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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염원한 ‘제야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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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보신각 타종 현장 시민 표정… “새해 소망은 좋은 세상에서 사는 것”

지난해 12월 31일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현 정권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현 정권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 국민 망년회.”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한 촛불시민이 시민의 참여를 호소하며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이다. 이 누리꾼의 예측은 절반은 틀렸고, 절반은 맞았다. 연인원 100만 명을 자랑했던 작년 여름의 촛불 인파와 달리 이날 촛불 시민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초저녁부터 보신각 주위를 경찰병력으로 둘러싼 상태에서 진행한 타종 행사는 ‘제야의 타종 행사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다.

매서운 추위였다. 2008년 12월 31일 오후 7시쯤, 거리는 장갑을 끼지 않으면 간단한 메모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손이 오그라드는 한기가 엄습했다. 종로는 대체로 붐볐지만 밀려드는 인파만으로도 새해를 맞는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전교조 탄압 항의서명 모금운동
버스나 지하철로 종로를 찾은 시민들을 맞은 것은 제야의 설렘이 아니라 보신각을 중심으로 광화문과 종로2가에 배치된 경찰들이었다. 경찰은 경찰차를 동원하여 세종로 입구에 차벽을 만들었고, 지하철 종각역에는 출구마다 계단 양쪽으로 경찰을 배치했다. 경찰은 이날 160여 개 중대 1만5000명을 배치했다. 이들 전경의 임무는 안전한 행사 진행이라기보다 촛불 군중 해산이었다.

보신각 맞은편 제일은행 앞 인도에서는 한겨울의 어둠을 배경으로 노란색 풍선들이 흔들렸다. 전교조 서울지부 소속 교사 7명에 대한 중징계에 항의하는 교사와 시민 들이 풍선을 준비했다. 교사들은 시민들을 상대로 전교조 탄압에 항의하는 서명과 모금운동을 벌였다. 전교조 김한민(38) 교사에게 2008년은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한 해였다.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현 정권은 ‘법대로’를 외치며 전교조 선생님을 마녀사냥하듯 몰아붙였다. 김씨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를 만드는 게 낫겠다’는 자조섞인 농담이 오고간다”고 말했다. 그는 “새해에는 제발 그들만의 귀족학교를 만드는 짓은 중단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노란색 귀마개를 고쳐잡았다.

전교조 교사들과 전교조 교사 응원카페 회원 등 40여 명은 오후 7시부터 11시 사이에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고 적힌 풍선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자정이 되면 풍선을 하늘로 날려달라”고 당부했다. 안티MB 카페에서 활동하는 고등학교 2학년 이영훈군은 “정부가 이렇게까지 거꾸로 갈 줄은 몰랐다”면서 풍선을 들고 같이 온 일행과 함께 보신각 쪽으로 건너갔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그럼에도 2008년을 돌아보며 그 낡은 표현을 다시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다. 한 교수는 “한 해에 이렇게 많은 일을 겪을 수 있는가. 자유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문제를 풀 능력과 의지가 없는 정권이 수구층 결집에만 의존해 상황을 돌파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의 표현대로 정권은 지금 “망하는 길”로 가고 있지만 희망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 교수는 “내년 봄 촛불이 아니라 횃불이 일어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지만 보수와 진보 모두 아무런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와 사제의 인연을 맺은 교사 세 명이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거부할 권리를 주었다’는 이유로 교단을 떠났다. 그가 이날 오래도록 제일은행 앞을 떠나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촛불카페 회원들 정권규탄 집회
1호선 지하철은 종각 역에서 한 번씩 정차할 때마다 꾸역꾸역 사람들을 토해냈다. ‘제야의 종’ 타종 행사 리허설이 진행되면서 요란한 북소리와 노랫소리가 보신각 안에서 울려퍼졌지만, 지하철 역을 빠져나온 시민들은 보신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다. 보신각 주위를 따라 경찰들이 원형으로 스크럼을 짜고 통행을 통제한 탓이다. 제일은행 쪽에서 건너온 한 20대 남성은 “돌아가라고 해서 이리 왔는데 이게 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스크럼을 짜고 있던 한 전경은 “위에서 지시한 사항이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여경은 “11시 30분까지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경은 “(타종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안으로는 못 들어간다”고 말했다. 행사를 보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횡단보도 맞은편 영풍문고 앞이나 제일은행 앞에 진을 쳤다.

위 _ 경찰이 보신각 앞을 이중삼중으로 에워싸고 있다. 아래 _ 보신각 쪽으로 건너가려는 시민들과 경찰이 서로 뒤엉켜 있다.

위 _ 경찰이 보신각 앞을 이중삼중으로 에워싸고 있다. 아래 _ 보신각 쪽으로 건너가려는 시민들과 경찰이 서로 뒤엉켜 있다.

촛불이 여름을 달굴 때 만들어진 촛불카페 사람들은 종각역 안팎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정권을 규탄하는 작은 집회를 열었다. ‘촛불집회 같이가기’ 카페 회원 20여 명은 영풍문고 앞 인도에서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카오스이온’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이민정(가명·여)씨는 대학생을 ‘88만 원 세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현 정부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치솟는 등록금 탓에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며 곧 스물여덟이 되는 지금까지도 6학기밖에 마치지 못했다는 그는 “학자금 대출 이자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하철 역 안에서 ‘전국학생행진’ 소속 대학생 10여 명과 함께 시민들을 향해 “새해에는 이명박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자”고 외치던 고려대학교 4학년 김민철씨는 “재벌과 부유층을 위한 정책을 차근차근 밀어붙이는 현 정권을 보면 참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비판했다. 민언련 회원 10여 명도 지하철역 안에서 정권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역 안에 배치된 경찰은 지켜보기만 할 뿐 이들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역사 안으로 들어온 시위 참가자들은 반디앤루니스 서점 앞에서 진을 쳤다. “이명박은 물러나라”는 구호가 역 안을 가득 채웠다.

오후 9시 40분쯤 제일은행 앞에서는 깃발을 들고 보신각 쪽으로 나가려던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경찰 한 명과 시민 한 명이 상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다가 양쪽의 만류로 뒤로 물러났고, 시민들과 경찰은 약 2m 간격을 두고 대치했다. 비슷한 시각 보신각으로 곧장 이어지는 종각역 4번 출구의 셔터가 내려졌다. 경찰은 시민들에게 “시민 안전을 위해 지하철 승무원들이 입구를 닫았다. 5번 출구로 돌아가라”고 안내했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셔터 아래로 전경들의 방패가 보였다. 불만을 표시하는 시민과 되돌아가는 시민이 뒤엉키는 사이에 “4번 출구를 폐쇄했다”는 지하철역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시위 참가자 모습 볼 수 없었던 TV
11시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종로타워 앞 도로에 서 있었다. 안티MB 카페, 촛불연행자 모임, 한대련, 매국집단 척결 국민행동, 진보신당 등 수십여 개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참가자들의 손에 하나둘 촛불이 켜졌다. 경찰은 이들 뒤로는 한 겹의 방어막을 쳤고, 앞으로는 두세 겹의 스크럼을 짰다. 집회 참가자들은 뒤로 빠질 수는 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11시 30분, 보신각 앞 대형 화면에 ‘가는해 오는해 새 희망이 밝아온다’는 자막과 함께 행사 진행을 맡은 KBS 남녀 아나운서의 모습이 비쳤다. 가수들의 노래가 시작되자 일제히 촛불이 올랐고, 참가자들은 환호하는 대신 “이명박은 물러나라”와 “독재타도”로 리듬을 맞췄다. 참가자들의 목청이 높아지면서 보신각 앞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가수들의 노랫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않았지만, 이날 안방에서 KBS 생중계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집회참가자들의 구호를 들을 수 없었다. 보신각 앞 대형 화면은 단 몇 초도 집회 참가자들을 비추지 않았고, KBS 제작진은 시민들이 치지도 않은 박수 소리를 화면에 삽입했다. 낙하산 사장의 지시를 받는 몇몇 방송은 종각 네거리의 진실은커녕 사실마저 왜곡한 것이다. 국회의사당에는 언론관계법 등 이른바 MB악법 저지를 위해 야당의원의 본회의장 점거농성이 계속됐다.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0에 멈췄다. 그 순간 참가자들은 손에 쥐고 있던 노란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냈다. 한국진보연대와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이 준비한 풍등 11개도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31개월 된 딸을 안고 아내와 함께 촛불을 들고 있던 김영권(40)씨는 “온 국민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던 한 해였다”면서 “우리 아기가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유일한 새해 소망”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조은호(38)씨는 “국무회의에서 ‘원없이 돈을 써봤다’고 말하는 강만수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서 “종을 치고 싶으면 딴 데 가서 치고 우리는 그냥 놀게 내버려두라”고 비꼬았다. 보신각에서 새해 인사를 건네는 오세훈 시장의 인사말은 “닥쳐라”는 구호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풍선과 풍등은 보석처럼 빛나며 어두운 밤하늘 속으로 서서히 빨려들어갔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고립된 채 진행된 타종 행사는 2009년 한국 사회의 모습을 앞서 보여주는 듯했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 국민의 슬픈 망년회’였다.

<글·사진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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