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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벗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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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누드해수욕장 설치 논란… 네티즌 거센 반발에 밀려 ‘일단 정지’

[사회]아직은 벗지 마세요

“우리나라에 누드해수욕장이 등장할 수 있을까.” 이 논란은 강원도 지역 동해안해수욕장을 관장하는 환동해출장소가 최근 동해안 지역에 누드해수욕장 설치를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환동해출장소는 당초 “올해 해수욕장 개장기간인 7월 10일부터 8월 20일까지 피서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반응이 좋으면 내년에 누드해수욕장을 개설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고 밝혔다. 환동해출장소는 올해 1월 열린 ‘해수욕장 운영전략 토론회’에서 차별화된 고급·테마 해수욕장 운영방침을 밝히면서 유럽 등 외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누드해수욕장을 거론했다. 환동해출장소는 최근 ‘동해안 해양관광레저스포츠 개발전략’ 연구를 실시했는데, 여기에도 누드해수욕장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르면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운영해 강원도만의 특화된 해수욕장 공간을 조성하고 ▲자연주의자를 위한 별도의 자연휴양지와 산림욕 공간을 마련하고 ▲스노클링·수상스키·스킨스쿠버·윈드서핑 등 수상레포츠는 물론 배구·농구·야구 등의 구기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연인·가족·부부·아이를 위한 공간 등 이용자별로 공간을 마련한다고 돼 있다.

미성년자·호색한 ‘입장 불가’

장소로는 일조량이 고르며 백사장과 배후부지 분리가 용이하고 군사보호지역으로 설정돼 있는 곳을 활용하며 8세 이상~19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호색한은 입장을 금지시키도록 했다. 또 ▲옷은 벗어야 한다 ▲속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성적인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사진을 찍으려거든 먼저 주변의 동의를 구한다 ▲주변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면 안된다 ▲아무에게나 집적거리지 않는다 등의 운영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계획을 구상한 것은 피서객 숫자만 늘리기보다는 돈을 쓰는 피서객을 많이 유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누드해수욕장과 함께 최상의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급 유료 해수욕장이나 건강을 주제로 한 웰빙 해수욕장, 나만의 해수욕장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산산조각날 지경에 놓였다. 원래 계획은 피서기간에 설문조사를 실시한 뒤, 반응이 좋으면 개설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련 계획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네티즌들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국민세금으로 월급받아 고작 생각해낸 것이 누드해수욕장이냐’ ‘재정도 좋고 수익성 사업도 좋지만 우리 실정과 정서, 문화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도 생각하면서 사업을 추진해라’ ‘승인하면 카메라 휴대전화 단말기가 동나고, 인터넷에 몰카 사진이 넘쳐날 것’ ‘해수욕장에 남자들만 득실댈 것’ 등등 갖가지 비난이 잇따랐다. 비난은 강원도 공무원 전체로 향했다. 이에 실무적으로 누드해수욕장 조성 가능성을 살피던 환동해출장소측은 당혹해하고 있다.

이런 반응에 대해 인터넷 다음에서 자연주의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나대로’씨는 “만들어진다면 우리 카페 회원들이 가장 먼저 가볼 것”이라며 “누드해수욕장을 외설로 느끼는 것은 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수년 동안 회원들과 누드모임을 가져왔는데 전혀 외설적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간혹 처음 참가한 남성 회원이 ‘신체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함께 자신이 경험한 누드모임의 장점을 자랑했다. 즉 알몸이 되면서 사람들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와도 누드모임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이후 성문제 등 모든 문제에 대해서 거리낌없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누드해수욕장이 성공하려면 몰래카메라 등을 막는 방법과 남녀 비율을 비슷하게 맞추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물론 인터넷상에서도 이처럼 누드해수욕장 개장을 찬성하는 의견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에 묻혔다. 6월 23일 인터넷 다음의 찬반투표 결과에 따르면 전체 4만7182명 중 찬성은 1만6236명(34.4%), 반대는 2만9209명(61.9%)으로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당장은 어렵지만 포기는 없다

상황이 이렇게 확대되자 환동해출장소는 진화에 나섰다. 출장소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출장소에서는 도내 해수욕장을 찾는 이가 다양한 체험과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특색있고 테마가 있는 해수욕장을 조성하고자 구상중이다”며 “누드해수욕장 조성은 결정된 것이 아니라 실무차원에서 외국의 사례 등을 참고하여 웰빙해수욕장, 고급해수욕장 등과 함께 사례를 든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원색적인 비난 등 반대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드해수욕장 조성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환동해출장소 관계자에 따르면 누드해수욕장 개설은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초 피서객들 상대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조성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생각했던 출장소는 이를 각 인터넷사이트의 여론조사결과로 대신할 계획이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반대의견이 많은만큼 추진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추진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장기적인 분위기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서 국내에서 세번째로 시도된 누드해수욕장 조성 검토는 다시 미래의 일이 됐다.

옷을 벗고 자연을 입는다

우리나라에서 누드해수욕장 조성이 시도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96년에는 한 민간업체가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설치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됐던 인천광역시 옹진군 굴업도에 누드해수욕장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적이 있다. 당시 이 업체는 굴업도 동쪽 해안 1㎞, 서쪽 해안 1.8㎞에 누드해수욕장 2개를 조성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국내 40세 이상의 성인 남녀와 외국인 관광객만 입장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주민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4년 뒤인 2000년에는 강원도 강릉시에서 관내의 연곡해수욕장을 누드해수욕장으로 개발하는 방안이 논의된 적이 있다. 천편일률적인 해수욕장의 운영방식에서 벗어나 테마가 있는 해수욕장을 꾸미자는 취지였다. 단 외국인 전용으로 조성한 뒤 국내의 반응이 좋으면 내국인에게도 개방하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실무자간의 논의로 그치고 말았다. 여론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오래 전부터 누드해수욕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혼이 불법일 정도로 보수적인 남미의 칠레에서도 올해초 누드해수욕장을 개장했다. 누드해수욕장의 근원지는 북유럽 국가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모든 질병은 ‘옷을 입으면서부터’ 시작됐다는 이야기와 햇볕이 피부와 몸에 좋다는 이야기에서 누디즘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이 나타났고, 자연주의자들이 몰리는 해변가나 호숫가를 누드비치로 정부가 인정한 결과였다.

캐나다의 밴쿠버 렉비치, 프랑스 니스비치, 미국 라이트하우스비치, 호주 버디비치와 빌롱길비치 등이 유명하다. 누드해수욕장을 찾는 자연주의자들은 현재 NGO형식의 누드비치연합회나 자연주의실천협회 등을 구성해 정기간행물까지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누드해수욕장, 누드리조트에 이어 누드레스토랑까지 등장했다.


<정재용 기자 jj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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