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사업에 닥친 위기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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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이 자동 분류되는 우편집중국 모습.

우편물이 자동 분류되는 우편집중국 모습.

미국발 금융위기가 온 지구촌을 덮치면서 한국 경제도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새해 벽두에는 이곳저곳에서 희망이란 단어가 춤추는 게 상례지만, 올해는 들려오는 게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다.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둠의 터널에 들어갔다느니, 야구로 치면 이제 겨우 1회 말을 통과한 정도라느니 하는 말들이다. 기업은 온 힘을 다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고, 개인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주머니를 꼭꼭 닫아걸고 있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예고되면서 조만간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어디를 가나 지금은 그저 살아남는 게 최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워지면 우정사업은 어떤 영향을 얼마나 받을까. 일반적으로 우편은 경기를 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편물량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기업 발송 우편이다. 개인 우편물은 연말 연초에 반짝 하는 연하장 정도고, 평소에는 기업이 고객에게 보내는 광고 안내물이나 대금 청구서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경영이 어려워지면 우선 광고부터 줄인다. 손쉽게 줄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편이 경제난에 직격탄을 맞는 까닭이다.

통계를 보자.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때 우편물은 뒷걸음질친 적이 없다. 매년 5~10%씩 물량이 늘어났다. 그러다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자 증가율이 3.6%로 뚝 떨어졌다. IMF가 그해 11월에 왔기 때문에 연말 우편물이 급감하면서 연평균 수치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IMF 한파가 본격적으로 닥친 98년에는 큰 폭의 감소를 면치 못했다. 전년보다 8.4% 줄어든 36억900만 통을 기록한 것이다. 이후 다시 증가 추세를 회복했다가 2003년부터 다시 감소세로 돌아 3년 연속 4~5%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는 경기 탓이 아니라 인터넷이 우편을 대체하는 시대의 흐름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우리는 그나마 2006년과 2007년 각각 1.3%, 2.1% 우편물이 늘어남으로써 만국우편연합(UPU)으로부터 우편사업 모범국가로 주목받았으나 이번 초강력 경제한파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꺾이게 된 것이다.

우정사업본부 김상원 우편물류팀장은 “연말부터 물량이 확확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고 말한다. 2008년 한 해 통계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 급한대로 계산기를 두드려봤더니 48억8300만 통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년보다 6000만 통, 1.2% 줄어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올해다. 지난해에는 그나마 총선이 있어 줄어드는 통상우편물의 빈 자리를 선거우편물이 메웠으나 올해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 중 그 어느 것도 없다. 지금 추세대로 가면 적게는 5%, 많게는 10%까지 우편물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지난해까지 지켜온 흑자 행진이 자칫 올해 들어 끊어질 수도 있는 상황. 우편의 위기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닥친 셈이다.

반면 우정의 다른 한쪽 날개인 금융사업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오름세를 타고 있다. 금융위기가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심리가 번지면서 시중의 돈이 우체국으로 쏠리는 것이다. 시중은행은 5000만 원까지만 지급보장을 해주지만 우체국은 전액 국가가 보장해준다는 장점이 요즘 같은 시기에 큰 매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우체국을 찾은 한 중년 고객은 요구불 예금에 50억 원을 넣어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런 큰 돈이 개인예금으로 들어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또 다른 우체국에서도 수억 원대의 거액을 예금하는 고객이 나타나는 등 전에 볼 수 없었던 부자들의 우체국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치화하는지 정기예금의 월평균 잔액을 통해 살펴보자. 지난해 9월 31조6997억 원에서 10월 32억3804억 원, 11월 34조7251억 원, 12월 36조6696억 원으로 쑥쑥 늘어나더니 1월 13일 현재에는 37조6898억 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금융위기가 가시화한 지 넉 달도 채 안 되는 사이 우체국 정기예금이 6조 원가량 늘어난 것이다. 초기에는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이 우체국에 예치해놓은 돈을 많이 빼가는 바람에 들고 나는 것을 종합하면 큰 변동이 없었으나 요즘 들어서는 기관의 예금 인출도 많이 수그러들었다고 예금사업팀 김찬수 사무관은 전했다. 우편이 위기에 처한 만큼 금융에선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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