다. 무릎도 나빠졌다. 임씨에게 농구는 더 이상 취미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야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대표팀이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처음에는 가볍게 즐긴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9개월 전 지인의 소개로 사회인 야구팀에 들면서 임씨는 야구에 ‘푹’ 빠졌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야구장을 찾는다.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땀을 흘릴 수 있다는 점과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죠.” 타석으로 향하는 임씨의 얼굴에 즐거움이 묻어 났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시작한 경기는 15분이 지났지만 여전히 1회초다. 스코어는 벌써 6대0. 여느 사회인 야구처럼 점수가 많이 났다. 최고 점수가 20점이 넘는 게임도 잦다. 평범한 타구를 놓치는 모습이나 울퉁불퉁한 그라운드 때문에 벌어지는 실책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동네야구’라고 폄하할 수 없다. 때론 프로선수 못지않은 멋진 장면이 연출되고 모두 열정적으로 경기장을 누빈다. 주심은 물론 기록원까지 등장하는 등 규칙도 프로야구와 거의 똑같다.

[사회]오늘은 나도 박찬호·이승엽이 된다

“어휴, 기분 죽이죠.” 앞선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홈까지 들어온 이재춘씨(36·디자이너)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이씨가 가입한 사회인 야구팀은 네 곳. 이유는 간단하다. “한 팀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죠.” 사회인 야구팀은 많고 야구장은 부족해 여러 팀에 속해야 일주일에 한두 차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2008년 1월 친구들과 조기축구회를 만들었다. 그해 여름에 열릴 독일월드컵으로 축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씨는 3월에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맹활약한 한국야구대표팀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간단히 캐치볼이나 하자’는 생각에 글러브를 구매하기 위해 야구용품점을 찾았다. 그곳에서 사회인 야구리그에 대해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마음이 변했다. 이씨와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조기축구회를 사회인 야구팀으로 바꾸고 지금까지 매주 야구를 즐긴다. “여기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어요. 정말 최곱니다.” 이씨는 연방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급격하게 늘어난 사회인 야구팀
프로야구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올해 프로야구 관객 수는 지난 4월 28일 100만명을 돌파했다. 올 시즌에는 지난해 590만명을 넘어 650만 관객이 야구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말 그대로 야구 ‘열풍’이다. 그러나 프로야구 관객 수보다 더 급속하게 늘어가는 것이 있다. 바로 사회인 야구팀이다.

국민생활체육 전국야구연합회에 따르면 2008년 하반기에 2435개이던 사회인 야구팀은 지난해 하반기에 3707개, 올해 현재 5215개로 2년 사이 2배 이상 급증했다. 등록된 동호인 수도 2008년 5만5488명에서 올해 11만9263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전국야구연합회는 등록하지 않은 미가입 야구팀까지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1만개가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보는’ 야구를 넘어 ‘하는’ 야구로의 변화가 뚜렷해진 셈이다.

이처럼 ‘하는’ 야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인 야구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제 1·2회 WBC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KBS 오락 프로그램의 코너 ‘천하무적 야구단’이다.

2008년부터 사회인 야구에 참여한 김승현씨(39·은행원)는 “국제대회에서 대표팀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회사 동료와 함께 야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4년마다 월드컵을 개최하는 축구에 비해 야구는 인기 있는 국제대회가 없었다. 그러나 2006년에 야구 월드컵격인 WBC가 생겨나면서 야구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더불어 국제대회에서의 선전이 이어졌다. 1회 WBC 대회 3위, 베이징 올림픽 우승, 2009년 제2회 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국가대표팀이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두자 야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연예인들이 사회인 야구팀을 창단부터 연습과 시합을 치르는 모습을 담은 ‘천하무적 야구단’의 인기몰이도 사회인 야구팀 증가가 한 몫을 했다. ‘야구초보’들이 좌충우돌하면서 야구를 즐기는 모습은 야구에 관심이 있던 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방송 이후 사회인 야구를 즐기는 이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결국 ‘보는’ 야구의 즐거움이 ‘하는’ 야구로 번진 것이다.

제반 시설 확충 필요
사회인 야구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사회인 야구팀이 급격하게 늘어난 데 비해 야구장 등 제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오늘은 나도 박찬호·이승엽이 된다

울산 사회인야구연합회 이상진 회장은 “야구장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야구장은 물론 야구시설을 갖춘 학교 운동장은 사회인 야구팀으로 항상 ‘만원’이다. 그러나 사회인 야구선수들은 야구장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 수는 축구장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일반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축구장은 전국 395개가 있으며, 비공식 구장을 포함하면 8691개에 이른다. 이에 비해 규격을 갖춘 야구장의 수는 47개로 축구장에 비교할 수준도 되지 않는다.

사회인 야구를 1년째 즐기고 있는 김형준씨(40)는 “야구장 수가 적어서 주말에 시합을 계획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면서 “그나마 사람이 적은 경기도나 지방을 찾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야구장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도 심각하다. 편차가 크지만 대개 학교 구장의 경우 주말 1년 사용료가 2000만~3000만원 수준이다. 이를 20~50개 팀이 나눠서 부담한다. 사용을 원하는 팀이 늘자 사용료가 크게 오르는 경우가 생겼다.

사회인 야구팀 대표를 맡고 있는 심현식씨(42·가명)는 “야구장이 부족하다 보니 일부 학교나 야구장에서 사용료를 터무니없이 높게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야구장을 갖춘 ㄱ대학교는 지난해 사용료가 2배 올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심지어 사용을 원하는 야구팀 사이에 사용료 경쟁을 부추기는 곳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야구협회는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내년부터 초·중·고·대학의 대회를 주말리그로 전환할 계획을 밝혔다. 결국 사회인 야구가 들어설 곳이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생활체육 야구연합회 김광복 사무처장은 “야구장 부족 등 문제는 사회인 야구팀이 급격하게 늘어난 데 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야구장 부족으로 일어나는 불편과 사용료 상승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사무처장은 “비용 상승과 구장 사용에 대한 불편함이 야구팀에 전가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부담 없이 취미를 즐길 수 있게 지원 확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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