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길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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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폐지 논란

“상속세는 출발점을 평등하게 놓으려는 것”

[말과 길]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한승수 총리와 첫 만남에서 상속세를 폐지해달라고 건의해 상속세 문제가 또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최근 삼성특검 결과 상속·증여세 부분에 대해 소멸시효가 지남에 따라 상속세를 부과할 수 없는 데 대해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부모 등의 사망으로 인해 무상으로 이전되는 재산에 부과하는 세금인 상속세에 대해 상속세 존치론자들과 폐지론자들이 팽팽히 맞서 있다.

시민단체 등 상속세 존치론자들은 “돈 많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대해 과세하는 상속세는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업가 등 폐지론자들은 “상속세를 지불함으로써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상속세 개선 문제 등 종합적인 세제개편 방안을 8월까지 마련할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중소·벤처기업 육성과 가업 승계를 돕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상속세를 감면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상속세 전문가인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에게 상속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들어봤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 정부에 상속세를 폐지하고 대신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로 전환해달라고 건의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다. 상속세가 세수에서 차지하는 것은 국세 중 1%도 안 된다. 세수는 적은데도 불구하고 부의 대물림 때문에 굉장히 이념적이고 철학적인 세제가 됐다. 일단 상속세에 대한 국민의 정서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폐지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본이득세도 세금을 나중에 내도록 하는 것이라서 상속세에 대한 완전 폐지 주장은 아닌 것 같다.

삼성 등 대주주 지분이 낮은 기업의 경우 지분을 상속할 경우 상속세로 대주주 지분이 감소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애로사항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상속세율이 50%인데 세무행정이 발달해 과거보다 과표가 현실화됐기 때문에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상속세는 경영권 승계와 관계가 없다. 만약 그것이 문제라면 경영권의 영향을 미치지 않고 상속세를 해결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 반드시 상속세 부담이 커서 경영권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기업과 기업가를 동일시한 것에서 비롯한다. 경영권을 지키고 싶으면 본인이 회사 지분을 많이 사야 한다. 상속세 부담이 커서 경영권을 방어하지 못한다는 논리는 앞뒤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

미국, 일본 등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하는 추세인데.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과연 세계가 그런 추세인가. 1970년대 캐나다를 비롯해 몇몇 국가에서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미국은 빌 클린턴 정부 당시 폐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부시 정권하에서는 2010년 한 해는 완전히 없애고 2011년부터는 결정나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우리나라만의 정서, 세무행정이 잘 안 돼서 소득세 부과가 안 됐던 시절에 부가 축척됐던 것을 상속 단계에서 국가가 제대로 과세한다는 측면이 있다. 외국의 경우 숫자만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다. 일본은 우리와 정서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상속세의 납부를 보면 우리나라는 비상장 주식을 많이 내는 데 비해 일본은 부동산을 많이 낸다. 상속세는 증여세와도 맞물려 있다. 일본이 상속세를 줄인 것은 상속세 정서보다는 종합적인 세제개편안과 맞물려 있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등 세계적인 거부들이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는.
“상속세 문제는 부의 대물림과 관련이 있다. 국가가 세금을 거둬서 여러 가지 복지 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세금의 역할을 중시하는 것이다. 자기들은 자기대로 대물림하지 않고 국가는 국가대로 사용하는 그런 큰 그림에서 이야기한 것 같다.”

정부가 상속세제를 강화하기 위해 2004년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했지만 상속요인 발생 대상자 중 0.7%만 납부할 정도로 세수 효과는 미미했다. 이를 두고 현행 상속세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하는데.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강화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적으니까 더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이고 폐지론자들은 아예 없애자고 하는 것이다. 서로 반대 주장을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상속세 수입은 적다. 상속세는 소득세와 연관돼 합쳐서 과세될 수 있다. 사실 상속세는 배우자가 있는 경우 10억 원까지 과세당하지 않는다. 과세 인원이 적은 것은 10억 원까지 세금을 내지 않도록 구조를 짜고 있는 데 원인이 있다.”

일반 국민들은 5억 원(또는 10억 원) 이상도 상속받기 힘들다. 결국 상속세는 거부들을 타깃으로 한 세금 아닌가.
“사람이 태어날 때 부자로 태어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서 인생이 결정된다고 하는데, 이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상속세가 있기 때문에 출발점이 앞서 있는 사람을 뒤로 후진시켜놓는 것이다. 즉 출발을 평등하게 만들어놓는 것이다. 또 부의 재분배 효과도 있다. 부자를 타깃으로 삼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재산 중 절반을 국가에 내놓고 절반만 갖고 시작하라는 뜻이 숨어 있다.”

상속세는 이중과세, 즉 ‘살아서 소득세를 냈는데 죽을 때 또 세금을 내라니 사망세(Death Tax)’라는 오명도 있는데.
“이중과세를 말하는 맥락은 있다. 돈을 버는 과정에서 세금을 이미 낸 측면이 있다. 그게 쌓인 것을 자식에게 물려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가 낸 세금이지 본인이 낸 세금이 아니다. 본인은 그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과세로 보면 이중과세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중소·벤처기업 육성과 가업 승계를 돕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상속세를 감면하겠다고 공약했는데.
“기업 친화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경영권이 넘어갈 때 중소기업은 비상장사가 많으니까 평가가 제대로 안 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업가와 기업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기업은 기업가의 재산이 아니다. 기업가는 단지 운영할 뿐이다. 상속세 부담을 완화해주면 자식에게 경영권을 승계해주거나 기업을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측면이 있다. 지난 정권에서도 가업 승계 공제 폭을 확대하는 혜택을 늘려줬고 앞으로 더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다.”

상속세 폐지 논란과 관련한 대안은.
“상속세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된다’는 원칙에 따른 세제 영역을 넘어섰다. 국민 정서상 손을 댈 수 없다. 법도 오히려 부가 이전되는 것을 잡을 수 있도록 강화됐다. 문제는 과세행정의 문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들한테 대가 없이 재산을 건네주는 경우 상속세를 계산하는 것이 쉽지 않다. 평가 문제는 앞으로 보완해야 한다.”

<글·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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