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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의 지혜’는 변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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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표측 중재안 거부는 중립성 의심하는 배신감의 표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5월 10일 염창동 당사에서 대선출마선언을 했다. 이 전 시장은 “국가 최고권력자가 아니라 최고경영자가 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이 자리는 ‘대선출정식’을 올리는 축제의 자리가 아니었다. ‘그들만의 잔치’였다. 이 전 시장의 잔칫날, 한나라당의 내분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강재섭 대표가 제시한 ‘경선룰 중재안’에 대해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박 전 대표는 “거부예요”라면서 “이대로 하면 한나라당은 원칙도 없는 당이 되는 것이고, 이대론 경선도 없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급기야 그는 이날 밤 ‘칩거’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이 분열의 기로에 선 것이다. 그 원인에는 무엇보다 강재섭 대표에 대한 ‘배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칩거구상이 사실상 ‘강재섭 제거’에 맞춰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강 대표는 늘 힘 있는 쪽에 섰다”

강 대표의 행보는 경선에서 매우 중요하다. ‘경선의 관리자’라는 심판 역할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나름대로 당내 지분이 있다. 그를 따르는 의원은 김성조 전략기획위원장·박재완 대표비서실장·유기준 대변인을 비롯해 10여 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대표의 행보는 곧 그들에게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시·군·구로 투표소 확대와 동시선거는 지구당위원장의 ‘지휘’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하루에 동시투표를 한다는 건 순회경선제도의 취지를 망각하는 것”이라면서 “(하루에 동시투표를 하면) 국회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들이 투표소에 앉아서 지역 사람들에게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은근히 강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재안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고진화 의원도 “이번 싸움의 본질은 경선중재안 자체보다 경선관리자인 강 대표의 중립성 논란”이라고 지적하면서 “만일 강 대표와 가까운 사람이 박 전 대표에서 이 전 시장으로 넘어간다면 그 파괴력은 대단할 것이다. 1만 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종전 합의안(8월 20만)을 전제로 “1000표를 덤으로 주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분석의 결과에서 나온 것이라는 얘기다. 박 전 대표가 경선불참을 시사할 정도로 강경대응을 하는 이유에는 1000표 미만의 미미한 표 때문이 아니다. 강 대표의 돌연한 변신 때문이라는 얘기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인사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권력싸움에서 밀리던 박철언 전 의원과의 결별을 예로 들면서 “강 대표는 늘 힘 있는 쪽에 섰다”고 비난했다. 더욱이 강 대표는 지난해 7·11 전당대회 때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에 당선됐다. 또 4·25재보선 패배로 ‘낙마’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박 전 대표가 원군이 되어주었다. 그 덕분에 강 대표는 재보선 패배의 직접적 원인인 ‘공천실패’ 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물론 강 대표를 우군으로 묶어두려는 박 전 대표 측의 정치적 계산도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중재안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다소 유리한 내용이었다. 여론조사 반영비율의 하한선(여론조사 67%)을 보장해주는 규정이 그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결국 4·25재보선 패배에 대한 엄정한 처리를 하지 못한 결과가 한나라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측 진영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어떻든 박 전 대표 측은 “강 대표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분노하고 있다. 강 대표와 이 전 시장 진영의 좌장인 이재오 최고위원과 비밀회동이 있었다는 것도 그 빌미를 제공했다. 박 전 대표 진영의 한 인사는 “두 사람의 만남에서 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진화 의원도 “강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려고 이 전 시장과 거래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고 있다”면서 “어떻든 대표의 중립성에 회의가 생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중재안은 경선 연기 목적?

물론 강 대표는 “밀약을 할 것이라면 왜 회동사실을 공개했겠느냐”면서 ‘이명박과의 밀약설’에 펄쩍 뛰고 있다. 강 대표도 “67%로 할 경우 100표에서 200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서 “눈깔사탕만큼의 차이”라고 말했다. 나름대로 공정성 확보를 위해 고민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대선캠프 관계자들이 5월 11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강재섭 대표의 경선룰 중재안에 대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대선캠프 관계자들이 5월 11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강재섭 대표의 경선룰 중재안에 대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이런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강 대표는 직선행로를 선택했다. 강재섭 대표가 ‘나대로 행보’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강 대표는 “선장은 운항 중에 배에서 내리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 중재안을 전국위원회 표결에 부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학원 의원이 회의소집을 거부하고 있다. 표결도 쉽지 않은 상태다. 만일 표결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기존의 경선룰 합의안은 원천무효가 된다. 당원들의 승인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이 전 시장의 밀약설’과 정반대의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경선연기를 목적으로 타협하기 어려운 중재안을 강 대표가 제기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이 전 시장 혹은 박 전 대표의 극적 양보가 없다면, 기존 경선룰에 따라 8월에 예정된 경선실행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9·10월로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셈이다.

경선 시기는 경선룰의 또 다른 핵심사안이다. 적어도 9월이면 범여권의 후보가 부상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지표 결속도에서 이 전 시장이 떨어진다. 범여권 후보가 정해지면 박 전 대표보다는 이 전 시장의 지지도가 더 많이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당내외 인사는 물론 여론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고진화 의원은 “전국위 소집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전국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 구성을 결의하고 그들이 새로운 경선룰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그와 함께 당내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풍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상 강 대표체제를 인정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당내 분위기가 흘러간다는 얘기다.

심판과 선수가 뒤엉킨 한나라당의 한판싸움, 그 승부와 무관하게 강 대표의 ‘본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 대표의 ‘이명박과의 연계설’ ‘경선 연기를 겨냥한 음모설’, 과연 그 실체는 무엇일까.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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