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나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수원 화성 |

[내 마음의 길]정조의 나라

보름 후 정월 16일, 정조는 사도세자의 탄일을 닷새 앞두고 정례적인 현륭원 성묘를 단행하였다. 쇠약한 정조의 건강 때문에 신료들을 만류하였지만, 왕세자 책봉의 기쁜 소식을 사도세자 영전에 알리려고 정조는 현륭원 행차를 서둘렀다. 정조는 당일로 현륭원에 나아가 벅찬 심정으로 오열하였고, 음력 정월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소 앞에 엎드려 울면서 일어나질 못하였다.

용주사는 정조의 효행이 낳은 사찰이다.

용주사는 정조의 효행이 낳은 사찰이다.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탈진한 상태에서 정조는 신료들의 부축을 받아 재실로 내려왔다. 정조는 이곳에서 밤을 지새고 다음날 화성행궁에서 유숙한 후 18일 환궁길에 올랐다. 이날 서울 가는 길에 수원 북쪽 경계, 멀리 화산이 바라다 보이는 지지대고개에 오른 정조는 눈물을 흘리며 선산을 떠나 다시 서울로 가야 함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훗날 정조의 유신들에 의해 세워진 지지대비는 이러한 광경을 전하고 있다.

- 유봉학 ‘정조대왕의 꿈’ 중에서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개혁적인 군주였다는 정조의 비원이 서린 화성을 찾음에 있어, 그의 재위 마지막 해인 정조 24년(1800년) 어름의 정황을 되짚는 것으로 시작함은 참으로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학자 유봉학이 ‘정조실록’ 등을 근거로 기록한 것처럼, 그 마지막 해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에 가득 찬 것이었다.

정월 초하루, 왕은 장차 왕위를 계승할 원자(元子)가 새해 들어 11세가 되니, 그를 왕세자로 책봉하게 된 기쁨으로 새해를 맞았다.

융릉의 석인상.

융릉의 석인상.

그 원자가 누구인가. 비운에 간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천하제일의 명당이라는 수원의 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이장하던 시기에 수태하여, 이듬해인 1790년(정조 14), 여태 한을 안고 살아가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생신날에 맞추어 태어난 아기 아니던가. 또한 그 아이는 장차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의 한을 일거에 풀어줄 오직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해 정초, 정조는 4년 후인 갑자년(1804)에 원자가 성년인 15세가 되면 그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자신의 원대한 꿈이 담긴 신도시 화성으로 내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쇠약해진 몸으로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했던 탓일까. 정조는 현륭원에 성묘한 이후 병석에 눕는 일이 잦아지더니, 마침내 그해 6월 급작스레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와 함께 정조가 꿈꾸던 나라, 화성 또한 꿈으로만 남게 되었고, 조선 역시 급속히 쇠락하면서 멸운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용연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

용연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

정조의 한과 꿈을 따라가는 길은, 그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이웃하여 누워 있는 융·건릉에서부터 시작된다. 화산 기슭에 자리한 융·건릉은 정조의 신도시 구상의 발단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애초 수원의 읍치(邑治)가 이곳에 있었으나, 정조가 이곳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원을 조성, 이장하면서 팔달산 아래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원주민들을 위해 화성 신도시를 구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융·건릉 인근의 용주사는, 호란 때 소실되어 숲 속에 묻혀 있던 것을 정조가 다시 지어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는 원찰로 삼았던 절이다.

융·건릉에서 병점을 돌아 다시 북상하면 비로소 정조의 나라 화성이지만, 지금은 이전의 이름 수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한때 전란에 휩싸이기도 했던 수원 화성은 이제 대대적인 복원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 하였지만, 그리 된 것은 단지 성곽일 뿐이다. 쓸모를 잃어버린 건축물처럼 허망한 것은 없다. 그 안에 담긴 꿈이 깊을수록 허망의 너비는 배가된다. 차라리 장엄하게 무너져, 그 잔재되고 남은 터에 비감함이라도 되살릴 수 있었더라면 좋으련만.

글·사진/유성문〈여행작가〉 rotack@lycos.co.kr

●●● 서울 쪽에서 수원 화성 나들이에 나선 이라면 수원 화성과 용주사, 융·건릉까지 돌아본 연후에 바닷길로 들어갈 수 있는 제부도에 잠시 들렀다가, 해질 무렵 궁평리까지 나아가 떨어지는 해를 감상하기 바란다. 한 시대는 가고 한 시대는 오되, 땅은 영원한 법이다. 지금 비록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해는 지더라도,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뜬다.

●●● 가는 길

수원 - 수원 화성 - 병점 - 용주사|용주범종 - 융·건릉|융건백설 -
남양성지 - 제부도|제부모세 - 궁평리|궁평낙조

내 마음의 길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