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국가 건축정책 “개발만이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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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위원회 업무 보고, ‘애초 취지에서 변질’ 비판 높아

3월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회의에서 정명원 위원장과 토론하고 있다.

3월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회의에서 정명원 위원장과 토론하고 있다.

지금의 세종로에서 한강까지 거리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 국가상징거리 조성, 획일적인 성냥곽 아파트를 짓지 말고 미적 감각을 살린 뉴하우징 운동, 전국 4대 강(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주변 디자인을 180도 바꾸는 디자인 구상 등 우리 생활환경을 확 바꿔놓을 야심찬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물론 청계천 복원 건설로 ‘히트’한 이명박 정부가 주요하게 추진하는 정책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건축정책위)는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러한 업무 추진 방향을 보고하면서 “이를 통해 경쟁력 있고 품격 있는 국토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품격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개발 위주 등 허점투성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원회는 참여정부 말미에 만들어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은 민간위원 13명을 임명했다. 이날 내놓은 ‘정책’은 3개월간 위원회 활동의 첫 결과물이다. 건축정책위원회는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놓은 위원회가 아니다. 참여정부 말미에 건축기본법과 함께 만든 것이다. 당시 다른 건축계 인사들과 함께 이 작업을 주도했던 김진애씨는 “건축정책위원회와 건축기본법은 건축계의 염원이 담긴 것”이라며 “기대를 넘어선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1년 조금 넘어, 그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김씨는 “프로젝트는 민간에서 다뤄야 하는 것이고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프로젝트를 다루면 안 된다, 굉장히 아쉽다”며 “용산 참사를 야기한 재건축 문제도 그렇지만,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롯데 초고층빌딩, 더 근본적으로 고질적인 건축 현장의 발주 문제 등 원래 건축정책위에서 다뤄야 할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관련 학계의 의견도 같은 맥락이다. 건축계에서는 민현식 교수(한국예술종합원)와 같은 건축계 중견·개혁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민 교수를 비롯한 건축가ㅅ씨, ㅈ교수, 또 다른 ㅈ교수 등이 모두 빠졌다. 민 교수는 “별로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며 언급을 회피했다. 역시 민간위원으로 거론되던 ㅈ교수는 “사실 참여정부의 정책이나 노선에 별로 동의한 적 없지만 검토 단계에서 나를 참여정부 쪽 인사로 지목해 제외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비교적 젊은 그룹에서는 현재 건축정책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감없이 밝혔다. 양상현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는 “건축정책위 본연의 의의는 행정기관을 포함해서 난마처럼 얽혀 있는 건축 이해집단을 국민의 편에서 조정하고, 건축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한편, 간과하기 쉬운 건축의 공공적 역할을 제고하는 것이다”라며 “지금 위원회가 업무라고 내놓은 것들을 보면 행정당국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가져야 할 건축정책위가 당국의 논리에 충실한 하부 실무조직 혹은 건축 용역업체가 된 듯한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 및 부동산학과 교수의 인식도 비슷하다. 조교수는 “정말 의아한 것은 건축정책위원회가 정부의 사업집행기구도 아닌데 집행부서나 할 듯한 사업을 이렇게 추진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라며 “건축정책위는 건축문화정책의 사령탑 역할을 해야지 지자체와 같이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옳은 역할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민간위원 친정부적 성향이 문제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국가상징거리로 만들자는 것은 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할 때부터 주장했던 내용”이라며 “그것을 건축정책위가 나서서 한강까지 연결하겠다는 것은 결국 이름을 바꾼 대운하사업인 4대 강 살리기를 뒷받침하겠다는 이야기 아니냐”고 비판했다.

1월 20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운현스카이빌딩에 마련한 국가건축정책위원회 현판식에 정부·민간 위원들이 참가하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1월 20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운현스카이빌딩에 마련한 국가건축정책위원회 현판식에 정부·민간 위원들이 참가하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뉴하우징’과 관련해 양상현 교수는 “뉴타운2.0에서는 재정착률을 높이겠다고 주장하는데 이미 시행 전부터 많은 시민단체나 건축계에서 지적해왔던 이야기”라며 “이 정책이 타운하우스가 될지, 아니면 대형아파트 단지 앞에 일부 전시용으로 주택을 만드는 형태로 뒤통수를 칠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농어촌 지역에 그린타운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좋은 이야기지만, 과거 살던 사람은 쫓아내고 인근에서 아파트를 짓고 있던 건설사와 지주들의 배만 불리던 청계천 개발의 확대재생산이 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한반도 대운하의 우회 추진 의혹을 낳고 있는 4대 강 정비사업과 연관된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상헌 한신대 교양학부 교수는 “수변구역이라고 하면 적어도 강에서 500 이내 지역을 말하는데, 그것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국 개발할 수 있는 전초작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라며 “특히 내년 지자체 선거와 맞물려 여러 사람이 개발에 대한 요구를 많이 할 것이고, 지자체 출마자들이 선거공약으로 뭐를 유치하고 개발하겠다는 것을 내놓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건축정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장·차관의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할 민간위원의 일방적 구성에서 오는 한계가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련 학계의 한 교수는 “민간위원 중 ㄱ, ㅇ, ㄱ교수 등은 참여정부 때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 정부 일을 많이 한, 말하자면 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친정부적 성향의 인물”이라며 “상대적으로 건축 공공성을 많이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진 ㄱ교수는 이전엔 정부 쪽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주공·토공 통합과 관련된 요청을 받아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정권과 상관 없이 건축정책이나 지배적 건축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은 이번 건축정책위원회에서 다 빠졌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자기 사람이거나 기술 관료적 전문가만 초대받아 구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양윤재 위원에 대한 보은인사 논란

2005년 5월,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양윤재 당시 서울시 제2부시장. 이후 재판에서 그는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8월 사면·복권했다. <경향신문>

2005년 5월,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양윤재 당시 서울시 제2부시장. 이후 재판에서 그는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8월 사면·복권했다. <경향신문>

가장 논란을 낳고 있는 것은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의 민간위원 활동이다. 홍성태 교수는 “건축·조경 전문가라고 하지만 뇌물 수수 사건의 주범으로 대법원에서 5년형을 확정받고 복역하던 사람 아니냐”라며 “사면복권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저지른 범죄는 중범죄인데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런 위원회 위원에 임명한 것은 이 정권의 막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12월 양 위원 임명 당시 청와대 측은 “국가정책위원회는 순수 자문기구고, 양윤재 전 부시장은 서울 4대문 안 도시구조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위촉됐다”고 해명했다. 심지어 <조선일보>까지 비판한 측근 사면·보은 인사 논란에 대해 청와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건축정책위원회 정명원 위원장(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은 “어떤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라며 “그런 지적이 있다면 위원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들의 반응도 엇비슷하다. 안정훈 건축정책위 과장은 “비판하는 분의 의견을 정확히 모르겠고 국가상징거리는 서울시에서 제안했지만 지자체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4대 강 수변 디자인’을 담당한 박승기 과장은 “강이 깨끗해지고 안전해지면 개인이 집을 지을 수도 있고, 강 주변에서 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하겠다면 개발을 못하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뉴하우징 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엄정희 과장은 “하다 보면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하자는 것은 아파트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라며 “나쁜 면만 보지 말고 긍정적인 면을 봐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담당 과장들 발언의 공통점은 지역에 대한 개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이다. 박 과장은 “우리가 보고하는 것은 큰 틀에서 방향과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고, 만약 정비·개발한다면 주체는 지자체가 되는 것”이라며 “위에 있는 중앙부처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는 주장은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엄 과장은 “첫 회의 결과 발표가 사업 위주여서 이상하다는 지적은 가능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건축과 관련된 제도 개선과 같은 내용도 곧 발표할 것이다”라며 “3개월 동안의 업무 추진만으로 잘잘못을 판단하기는 빠르지 않나.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덧붙였다.

양윤재 위원의 임명과 관련해 정 위원장은 “청와대 쪽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임명에 관여한 청와대 국토해양비서관실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12월에 언론들이 (양 위원 문제를) 거론했는데, 딱히 더 덧붙여 해명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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